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Austria(2009.Jul.)

11-4 빈(Wien)에서-필름 페스티벌

봉들레르 2009. 8. 20. 11:57

 

 이건 이별때문에 하는 포옹이 아닌것같다.

 

 

 

 일단 숙소로 돌아가서 쉬다가 밤에 시청앞에서 하는 필름페스티발을 갈 예정이다.

             3명이 남아서 캔커피등 필요한 것을 사면서 아이스크림도 사 먹었다.

 날씨가 더우니 지친다.

 숙소에서 쉰후에 다시 길을 나섰다.

 

 

 

 

 국회의사당

 한 쪽으로 사람들이 몰려간다.

 

 

         6월말부터 2달동안 시청앞에서 여는 필름페스티발

 여름에 빈에서는 공연이 열리지 않는다. 국립오페라 극장은 문을 닫고 빈 필하모니 등 주요 오케스트라는 해외연주로 공연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 필름페스티벌을 더욱 더 특별하게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매년 여름 빈에서 열리는 필름 페스티벌은 1991년에 처음 시작하여 올해로 19회를 맞이하였다. 처음에는 카라얀을 추모하기 위해 열린 행사로 아름다운 시청 건물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유명한 오페라, 발레 그리고 클래식 음악 공연을 필름에 담아 상영하게 되었다. 여름 7월과 8월 해가지고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시청사에서 열리는데 광장 주변 일대는 축제의 물결로 가득 찬다.

 관람객들의 40%는 외국에서 오는 관광객들이며, 14%는 오스트리아의 다른 도시, 지방에서 오는 관람객들이다. 야외에서 진행되는 행사이기 때문에 날씨에 따라 방문객 수가 많이 달라지지만 1992년에는 260,000명, 2004년에는 628,000명, 그리고 2007에는 680,000명 해년마다 이 페스티벌을 즐기는 방문객 수는 늘고 있다.

 

 시청 광장으로 들어서는 길에는 여러나라의 음식들을 팔고 있는 가게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있다. 오전 11시부터 자정까지 열리며 22개의 음식점이 있다. 오스트리아 음식뿐만 아니라 멕시코, 오스트레일리아, 프랑스, 이태리 등 세계 먹거리가 모여 있어 각국의 음식을 맛 볼 수 있다

 

 

 19년동안 과학 기술의 발달과 함께 기술적인 면에서도 많은 향상과 변화가 있었다. 2000년에는 16:9 비율로 된 화면으로 9× 6.5m 의 스크린 이 2007년부터는 20× 11.5m로 더 커졌으며 이것은 HD고화질과 60,000 센터 빛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화면을 통해 더욱 더 현장감 있는 생생한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웅장하면서도 세밀한 소리도 놓치지 않는 스피커를 통해 시각, 청각을 통해 우리들의 감성을 만족시켜주고 있다.

 스크린 앞에 반원형으로 6,000명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이 배치되어 있고 그 좌석들 뒤로 6층의 계단형 좌석을 만들어 1200명의 관객들을 더 맞을 수 있도록 되었다.

 맥주를 사서 의자에 앉아 마신후에 의자밑에 놓으면 된다.

 음식도 의자에서 먹고

 

야외 맥주홀이 생겨 마치 비엔나의 모든 관광객과 시민이 모두 모인 것 같이 들썩인다. 여름밤 시원한 맥주 한잔과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즐기는 맛은 심신을 상쾌하게 해준다.

 

 

 

 

            

              

 제일 인기가 있던 중국음식점

 

 맥주를 몇잔 마셔서 얼굴이 벌겋다.

 3개의 지붕이 있는 VIP석에는 180개의 좌석을 마련하고 있다.

 

 

 어둑어둑해지자 빈자리가 없다.

 

 8시반쯤 연주가 시작된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은 1908년 4월 5일 ~ 1989년 7월 16일)은 짤즈부르크에서 태어나고 죽은 오스트리아지휘자이다. 그는 전후 시기에 가장 유명한 지휘자 중의 한 명이며 세계에서 가장 음반 녹음을 많이한 지휘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카라얀은 베를리너 필하모니커를 35년 간(1955-1989) 지휘하였다

1791년 7월의 어느 날 저녁 이상한 풍채의 사나이가 찾아와 모차르트에게 레퀴엠을 작곡해주기를 부탁한다. 오랫동안 생활의 어려움을 겪어온 모차르트는 심신의 피로로 당장 작곡을 시작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으나, 완성할 날짜를 정하지 않는 조건으로 승낙하였다. 사나이는 작곡료는 충분히 주겠으니 의뢰인이 누군가를 알려고 하지 말라는 단서를 붙이고 돌아갔다. 그런데 이 레퀴엠을 의뢰한 사람은 발제크 백작으로, 그는 그해 2월에 세상을 떠난 젊은 아내의 1주기에 이 작품을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하기 위하여

철저히 의뢰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으나, 현재는 모차르트와 발제크 백작과의 계약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발견되어

앞의 이야기는 꾸며진 것으로 판명되었다. 

           

            카라얀이 말년에 지휘한 모짜르트의 마지막 미완의 작품인 Requiem

 말년이라 힘이 없어서 표정으로 지휘를 하는 것같다

 1840년 나폴레옹 1세의 유해가 세인트 텔레나 섬으로부터 운구되어 왔을 때, 연주된 곡이 바로 모차르트의 레퀴엠이었으며, 1848년 쇼팽이 사망하였을 때, 그의 유언에 따라 장례식에서 울려 퍼진 곡, 또한 이「레퀴엠」이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밤 11시경이 되어 연주가 끝나자 시청에 조명이 들어온다. 

다른 나라에 시청앞광장은 관광객들을 위해 볼거리와 먹고 마실거리를 위해 애쓰는데 우리는 시청앞광장에서 매일

데모다 위령제다 이런 것만 하고있으니 한심하다. 

끝났는데 사람들은 자리를 뜰려고 하지 않는다. 

 

 

 

돌아오는 길에 국회의사당 야경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