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India(2012,Jan)

4-3 산치대탑 동문

봉들레르 2012. 1. 29. 13:37

 

 

 

 

 

 제1탑 동문 약쉬(Yakshi) 여신상

인도 산치 대탑의 난간이나 많은 불탑의 문에는 반나(半裸) 또는 전나(全裸)의 모습을 한

약사나 약시상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기라도 하듯 돌올하게 조각되어 있다.

그 약사나 약시가 바로 야차로서 우리가 보통 생각하고 있는 무시무시한 귀신의 모습과는 너무나 달라,

과연 그러한 온화한 자태가 야차의 본래 형상일까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보통 떠올리는 야차의 얼굴은 송곳니가 밖으로 삐져나온 흉칙한 악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탑의 외변 또는 탑신부에 위치하여 삿된 무리의 출입을 막는 수호신으로서의 역할은 온화한 모습을 한 이건

흉칙한 모습을 한 이건, 이들 모두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 분모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면 야차는 왜 이다지 상반된 두 가지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것일까.

그 둘은 별개의 인물이었는데 단지 똑같은 이름으로 불려진데 불과할까?
고대 인도 신화에서도 야차는 두 가지 형상으로 나타난다. 좀 전에도 말했듯이

그 하나는 무시무시한 귀신의 일종으로서의 야차이며 다른 하나 온화하고 아름다운 풍요의 신으로서의 모습인데,

후자가 전자보다 훨신 역사가 깊다. 그리고 야차는 북방 산악 지대에 거주하던 재보(財寶)의 신(神), 쿠베라(Kuvera)의 부하로서

나찰(羅刹)과 더불어 여러 신과 재보를 수호하는 임무를 맡고 있기고 하는데,

여기서도 온화한 모습과 흉칙한 모습, 두 가지 얼굴이 모두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온화한 모습이 야차의 본래 얼굴이고 나중에 흉칙한 형태로 변한 것일까.

그러면서 두 얼굴이 삶의 현장에서 혼재되면서 혹은 이렇게, 아니면 저렇게 보여진 것인가?
),

여신 약쉬상은 산치 미술의 표현의 풍부함을 보다 분명하게 말해준다.

가장 아름답고 보존도 양호한 것이 동문의 기둥과 제3횡량의 끝을 연결하는

까치발의 삼각형 공간을 정교하게 활용한 나무 아래의 약쉬상이다.

망고나무의 줄기 사이로 오른팔을 끼워 넣고, 왼손으로 가지를 잡은 채

전신을 대담하게 굴곡시켜 서 있는 자세는 허리장식만을 달고 있을 뿐

전라의 부드러운 육체와 서로 어울려, 인도적인 미와 풍요와 관능이 합쳐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동문의 남쪽 기둥에는 하단의 마카라의 입에서 나온 덩굴이 굽이치면서 위로 뻗어 있고,

 그 사이에는 전개 ․ 반개 ․ 봉오리 모양의 연꽃과 오리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 작품은 풍요의 상징 ‘여의(如意) 덩굴’(kalpalatā) 로 조각새김도 깊고 자연스러우며, 인도적 정감이 넘치며 부드럽고 생생하다

 

 

 제1탑 동문 정면 위부터 제1,2,3횡량

 

 제1횡량 과거칠불

제2횡량 출가유성 1세기초 화면 왼쪽에 카필라바스투의 황성이 그려져 있고

 마부에게 이끌려 그문을 나오는 말이 오른쪽으로 4번 반복하여 표현된다.

말은 말발굽 소리를 낼 수 없도록 말굽이 신들에 의해 떠받들어져 있는데,

그 위에 태자의 모습은 없지만 산개에 의해서 암시되고 있다.

화면 오른쪽 끝의 뒷부분에는 불족적(佛足跡)이 표현되어 있고,

드디어 숲으로 들어가는 태자와의 이별을 슬퍼하는 마부와 말의 모습이 보이며,

그 앞부분에는 마부와 말이 성으로 돌아가는 장면을 나타냈다.

말 뒤에는 태자를 상징하는 산개가 없어서, 태자가 이미 고행림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화면 중앙의 성스러운 나무는 출가의 계기가 된 ‘수하관경(樹下觀耕)’ 의 잠부나무로 생각된다.

이 ‘출가유성’ 장면은 연속적인 이야기 표현의 수법을 보여주고 있어서 흥미롭다.

제3횡량 보드가야  정사참배

아쇼카 왕의 보리수 순례 장면 세부. 오른편에 코끼리가 무릎을 꿇고 있고

아쇼카 왕이 코끼리에서 내려오고 있다. 그는 아직 보리수를 향하여 얼굴을 돌리지 못하고 있다.

 

 

 

 동문 북쪽기둥 바깥면의 장식인 연꽃봉우리가 활짝 핀 모습과 지는 모습은 윤회를 나타냈다.

 

 

 

대각을 이룬 부처

 제1탑 동문 남면기둥. 니련선하도섭의 기적, 1세기초

사파 형제를 불교에 귀의하게 만들었던 석존이 니련선하를 도보로 건넌 기적을 행한 이야기이다.

 화면 가득히 수면을 표현하였는데 물을 건너 석존은 석판(經行石)으로 표현되었고

, 놀란 카샤파 삼형제가 배를 띄우고 있다. 화면 우측 하단의 보리수는 다 건너간 석존을 표현하며,

그 앞에서 형제들이 이 기적을 찬탄하고 있다.

강의 물결 ․ 물새 ․ 연화 ․ 수목 등의 표현은 개념적이고 원시적인 기법을 보여주지만,

오히려 친숙함이 느껴지고 인도미술 특유의 자연에 대한 친밀한 감정이 넘쳐나 있다.

이 장면의 원근법은 원근을 상하에 두고, 관찰자의 시점이 화면의 대지(大地)와 끊임없이 병행하는 기법을 이용하고 있다,

제1탑 동문 남면기둥

빔비사라왕의 방불, 1세기초

멀리 있는 인물의 발 부근에 대지를 표현하는 단계적인 원근법을 따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