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India(2012,Jan)

8-7 최초의 불교사원 죽림정사(竹林精舍, Venuvana)

봉들레르 2012. 3. 11. 23:01

 

 오후1시가 넘은 시간이라 길거리에 허름한 호텔앞에 버스를 세우고

 점심을 먹는다.

동행하는 인도요리사가 해 준 짜장밥

 라면도 곁들이고

인도 위스키도 반주로

 식사후 쉬는 시간에 주변을 둘러보니

호텔에서 길건너에는 주택가다.

벼를 터는 기계를 이용하여 타작을 하고

짚을 이 기계를 이용하여

손으로 돌려서 잘게 자른 후에

 소똥에 짚과 진흙을 반죽하여

소똥은 신성하게 여겨지다 보니 땔감으로 쓰이기 전부터 이미 중요하게 활용되고 있다.

동네 아낙네들은 소똥을 모아 손으로 애써 덩어리를 만들고 그것을 담벼락에 붙여 말린다.

이때 벽에 붙은 소똥 덩어리는 이미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집 바깥에서 들어올지 모르는 부정을 막는 것이다. 우리 식으로 치자면 부적으로 액막이를 하는 셈이라고나 할까? 

이 외에도 소똥을 물에 개서 집안 구석구석에 바르기도 한다. 특히 신성한 곳에 발라 그곳이 부정을 타지 않도록 한다.

아이의 출산시에 탯줄을 끊어 주러 불가촉민이 왔다 가면 산모의 집안 여인들은 소똥 갠 것을 토방에 바름으로써

그 불가촉민으로 인한 오염을 제거한다.  연중 계속되는 축제와 의례 때가 되면

며칠 전부터 소똥을 개서 토방과 앞마당에 바르는 것도 바로 집안 정화의 의미에서이다.

이런 목적이 아니더라도 일 주일에 한 번 정도는 소똥 갠 것으로 토방과 안뜰을 발라 준다.

인도식 장판 깔기인 셈이다. 이는 물론 부정을 막자는 뜻이겠지만 실생활에 유용하기도 하다.

묽게 개서 바른 소똥이 마르고 나면 똥 냄새도 없어지고 먼지를 쓸어내는 비질을 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여러 모로 산뜻하고 상쾌해진다. 중요한 종교 의례나 통과 의례 때에도

소똥은 자주 등장하여 정화와 부정막이의 기능을 해 준다.

 쉬바 신을 믿는 사람들은 성화 의례 때 고행자들을 화장한 재를 몸에 칠하는 것이 보통인데

그 대신 소똥을 태운 재를 몸에 바르는 경우도 있다. 모든 의례 때 사용하는 신성한 장소를 소똥을 발라 정화시키며

그때 놓이는 성스러운 불을 붙이는 불씨도 소똥 말린 것을 사용한다.

인도의 설날인 홀리(Holi) 때는 첫 짜빠띠(chapati)를 만들어 먹는데 그것은 반드시 새로운 소똥 불꽃에 굽는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소똥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없이 소중하다.

얼마든지 구할 수 있고 그 위력을 마음껏 누릴 수 있으니 그야말로 모두에게 평등하다.

그래서 소가 한없이 고맙고 또 고마울 뿐이다.

 나무기둥에 척척 붙여놓았다.

 마치 장식품처럼

벽면을 다 채웠다.

 어린아이는 무엇에 쓸려는지 자기만한 양재기를 들고 나올려고 하다가

 

 주저앉아 흙장난을 한다.

 

동네 주민

 

 

 조그만 가계를 보던 이는

 오로지 물을 반찬삼아 소찬을 맛있게 먹었다?

 

 

 단체버스도 호텔주변에 서있는 버스도 식사가 끝났는지

지친듯한 아낙네는 버스안에 있고

연장자들은 길건너에서 쉬는 동안

젊은 남자들이 식사가 끝난 집기들을 챙긴다.

그런 와중에 볼상사납게 인도에서 실례를 하는 자도 있다.

자연이 부른다. 

멀리 죽림정사가 보인다.

자전거 빵꾸 때워요 

주변집들도 설겆이를 하고 

아이들은 제일 큰 형의 인솔하에 놀려나간다.

 

대장경의 산실, 삽타파르니(Saptaparni)동굴(七葉窟) 가는 길

삽타파르니(Saptaparni)동굴(七葉窟)

고타마 붓다께서 입적한 후 500명의 제자들이 칠엽굴에 모여 경전을 결집했다

죽림정사는 중인도의 마가다국에 있었던 최초의 불교 정사(精舍)이다.

 “구성(舊城)의 북쪽을 나가 300여보 되는 길 서쪽에 카란다(迦蘭陀) 죽림정사가 있는데,

지금도 존재해 있으며, 중승(衆僧)이 깨끗이 청소하고 있다”고 법현(法顯)의 『불국기(佛國記)』에 기록되어 있는 이곳 죽림정사는

불교 교단 최초의 정사라는데 그 의미를 갖는다. 현장(玄奘)의 설명에 의하면 원래 이곳 정사는 카란다 장자가 외도에게 기증했었는데,

그 후에 부처님을 만나 설법을 듣고 죽원에 외도들을 살게 하고 이제 하늘과 인간계의 스승으로 하여금 살게 할 수 없음을 후회한 끝에

외도들을 내쫓고 부처님의 정사를 세우게 했다고 한다.

 

 

 

베누바나(죽림정사) 

 

 

유달리 대나무가 많다.

원래 이곳 죽림정사는 아치형의 입구를 지난 숲의 왼쪽 부분, 스투파 혹은 승원터로서 추정되는 자그마한 언덕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 그 언덕에는 몇몇 무슬림교도들의 무덤들만이 세워져 있을 뿐 사원터임을 추정할 만한 아무런 흔적도 발견할 수 없는 채,

그 옆에는 죽림정사의 이름을 대신하듯 약간의 대나무숲이 우거져 있을 뿐이다.

 

1905년~1906년 사이 인도 고고학국에 의해 행해진 조사 결과, 언덕 주변에서는 9개의 스투파 기단부 및 요사채의 기초가 발굴되었으나,

이미 스투파들은 해체되었고 흙이 담겨진 항아리 하나만이 출토되었을 뿐이다.

한편 언덕 동쪽면에서는 10~11세기 경의 문자로 씌여진 법신게(法身揭)의 일부와 연기법(緣起法)에 관한 게송이 담겨진 보살 좌상 및

두 남자의 형상이 발견되었던 한편, 두 개의 감실에서 각각 불상이 출토되었으나 그 밖에 주목할 만한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 언덕의 북쪽 약 100m 정도의 거리에는 이곳 정사를 기증한 장자의 이름을 따서

카란다(Karanda, 迦蘭陀) 연못이라 불리우는 작은 연못이 조성되어 있어, “죽림정사에서 북으로 200여보 가면 카란다 연못에 이른다.

 옛날 여래가 이곳에서 설법을 많이 했었다. 물은 맑고 팔공덕을 갖추고 있었으나, 부처님 열반후 말라버렸다”고 현장(玄奘)은 기록하고 있다.

 

 

 

 

 

  

우리도 죽림정사를 떠나고

우리나라에서 온 사찰팀도 죽림정사를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