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India(2012,Jan)

4-5 산치 제2, 3 스투파

봉들레르 2012. 1. 30. 00:54

 

산치51번 수도원

1952년 스리랑카정부에서 이곳 유원지에 건립한 스리랑카 사원

제1탑에서 조금 아래로 내려가면 제2탑이 나온다.

제2탑 스투파

탑문은 없고 사방에 입구를 가진 난간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난간의 기둥은 장식문양이 주를 이루는 비교적 간소한 부조로 장식되어 있다.

부조장식의 테마는 한정되어 있기는 하나 그 표현은 변화무쌍하다. 연화문은 가장 애호되었던 모티프로,

활짝 핀 연꽃을 기본으로 하면서 연꽃 봉오리나 측면의 만초를 다양하게 조합한다든지,

만병이나 잎 또는 거북이나 마카라의 입에서 생겨나는 의장을 받아들이는 등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동물로는 코끼리․ 소 ․ 말 ․ 사슴 ․ 사자 ․ 공작․ 오리 ․ 마카라 ․ 나가 ․ 그리핀 등이 나타난다.

 이들은 불전 중에 나오는 동물과 연결해서 해석하는 설도 있지만,

풍요와 힘을 상징하는 길상의 동물로서 당시 사람들의 상상력 속으로 스며들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산치 3번 스투파가 올려다 보인다.

1851년 커닝험의 조사에 의해 스투파의 내부 중앙에 있던 안치실에서는 2개의 석제 사리용기가 발견되었는데,

 각각 ‘사리불(舍利佛)’ 과 ‘마하목건련(摩訶目揵連)’ 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잘 알려진 대로 사리불과 목건련은 석가모니 부처의 으뜸가는 두 제자로서 ‘지혜제일’과 ‘신통제일’ 이라 불린 분들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산치 대탑에는 사리불과 목건련의 스승인 석가모니 부처의 사리를 모셨을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직경 10m, 높이 6m 정도의 크기로서, 제2탑과 거의 동일한 규모의 크기이다.

1851년 커닝험의 조사에 의해 스투파의 내부 중앙에 있던 안치실에서는 2개의 석제 사리용기가 발견되었는데,

각각 ‘사리불(舍利佛)’ 과 ‘마하목건련(摩訶目揵連)’ 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 스투파도 간소한 장식을 동반하는 기단 테라스와 계단의 난간과 함께 슝가 왕조 때에 건립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제3탑에도 지상에 난간이 설치되었지만, 단편만이 잔존해 있을 뿐 다른 건축의 부재로 사용되었다.

남쪽에 건립된 문(도 26)은 현존하는데, 풍부한 부조로 장식되고 있다.

이 문은 사타바하나 왕조시대에 속하지만, 시기상 제1탑의 4개의 탑문보다는 늦다.

제3탑의 탑문에는 불전도는 없고 약샤와 연화(蓮華) 등의 장식문양과 스투파 ․ 보리수의 공양 외에

‘인드라의 천국(天國)’ 이 표현되어 있지만, 그 표현은 제1탑의 서문 보다 더 억눌리고 생기가 결핍된 감이 있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잘 알려진 대로 사리불과 목건련은 석가모니 부처의 으뜸가는 두 제자로서 ‘지혜제일’과 ‘신통제일’ 이라 불린 분들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산치 대탑에는 사리불과 목건련의 스승인 석가모니 부처의 사리를 모셨을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후 이곳에서 출토된 사리는 영국 빅토리아 박물관 및 알베르트 박물관에 보존되었으나

2차대전이 끝나자 사리는 스리랑카와 미얀마 및 동남아시아 불교국에 나뉘어졌고,

1952년 스리랑카 정부에 의해 제3탑 옆에 사원이 건립됨과 동시에 나뉘어진 사리는

다시 되돌려져 현재 제3탑 바로 옆 스리랑카 사원에 모셔져 있다.

산치 기타사원과 수도원

 

화장실 표시가 HIS와 HER이다

스리랑카에서 부처가 앉아 있던 보리수나무에서 나온 묘목을 가져다 심었다는 보리수나무

 

산치탑들을 보고 내려가는 길에 이제서 힘들게 올라오는 인도인들

'My travel abroad. > India(2012,Jan)' 카테고리의 다른 글

4-7 보팔귀환  (0) 2012.01.31
4-6 산치 사람들  (0) 2012.01.30
4-4 산치대탑 남문, 서문  (0) 2012.01.29
4-3 산치대탑 동문  (0) 2012.01.29
4-2 산치대탑(Sanchi greast stupa) 북문  (0) 2012.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