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India(2012,Jan)

9-8 불타 다비장 라마브하르 대탑

봉들레르 2012. 3. 19. 18:06

 

열반상이 있는 열반당으로부터 동쪽 16km 지점에 있는 탑으로, 원래는 마우리아왕국의 왕들이 대관식을 거행하던

 ‘마쿠타 반다나 차이트야’(Makuta Bandhana Chaitya, 天冠寺 또는 寶冠寺)라고 불리는 마우리아왕국의 성지였다.

 

 

 

 

경전에는 부처가 열반한 후, 7일이 지나 마우리아왕국의 사람들이 부처의 유체를 살라나무 숲에서

열반지에서 1.6Km 떨어진 라마바르 수투파가 있는 이곳으로 옯겨와 장례를 치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장례식은 1주일 동안 음악과 춤이 끊이질 않았고, 헌화행렬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부처의 유해를 깨끗하게 씻기고 여러 벌의 수의를 입힌 뒤 기름에 목욕시키고

철관에 넣어 화장용 장작 위에 올려 다비식을 거행하였다.

화장을 하기위해 향나무를 쌓아올린 관에 여러 차례 불을 당겨보았으나 어쩐 일인지 관은 타오르지 않았다고 한다.

부처님의 수제자인 마하카샤파가 500명의 비구들을 이끌고 부처님을 뵙기 위해

꾸시나가르에 이르러 부처님 관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세 번 돌면서 찬탄하는 게송을 읊자

향나무 더미에선 스스로 불이 일어났으며, 이렇게 하여 장례식은 거행되었다

 이곳에서 화장을 햐여 많은 사리가 수습됐다한다. 다비식이 끝난 뒤 불타의 사리를 갖고자 각 부족 간에 쟁탈전이 벌어져

 전쟁 직전 상황까지 이르렀으나 드로나의 중재로 마가다국 등 7개국이 고루 분배받아 더 큰 분쟁은 없었다한다.
그리하여 쿠시나가라, 마가다, 바이샬리의 카필라바스투, 알라갑파, 람그람, 파바, 베타누비파둥에 불타 사리탑이 세워지게 됐는데

 드로나는 사리를 분배했던 병을 얻어 병탑을 세웠고 뒤늦게 도착한 모랴족은 타다 남은 재로 회탑(灰塔)을 건립했으며

수염과 머리털을 안치한 탑까지 모두 11개의 사리탑이 세워지게 됐으며

 그 후 우리나라 등 여러 나라에도 고루 배분되어 사리무덤, 사리탑등이 조성됐다

오른쪽의 작은 스투파는 당시 사리를 분배받은 국가를 나타낸다

현장은 ‘이 곳의 땅은 황금색이며, 마음을 가다듬어 찾으면 부처의 사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지금도 이 곳의 지하통로로 향하는 입구 쪽에는 불에 탄 흙들이 쉽게 발견된다.

벽돌로 쌓은 전탑(塼塔)이며, 현재 남아있는 탑의 기단부는 지름이 47m이고, 탑신의 지름은 34m이며, 높이가 15m이다.

현재 남아있는 탑의 크기만 봐도 인도에서 가장 큰 불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비탑을 향해 앉은 불자들의 기도

 

탑의 한편에 부처의 법구가 놓였던 단이 있는데 같은 크기의 단이 두개 있다.

한곳에는 부처의 법구를, 다른 한 곳에는 각종 공양물을 쌓아놓고 다비의식을 진행했다고 한다.

 

 

볼일을 보는 사람들

히란야바티강가

 

강가의 작은 힌두사원

초라한 히란야바티강

설사를 계속하면서 스물 다섯 차례나 휴식을 취한 붓다는 마침내 쿠시나가르의 히란야바티강을 건너

두 그루의 사리나무 사이에서 고요히 누워 열반에 들었다는 그 강이다.

 

일을 하는 자가 있으면 구걸을 하는 자가 있다.

그것도 볼 거리라고 음악을 연주하며 구걸을 하여 주머니에 넣는다.

대탑 주변에 작은 힌두사원

 

온갖 치장을 한 어린아이

대탑주변 마을

 

집안을 들여다 보니 생활도구가 간단하다.

 

오후5시에 호텔도착했다. 아침5시반부터 시작한 일정이다.

이지역에 대표적인 유적지인 열반당의 열반한 부처가 호텔로비에 상징처럼 보인다.

저녁을 먹고 운동삼아 호텔주위를 여러바퀴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