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군의 우연한 발견
동료 대위들과 군인들을 뒤로 남겨두고 길을 떠난 존 스미스 대위는 계획에 없었던 강가에 우연히 도착하게 되었다.
그 강 근처에는 마치 오랜 시간이 흐르며 바람과 물에 의해 형성된 듯한 매우 이상한 형태의 동굴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동굴 근처로 가까이 다가가면서 그는 각 동굴의 입구가 마치 거대한 관문과도 같은 우아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마침내 동굴 바로 앞에 도착한 그는 그 앞에 마치 미지의 문명에 의해 말발굽 모양으로 깎여져 만들어진 듯한
29개의 동굴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져있음을 목격했다. 그의 이름을 동굴 벽에 새겨놓을 때
그는 그 자신이 고대 문명이 만들어낸 웅장한 이 유적지를 발견한 최초의 유럽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약 200여 년이 흐른 후에도 그 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 석굴들의 웅장함에 매우 놀라곤 한다.
이 유적지는 데칸 평원에 바고라 강이 가로질러 흐르고 있는 깊은 계곡 내 아잔타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아잔타 석굴은 1983년 타지마할과 함께 인도에서 처음으로 유네스코 문화 유적지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아그라에 위치한 샤 자한의 낭만적인 사랑에 관련된 타지마할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것과는 달리
아잔타 석굴은 이 국가의 위대했던 역사를 증명하는 산물로 간주하는 인도인들 사이에서만 더 유명한 듯하다.
아잔타 석굴은 언제나 관광객들로 북적 인다. 그 당시 이 위대한 불교 유적지를 차지하고 있던 주 고객은 원숭이들임이 분명했다.
존 스미스 대위가 예상했듯이 이 석굴들은 단지 지형적 움직임이 만들어 낸 산물이 아니었다.
이 석굴들은 2000여 년 전 인공적으로 세워졌으며 아름다운 그림들과 벽화들로 장식되었던 것이다.
이 각각의 석굴들은 절벽의 흙을 하나하나 다 손으로 파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화려한 고대의 흔적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후 하워드 카터가 이집트에서 동굴들을 발견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스미스 대위와 그 일당들은 횃불을 들고 동굴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서면
놀랍게도 그들은 동굴 안에서 수많은 동물 조각상, 화려하게 장식된 기둥, 불상,
마치 돌로 지어진 성당처럼 하늘 높이 위치한 지붕들을 발견할 수 있다.
동굴의 벽과 천장에는 밝은 색이 입혀진 화려한 그림들이 놀랄 만큼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다시 마드라스로 돌아온 스미스 대위는 그가 발견한 것들에 대해 그의 상관에게 보고했고
결국 이 소문이 런던의 ‘왕실 동양 협회’에까지 전파되었다.
인도의 그토록 외진 지역에서 길을 제대로 찾아 낸 군인들과 행정관들 사이에 흥분의 기운이 넘쳐났다.
그 이후 바고라 계곡으로 가 신비스러운 비밀의 장소를 찾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19세기 중반, 사람들은 이 동굴들이 불교를 신봉하던 사람들의 동굴이었고 두 가지 목적으로 동굴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대해 동의하기 시작했다.
몇몇 석굴들은 스님들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 거주할 수 있었던(또 동시에 몬순 계절에 폭우를 피하기 위한) 사찰이었다고 하며
또 마치 성당과 같이 보이는 다른 석굴들은 부처님 숭배의 장소여서 부처님을 상징하는
표시들(아주 오래 전에는 부처님을 그림이나 동상으로 표현하는 것이 금지)이 잘 보전될 수 있었다고 한다.
몇몇 석굴의 예술 작품들은 무려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지기 시작된 것으로 간주된다.
오늘날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벽화를 만지지 말라는 경고를 받는다.
몇몇 벽화는 독특한 기술이 도입되어 색이 사라지지 않도록 보호되었다고 한다.
또 몇몇 벽화는 유리를 덮어씌우거나 플라스틱 방어막을 씌어서 훼손되지 않도록 했다.
하지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의 유적들이 폐허 속에 방치되었고 이곳을 스쳐간 부주의한 관광객들에 의해 손상되고 말았다.
그 당시 미술가들은 놀랄 만큼 섬세한 기술로 아름다운 젊은 여인, 공작새, 말, 꽃, 사슴 등을 그려냈다.
단지 그 당시 그림으로 표현할 수 없었던 부처님의 모습만 찾아 볼 수 없을 뿐이다.
인도의 다른 통치자들이 종종 그랬던 것처럼, 아잔타 지역을 지배했던 사타바하나스 왕조는 붕괴되고 말았다.
수세기 동안 아잔타 지역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5세기 무렵, 모든 상황이 다시 바뀌고 말았다.
하리세나 황제가 사찰을 건립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이번에는 인도의 전통 예술 기법이 더해진 아름다운 불상과 보살들의 동상이 세워질 수 있었다.
이런 업적이 이루어진 후 하리세나 황제는 세상을 떠났고 몇몇 작은 전쟁들이 일어난 후 480년경 석굴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동쪽의 엘로라 지역으로 이주해 그 곳에 아잔타 석굴과 비슷한 유적지를 세웠다.
7세기 인도에 불교가 금지되면서 인도 땅을 떠나 망명길에 나서야만 했던 스님들은 그들이 살던 석굴들을 뒤로 남겨두어야만 했고
이곳의 석굴들은 동물들이나 어쩌다 한번씩 이 곳을 어슬렁거리는 사두들의 차지가 되고 말았다.
