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India(2012,Jan)

8-4 라즈기르 영축산(Grdhrakuta) 일본사찰

봉들레르 2012. 3. 5. 18:50

‘영축산’은 인도의 마갈타국 왕사성 부근에 있으며, 석가모니가 성도한 후 설법을 한 4곳 중의 한 곳으로 영험하게 여기는 곳이다.

석가는 이곳에서 특히 법화경 설파에 몰두하였다. 이런 연유로 유명세를 타면서 영축산은 이제 인도의 마갈타국의 고유한 산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중국에서도 만날 수 있는 세계의 산이 되었다. 경남 양산의 통도사를 품고 있는 후덕한 산도 영축산이다.


 

 지바카 망고원터

‘수명이 긴’, ‘오래 살아 있는’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 지바카(Jivaka, 耆婆)는 브라흐만 출신의 아버지 병사왕(甁沙王)과

바이샤 출신의 어머니 음녀 사라발제 사이에서 의료업에 종사할 수 있는 암바스타(Ambastaa)라는 특수한 신분을 가지고 태어난 인물로서,

 빈가라라 불리우는 스승에게서 7년간의 의료수업을 받은 후 라즈기르로 돌아와 의료업에 종사하였다고 전한다.

이 이야기의 무대가 된 지바카 망고나무 동산은 현재 구왕사성의 동문터를 지나 영축산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

근래의 발굴조사 결과 이곳이 옛날 승원터였음을 확인시켜주는 건물 초석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부처님의 주치의이기도 하고 왕사성의 의무대신이었던 "지바카"의 집터라고 알려진 "지바카 망고원".

부처도 이 곳을 무척 좋아하셨다고 한다. 

왕사성은 부처님과 인연이 아주 깊은 고장으로 그 당시 마가다의 서울인 이곳에서

그는 수행자로서 우드라카라는 이름난 스승을 만나 수행을 했었다.

그리고 국왕 빔비사라의 귀의를 받아, 성도 후 불교교단에서 최초로 절을 이곳에 세웠다.

사리불과 목련존자 등 유능한 제자의 귀의가 있었다. 포교의 중심지가 되어 교단의 기틀이 잡힌 것도 바로 이 왕사성에서였다.

 왕사성은 구왕사성과 신왕사성(신시가지)이 있는데, 옛 성의 방벽은 그 길이가 무려 40km나 된다.

인도에서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으로는 가장 오래된 석조 성벽이라고 한다.

그 당시 갠지스 강 북쪽에 있던 강대국 코살라를 의식하고 방비를 튼튼히 한 것 같다.

왕사성은 그 시절 북인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번창했었다

 

 

 

그 유명한 영축산의 다른 봉우리에 일본인들이 사찰을 세웠다.

영축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일본의 일련정종 사찰에서 만든 리프트

순전히 일본사찰로 가는 리프트다

 

 

 

 

 

 조그만 나팔을 불어보니 소리를 내기가 어렵다.

이 일본사찰의 위치가 석가가 설법한 장소보다도 더 높은 곳에 있다.

일본인들의 그 거지같은 근성을 엿볼 수있다.

영취산 옆 라딴기리 Ratangiri 400 m 정상에 세워진

산티 스투파(Vishwa Shanti Stupa)로 일본 一連正宗敎, 즉 남묘호렝게교 절이다

 

스투파를 돌아가면 사찰이 나온다.

영축산 일본사찰 묘법사

 

 

" I take refuge in the Wonderful Law of the Lotus Flower Sutra"(南無妙法蓮華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