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India(2012,Jan)

8-2 유미죽을 공양했다는 수자타 사원

봉들레르 2012. 3. 4. 12:37

 

우루빌라 가섭사원과 붙어있는 수자타 사원입구에 동네 불가촉천민들이 양옆으로 도열해 있다.

 

이곳에서 싯다르타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고자 긴 고행에 빠진다. 굶기를 밥 먹듯 하며 어언 6년의 세월이 흐르자

몸이 야위어 손으로 배를 만지면 등뼈가 만져질 정도였다.

죽음의 끝자락에서 싯다르타는 천녀(天女)의 소리를 듣는다.

“리라(하프의 일종) 선을 너무 팽팽히 당기지 말라. 그 선이 끊어질지 모른다.

그렇다고 너무 느슨하게 하지도 말라. 소리가 울리지 않을 것이다.”

궁극적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는 안락과 고행이 적절히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다.

이때 이곳을 지나던 우루빌라 지방 성주의 딸 수자타가 쓰러져 있는 싯다르타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와 조석으로 유미죽을 끓여 봉양한다. 몸을 추스른 싯다르타는 다시 니련선하 근처로 나가 보리수 아래에서 7일 동안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해탈의 즐거움이 가득했다. 붓다는 연기법을 깨우침으로써 출가의 과제였던 인간 존재를 구제할 길을 보았다.

 

수자타가 봉양을 한 그 장소다.

 

공양을 할 정도로 잘 살던 동네가 지금은 동냥을 하지 처지로 바뀌었다.

단체로 구입을 했는지 한결같이 깡통들이 똑같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수자타여인이 싯달타에게 한 그릇의 유미죽(우유에 꿀과 설탕을 섞어 만든 음식)을 주는 모습속에 젖소도 있다.

 

그 때 함께 고행했던 5명의 사람들은 "옛날의 태자는 전륜성왕의 지위를 버리고 카필라성을 나와서 산과 들 가운데 들어가

오랫동안 고행을 하여 도의 결과가 성취되려고 하는데 절개가 굳지 못하여

 이제는 멋대로 마시고 먹으며 편안히 잠이나 자는데 이자는 이제 타락했다." 하고

헛되이 수고로움만 더한 것을 억울해 하고 바라나시 녹야원의 눈 밝은 성인에게 가서 도를 구하기로 하고 길을 떠나갔다.

싯다르타는 인근(마하보디사원)의 보리수 아래에서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다

 

한편 보살은 수자타의 젖 죽 공양을 받고 기력을 차리긴 차렸으나 많은 세월 동안 극심한 고행을 한 탓에 몸이 야위고 힘이 약해서

 발을 옮기기조차 어려워지자 언덕의 나무가 가지를 드리워 주므로 그것을 잡고 또 걷고 걸어서 보리수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면서 생각하였다.

‘과거에 여러 부처님께서 무상정등각을 이룰 때 어떠한 자리를 펴고 앉았을까?’ 그 때 보살의 오른편에 풀을 베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보살은 그에게 가서 남자가 손에 든 풀을 살펴보았다. 풀은 푸르고 부드럽기가 마치 공작의 깃털과 같았고, 좋은 향내가 풍겼으며,

 그 풀은 오른쪽으로 나선을 그리고 있었다. 보살은 남자 길상에게 다가가서  인자하고 온화한 마음으로 풀 얻기를 희망하였다.

길상이 곧 부드러운 풀 자리를 보시하자 땅은 크게 진동하며, 허공에서는 '오늘 악마들을 항마시키고

단 이슬의 위없는 바르고 참됨을 이룩하소서' 라는 합창소리가 들려왔다.

 

사원마다 그려져 있는 수자타가 죽을 올리는 장면

미얀마인의 보시로 만들어진 사원

그래서 그런지 미얀마인들이 사원에 삥둘러 앉아있다.

다같이 뺨에는 칠을 하고서

미얀마 스님이 열심히 설명을 한다.

 수자타 사원에 있는 유미죽을 올리는 수자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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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자타사원에서 다시 오토릭샤를 타고 

10분을 가면

 

수타자집터가 나온다.

수자타 집유적 

수자타 집터

성도 전 부처님께 유미죽을 공양했던 우르빌라 지방 성주의 딸인 수자타의 집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이곳도 발굴이 진행중에 있다.

 이곳에는 원래 흙으로 작은 불탑을 세워 수자타가 살았던 곳이라는 것을 표시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불교를 장려했던 아쇼카왕을 시작으로 7~8세기에 걸쳐 조금씩 규모를 넓힌 아주 큰 벽돌 불탑이 세워져 있다

 

위에 둥글게 보이는 부분이 수자타집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