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India(2012,Jan)

8-5 법화경을 설법한 영축산(靈鷲山)

봉들레르 2012. 3. 9. 16:17

 

영축산에 일본사찰에서 내려오면서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법화경을 설법한 곳이다.

석가보다 더 위에다 사찰을 세운 일본인들의 오만함에 극치다.

 

 

여래향실로 올라가는 길(퍼온 것)

영축산 부처님이 계시던 향실로 가는길은 20분정도 오르게 되는데

부처님을 만나기위해 빔비사라왕도 가마에서 내려 걸었다 하며 빔비사라왕길이라 불린다

일본사찰에서 내려와

중간지점에서 다리를 건너 올라간다. 경비병들이 진을 치고 앉아있다

이곳에는 원숭이들이 많이 살고 포악하다.

내려오는 인도여인을 보니

발에도 발찌가 있고

소가 여기까지 올라와 있다.

어김없이 이곳에도 구걸을 하는 이가 있고 땔감을 마련하기도 한다.

여래향실이 바로 위로 보인다.

 향실을 받치고있는 거대한 바위군 아래 주위에는 여러 동굴들이 있다.

처음 만나는 동굴은 다문제일 아난존자수행동굴이고  10명은 충분히 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티벳 불상들이 있다.

 

다시 2분쯤 오르면 오른쪽에 사리불존자의 수행동굴이 나온다.

지혜를 받기위해 바위에 머리를 대보면 마치 지혜가 머리에 꽉차는거 같다.   ]

 

동굴에서 조금 더 올라가 앞쪽에는 조그마한 광장이 있었고 오색기가 바람에 나풀되고 있었다

조금 더 나아가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능선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꽤 넓은 바위 공터가 있었다.

그 곳이 바로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하셨다는 영산회상(靈山會上)의 법회 장소이다

이곳을 지나 향실을 오르기 전 왼쪽에 마하가섭수행동굴이 있으며

계단을 10여자국 오르면 오른쪽에 독수리바위가 있다

 

마치 독수리가 날개를 접고 쉬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영축산, 또는 영취산(靈鷲山)이라 불리게 된, 바로 그  바위 봉우리를 그곳에서 볼 수 있다

 

독수리 모양

언덕 능선에서 바라보이는 봉우리 모양이 마치 독수리가 날개를 접고 앉아서 쉬고 있는

형상을 띠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일명 ‘독수리봉’이라 불리우기도 한다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하셨던 여래 향실터

유명한 염화미소의 현장으로 어느 날 붓다는 영취산(靈鷲山)에서 운집한 대중들에게 설법을 하고 있었다.

 주위엔 꽃들이 어지럽게 피어 있었다. 붓다는 설법을 끝내면서 문득 한 송이 꽃을 들어올려 보였다고 한다.

거기 모인 천 이백 명의 제자들은 이 뜻밖의 행동에 놀라 말을 못했다.

 그런데 마하가섭만이 뒤켠에 서서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 붓다는 가섭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이며

‘이 법은 더 이상 말로써 할 수가 없다. 이제 나는 이 비법을 마하가섭에게 전한다’고 말했다는 장소다.

부처님께서는 이곳 영축산에 머무시는 가운데 『법화경』및 『보적경』『대집경』『허공장경』등 대승경전에 속하는 많은 경전들을 설하신 것으로 되어 있다.

또한 현장의 기록에 의하면 이곳 영축산 꼭대기에는 동서로 길고 남북은 좁은 정상부에 벽돌로 정사가 지어져 있으며,

부처님께서 그곳에 머물러 설법하신 바 설법상이 조성되어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현재 이곳 영축산 정상부에는 1903년에 복원된 설법좌, 즉 여래향실과 아난다가 머물렀다고 전해지는 시자실의 기단부만이 남아 있고,

 이곳 정상부에서 출토된 부처님 설법상 및 과거 7불, 미륵보살상, 연봉우리의 형상과 기타 유적들은 현재 나란다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부처발자국에는 금박지가

 

정상부의 동북쪽에는 부처님께서 가사를 말렸다는 장소에 가사 자국이 선명히 새겨진 바위

부처상

 

보물 1273호 해인사 영산회상도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는 부처님께서 인도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한 장면을 표현한 그림이다.

법화(法華)란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경지를 진흙탕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결코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아름답게 피어난 연꽃에 비유한 말이다. 법화경은 불교경전 가운데 가장 넓은 지역과

가장 많은 민족들에 의해 독송된 대승경전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영산회상도의 구조를 살펴보면 중앙에 결가부좌한 부처님을 그려 모시고,

그 좌우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그 좌우에 6대 보살(대세지보살, 관음보살,

제장애 보살, 금강장보살, 미륵보살, 지장보살)을 그린다.

사방 끝에는 사천왕을 그리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위로는 천동, 천녀를 그린다.

 그러나 그려진 시대에 따라 그 위치를 변형시키거나 그 내용을 가감하여 그렸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산마루에서는 다섯 산으로 둘러싸인 옛 왕사성이 한 눈에 보인다.

현재 이곳 영축산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는 지바카(Jivaka, 耆婆)의 망고나무 동산 및 바이데히 부인과

데바닷타의 이야기를 동시에 전하고 있는 마르다쿡쉬(Mardakukshi), 그리고 빔비사라 왕의 길과 함께 스투파의 유적터 등이 남아 있다.

우측 산봉우리에 세워진 일본 사찰과 탑, 그곳으로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케이블카의 시설 등은 순례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승녀들이 참배 후에 식사를 하고있다

 

내려오는 길가에는 원숭이들이 도열을 해서 있다가 막 덤벼든다. 경비원들이 대나무 막대기를 쫓으니 그제서야 숲속으로 도망을 간다.

손을 내밀고 구걸

땔감을 줍는 여인

부처의 흔적을 찾아가는 소들

인도가족의 성지순례

 

팔찌가 엄청 많다.

 

아래까지 내려와서 "짜이" 한 잔을 마셨다.

이건 좀 먹기가 그렇다.

길거리에는 군인들

이곳 왕사성(라즈기르)은 불교인들에게는 너무나 잘 알려진 도시이다.

기원 전 5세기께 인도 16개국 중에서도 최강국이었던 마가다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당시의 빔비사라 왕은 부처님의 절대적인 후원자로써, 유명한 죽림정사를 지어 부처님께 헌정하였고,

부처님 또한 일생 중에서 20여년을 이곳에서 법을 설파하셨던 유서 깊은 도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