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India(2012,Jan)

9-6 붓다의 4대성지 쿠시나가르 열반당

봉들레르 2012. 3. 19. 17:31

 

불교의 4대 성지인 탄생(룸비니), 성도(보드가야), 설법(사르나트), 입멸(쿠시나가르) 중에

 하나인 까닭에 순례하는 불교인들이 많이 찾는다.

열반당 안에는 열반 당시의 부처의 모습을 조성한 열반상이 있는데

320년부터 북(北)인도를 통일·지배한 왕조인 굽타왕조(BC 280~BC550)의 쿠마라굽타왕 때

실존했던 승려인 하리발라가 조성한 것으로 길이는 6.1m이며, 원래 재료는 붉은 사암이다.

 발굴 당시 심하게 파손되어있었으나 19세기 복원하였다.

이 곳이 살라쌍수 밑에서 북으로 머리를 두고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에 대고 사자처럼 발을 포개고 누우셨던 자리이다.

벽돌로 만든 큰 정사 안에 여래의 열반상이 있던 유적은 없어지고

지금의 열반당은 열반상에 새겨진 명문으로 보아 5세기초에 하리바라 신자의 기부금으로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천도제때 스님들이 독송하는 "나무아미타불 부처님이 관 밖으로 양쪽 발을 보이셨고

나무아미타불 달마대사 총령으로 짚신한짝 갇고 갔네 나무아미타불 이와같은 높은도리 영가님이"의 의미를 알 것같다.

 불경은 열반한 부처가 제자 가섭이 찾아오자 관 밖으로 발을 내밀었다고 하지만

 <디가니까야>는 가섭이 부처를 화장하기 위해 쌓아 놓은 장작 더미를 헤쳐 스승의 발을 드러낸 뒤 마지막 작별 인사를 했다고 전한다.

제자가 스승의 발에 절하는 것이 당시 인도의 풍습이었다고 한다.

부처는 맨발로 태어나고 깨달아 법의 바퀴를 굴리고 또 영원의 세계로 들어간 열반의 땅에 이르는 1500㎞를 맨발로 걸어왔다.

 

열반상의 하단부에는 3명의 인물이 새겨져 있는데 다리 쪽에는 슬픔에 잠긴 아난다존자의 상이 있다

열반상은 중앙에는 가부좌를 하고 묵묵히 수행하는 하리발라가 기부한 것이다.

부처의 머리 부분에는 슬픔에 잠겨있는  프라세나짓 왕의 부인인 ‘말리’부인(Malika)

 

 

 

각나라에서 온 많은 순례단은 황금색 이불이 정성스럽게 덮어있는부처상에 둘러앉아 예불을 올린다.

 부처상의 발바닥에 붙여진 수많은 금박지에서 그보다 더 많이 다녀갔을 순례자의 숨결이 느껴진다.

 고행을 마다하지 않고 깨달음을 얻어 열반에 이른 부처의 마음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듯하다.

 염화미소 속에 이 순간만은 비로소 여행객이 아닌 성지 순례자가 된 것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 표정이 달라진다고 한다.

팁을 받은 관리인이 부처의 황금빛 가사를 걷어내자  

 

부처의 온몸이 드러난다.

열반당안에서 밖으로 나왔다.

 

해가 구름 속으로 들어간다.

열반사원으로 가는 길에는 관광버스들이 쭉 늘어서 있어 이곳의 유명세를 알만하다.

 

부처의 4대성지중에는 이제 탄생(룸비니)지만 남았다. 룸비니는 인도국경을 넘어 네팔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