My travel abroad./India(2012,Jan)

9-5 붓다가 열반한 쿠시나가르(Kshinagar) 열반사원

봉들레르 2012. 3. 19. 15:49

 

쿠시나가르는 불교 경전에 매우 조그만 마을로 묘사되어 있지만, 현재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제법 활기가 도는 소도시다.

이곳에는 열반 사원이 있고, 그 안에는 거대한 불교 열반상이 있다

열반사로 들어가는 길이다.

부처가 입적(入寂)했을 때 동서남북에 한 쌍씩 서 있었다는 나무.

동쪽의 한 쌍은 상주(常住)와 무상(無常)을, 서쪽의 한 쌍은 진아(眞我)와 무아(無我)를,

남쪽의 한 쌍은 안락(安樂)과 무락(無樂)을, 북쪽의 한 쌍은 청정(淸淨)과 부정(不淨)을 상징한다.

사라는 산스크리트어 샬라(Sala)의 음사로, 단단한 나무라는 뜻이다.

낙엽고목으로 콩과의 무우수(無優樹) 및 뽕나무과의 보리수와 함께 불교의 3대성목이다.

원산지인 인도에서는 살(sal), 그 한자명을 사라(沙羅)라고 하며, 석가가 쿠시나가르에서 열반에 들어갔을 때

동서남북에 이 나무가 2개씩 서 있었으므로 사라쌍수라고 하며,

부처 입멸 후에 사방에 두 그루씩 심어져 있었던 여덟 그루의 사라수 중 각 쌍의 각각 한 그루가 시들었다고 하며,

이를 〈사고사영(四枯四榮)〉이라고 한다. 또한 입멸에 있어서 이들 여덟 그루가 희게 변했다고도 하며,

석가 입멸의 땅을 백학의 색에 비유해서 〈학림(鶴林)〉이라고 한다. 인도에서는 이 나무를 신성한 나무로 여기고 있다.

뒤쪽으로는 석가가 열반 직전 마지막으로 목욕을 했다는 히라이냐바티( Hirainyavati) 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열반사원 입구에 창살에 법륜

사라쌍수 길을 따라서 걸어간다.

 

 

 

 

열반당 주위에는 천 여 년이 지난 사원터들이 흘러간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아쇼카탑(열반탑)의 동쪽에 기단부만 남은 사각형의 기단을 가진 작은 탑은 고고학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아난다(阿難陀, Ananda)존자의 사리탑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열반지는 13세기 무슬림의 지배를 받을 때에 모두 불타 폐허가 됐던 것을 1876년에 복원했고

1956년에 미얀마 승려들에 의해 재건되어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한다

 

 

 

현재 열반당은 높이가 약 12m이며, 13세기 무슬림의 침공으로 사원과 주변이 모두 불에 타버린 것으로

1876년의 복원을 거쳐, 1956년 재건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왼쪽부터 열반당, 석가 사리탑, 아난다 사리탑 

 석가 사리탑

 

7세기 무렵 이 곳을 방문한 현장(玄奘)의 대당서역기에 따르면,

‘아쇼카왕이 세운 탑으로 높이는 60m 정도이며 여래께서 일면한 사적이 적혀있으나 날짜는 없다고 한다’ 라고 기록되어있다.

현장의 기록대로라면 쿠시나가르 지역의 이 탑은 탑에 붙여진 이름대로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왕 때 세워진 탑이라고 생각되지만

탑에서 발굴된 브라흐미(Brāhmi)문자에 의하면 이 탑은 본래 작은 탑이었으나

 여러 번에 걸쳐 덧 지어져서 지금의 크기가 되었다고 하니 지금의 모습은 마우리아 왕조 시기에 지었던 모습은 아닐 것이나

비교적 원형을 잘 보존한 탑으로 평가되고 있다. 현재의 높이는 25m, 기단부를 제외하면 20m이다.

1910년 발굴 당시 탑의 내부에서 브라흐미 문자와 스님들의 장례식용 장작더미와 숯, 불에 탄 흙 등이 발굴되었다.

전술(前述)했듯이, 브라흐미 문자의 내용에는 탑의 보수에 관한 기록도 있다.

1927년 복원 당시에 많은 부장품과 명문을 새긴 동판을 넣었다고 한다.

신발을 벗어야 들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