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연못
아쇼카 석주 남쪽 약 20m 떨어진 곳에 있는 연못으로 『잡아함경』에 의하면, 대림정사 내에는 원숭이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그 옆으로는 중각강당이 있어 부처님이 많은 설법을 하셨던 곳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연못은 원숭이 떼가 부처님께서 목욕하시도록 판 연못이라고 전해지는데,
현장이 이곳을 찾았을 당시 기록에도“아쇼카 석주 남쪽에 연못이 있다.
원숭이들이 부처님을 위해 판 곳으로 옛날에 여래가 이곳에서 묵은 일이 있다”고 기록하여 실제 존재하였던 장소로 생각된다.
부처님 당시 바이샬리는 상업이 발달하여 살기가 넉넉하여, 부처님과 스님들이 집집마다 다니면서 탁발하지 않았다.
발우를 어느 지역에 한 줄로 놓아두면 신도들이 음식을 가지고 와서 담아 주었는데,
어느 날 부처님이 자신의 발우를 제자들 발우에 섞어 놓았는데, 원숭이가 그 많은 발우들 중에서 부처님 발우를 골라내어
근처 나무에 올라 꿀을 따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다고 한다.
산치대탑 북문에 원숭이가 부처님께 꿀 공양을 올리는 원후봉밀(猿奉蜜)
이 원왕봉밀(猿王奉蜜)의 이야기는 인도의 모든 불교미술 작품에 두루 나타난다.
그 예로는 산치대탑의 북문 토라나에 새겨진 조각에서 원숭이의 꿀 공양이 새겨진 모습을 들 수 있다
연못 남쪽에 한 그루의 나무가 서 있다. 원숭이들이 부처님의 발우로 나무에 올라 꿀을 따서 바쳤다는
원왕봉밀의 전설을 뒷받침해주기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
만(卍)자 모양의 수도원
중각강당
석주위에 새겨진 글씨는 대개가 낙서이고 룸비니 아쇼카석주에서 볼 수있는 명문은
마모되어 보이지 않는다.
사자상 돌기둥은 기원전 250년 경 아쇼카 왕이 세운 석주이다.
이 아쇼카 왕의 석주가 현재 남아 있는 석주 가운데 가장 원형 그대로의 완벽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1969년 발굴 당시에는 석주의 중간 부분까지 땅속에 묻혀있었지만 발굴을 통해 드러난 석주의 높이는 13m
사자상은 북쪽을 향하고 있는데 열반을 위해 떠난 방향이란다.
사자상중에서 가장 쎅시한 엉덩이란다.
아쇼카 석주는 바이샬리(Vaishali) 지방의 불교수도원에 위치하며, 기둥머리에 북쪽을 향한 한 마리의 사자상이 조각되어 있다.
바이샬리의 석주는 B.C 250년 경 아쇼카 왕이 세운 석주로 현재 남아 있는 석주 가운데 가장 원형 그대로의 완벽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대림정사 중각강당
대림정사 중각강당은 원숭이에게 꿀을 공양 받고 부처님의 열반을 처음으로 말하신 곳으로,
아쇼카 석주, 원왕봉밀 원숭이 연못과 함께 옆으로 나란히 터가 남아 있는 곳이다.
화엄경 입법계품을 설법한 장소이기도 하고 이곳에서 여러 번 설법을 하셨다고 전한다.
특히 바이샬리는 교통, 문화, 경제로 북인도의 중심으로 대승불교의 발생지이며,
대승경전인 유마경의 배경이 되었고, 최초의 비구니교단이 설립된 곳으로 불교교단과 인연이 깊다.
여기에 남아있는 대림정사 중각강당은 그 의미가 크지만 지금은 넓은 터로만 전해지고 있다
장식이 없는 거대 스투파와 아쇼카 석주
성도 후 6년, 부왕의 장례식을 마친 부처님께서 이곳 대림정사에 머물고 계실 때,
양모 프라쟈파티와 샤카족의 귀부인 500명의 부처님께 귀의함으로 최초의 비구니
승단이 형성된
기녀 암라팔리가 그의 망고동산을 승단에 기증한 곳이다.
또한 부처님 입멸 후 100년경 이곳에서는 계율에 관한 새로운 수정주의자들이 생겨나 10사(事)의 합법성을 주장하자
보수적인 장로들은 그것을 위법이라 비난하여 이곳에서 700명의 비구들이 집회를 가지면서
10사를 비법(非法)이라고 배척하기도 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제 2결집이 이뤄졌고,
이렇게 하여 불교교단은 보수성향의 상좌부와 진보성향의 대중부로 갈리게 되었다.
부처님이 처음 당신의 열반을 예견하신 곳도 바로 여기이다. 80세가 되면서 라즈기르에 머물던 부처님은 그 곳을 떠나
스스로 열반의 행보에 나란다와 파트나를 거쳐 이곳 바이샬리에 들렀다.
파트나에서 나룻배를 타고 강가 강을 건너 코티, 나디카, 벨루바 등의 마을을 거치게 최후의 안거를 벨루바 마을에서 보냈다고 전하고 있다.
"아난다야 이것이 내가 이 성을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다.
" 현생의 육신으로는 이 성에 다시 올 수 없음을 일러준 말이다. 부처님은 마치 코끼리처럼 천천히 몸을 돌려 바이샬리를 응시하시고는
노쇠한 몸으로 이곳을 떠나 파바 마을을 거쳐 쿠시나가르로 갔다고 전해진다.
주변 마을
린나무로 이를 닦고있다
'My travel abroad. > India(2012,Jan)' 카테고리의 다른 글
9-4 쿠시나가르(Kshinagar) 춘자공양터 (0) | 2012.03.19 |
---|---|
9-3 부처가 출가한 케사리아(Kesariya) 불탑 (0) | 2012.03.19 |
9-1 바이샬리(Vaishali) 스투파 (0) | 2012.03.17 |
8-10 세계 최초의 대학 나란다 대학 (0) | 2012.03.12 |
8-9 나란다 고고학 박물관(Nalanda Archaeological Museum) (0) | 2012.0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