수세기 전 유물 보호해야
제10석굴은 무려 2000년도 더 된 석굴이며 이곳에 부처님의 모습이 그려진 것은 그로부터 600년이 지나서였다고 한다.
인류가 전염병이라는 재앙을 맞이하고 십자군이 등장했으며 거대한 제국을 설립하기도 하고
신세계도 발견한 1400여 년의 기간 동안 동굴은 많이 손상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었다.
마드라스 부대 출신의 스미스 대위가 호랑이를 찾아 길을 나섰던 1819년 봄날까지 아잔타 석굴은
그저 고요하고 잊혀진 채로 수 천 년간 그렇게 남아있었던 것이다
아잔타의 석굴은 모두 29개이다. 어떤 곳은 일반인들에게 개방된 곳도 있고, 어떤 곳은 자물쇠로 굳게 닫혀진 곳도 있다.
따스한 볕이 잘 들도록 대부분의 석굴은 남향이나 동향으로 자리를 잡았다.
석굴의 주변 경관은 작은 풍경소리가 은은하게 퍼질 만큼 고요하고 평온한 느낌을 갖게 한다.
무엇보다도 아잔타 석굴이 중국의 둔황 석굴을 거쳐 우리의 석굴암까지 이어졌다는 느낌이 왠지 아잔타에 대한 관심을 더욱 고조시킨다.
"어떻게 해서 이런 곳에 불교 석굴을 만들었을까?"하는 의문이 석굴을 보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다만 석굴이 과거 동서양의 문화와 경제교류를 담당했던 실크로드에 아주 인접했다는 사실이
희미하게나마 아잔타의 성립 배경을 유추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일 뿐이다.
지나가던 많은 상인들은 아잔타 석굴에서 잠시 머물며 더위와 피로를 풀었고, 때로는 큰 스님들로부터 바른 가르침을 얻었을 것이다.
그래서 상인들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석굴은 많은 후원금을 바탕으로 많이 지어졌을 것이다.
어찌 보면 아잔타 석굴의 생성은 무역상들의 경제적 지원이 없었다면 이처럼 화려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검표소를 지나자 흑인 공주와 `파담 빠니 벽화`로 잘 알려진 1번 석굴이 나온다.
이곳은 워낙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곳이라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벽화에 대한 유혹이 있겠지만 보고 싶은 욕망을 잠시 접어두고,
석굴 여행은 제일 안쪽의 28번 석굴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석굴마다 매겨진 일련의 번호들은 석굴이 만들어진 연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편의상 붙여놓은 것이다.
입구의 1번 굴에서 맨 마지막 28번 굴까지 저마다 모양과 조각 그리고 양식들이 다양하기 때문에
비교적 시간적 여유를 두고 석굴을 감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석굴 내부에 들어갈 때는 모자와 신발을 벗어야 한다.
만약 신발을 신고 벗는 것이 불편하다면 맨발로 아잔타 석굴을 여행하는 것도 좋다.
맨살에 닿는 석굴 바닥의 질감을 통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000년 전으로 돌아가 석굴을 만드는 장인이 되는 기분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다.
유구한 역사와 높은 예술적 가치를 지닌 아잔타 석굴은 시대와 종교를 막론하고 인류 문화적 관점에서 꼭 방문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1~2시간 주마간산식으로 대충 둘러보고 가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명제처럼
사전에 아잔타에 대한 개괄적인 정보라도 알고 간다면 석굴여행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고 아잔타 석굴 입구에 다다르면 오염물질을 적게 배출하는 천연가스용 버스를 타고 석굴 앞까지 이동한다.
아잔타 마을
수확이 끝난 목화밭
아잔타로 들어가는 방법은 T-junction이란 곳에서 무공해 버스를 타고 입구로 가는 길과
View point에서 걸어서 내려가는 길 두가지가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View point에서 아잔타 전경을 보면서 내려가는 길이다. 우린 그 길을 택했다.
매표소에서 티켓을 구입하고, 언덕길을 따라 200m쯤 올라가면 말발굽 모양으로 휘어진 와고라 하천과
이를 따라 가파른 벼랑에 조성된 석굴사원들이 햇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멀리 보이는 아잔타 왼쪽으로 가면
마치 사막지대와 같은 지역이 나온다.
꼬불꼬불한 와고라강의 지형
말발굽 모양을 하고 있는 와고라강 협곡
말발굽처럼 휘어진 와고르(Waghore) 천변의 암벽지대를 따라 내려오면
협곡의 ‘인드야드리 언덕’ 위, 길이 1.5km 높이 76m에 이르는 침식단애(浸蝕斷崖)들 사이에,
크고 작은 29개의 석실로 조성되어 있다
모두 자연 암벽을 뚫고 들어가면서 기둥을 만들고 불상이나
불탑을 만드는 수법으로 완성한 석굴이다.
강 앞쪽 언덕 전망대에서 바라본 석굴
전망대에서 내려가면 강을 건너는 다리가 나온다.
교과서에도 나오는 아잔타석굴이 눈앞에 펼쳐진다.
좌 17, 16, 15, 14
좌 20, 19, 18, 17,
좌 2, 우 1
5 중4,3
좌5,4,3,2,1
6번
하21 상29
좌23,22,21
24번 미완성
26번
코끼리문 16번
다리를 건너면서 본격적인 석굴 탐방이다.
아잔타 석굴 배치도
이 배치도에는 8번앞에 다리가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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