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Mexjco(2015 Jan)

19-3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프리다 칼로

봉들레르 2015. 3. 1. 13:51

 

 

 

박물관으로 가는 팀과 칼로를 보러가는 팀으로 이원화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는 20세기 멕시코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다.

한편 그녀는 민중벽화의 세계적 거장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의 아내이기도 하였다.

남편 리베라가 대형 벽화를 통해 민족적, 국가적 주제를 다룬 반면 칼로는 작은 캔버스에 개인적이고 보편적 여성의 고통을 표현하였다.

칼로는 1907년 멕시코시티 교외에서 태어났다.

독일 출신의 아버지는 독일어로 ‘평화’를 뜻하는 ‘프리다’를 그녀의 이름으로 지어 주었지만 그녀의 삶은 이름과 달랐다.

7살 때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게 되었고, 18살이 되던 해 그가 탄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여

커다란 철봉이 그의 배를 관통하여, 척추, 다리, 자궁을 크게 다쳤다. 이로 인해 평생 동안 30여 차례의 크고 작은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의사가 되고자 했던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그림에 몰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사고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은 그의 작품의 주된 주제가 되었다. 그녀의 상처는 사고로 인한 것뿐만이 아니었다.

세 번에 걸친 유산과 리베라의 수많은 외도 특히 자신의 동생 크리스티나와 외도는 결혼생활을 파행으로 몰고 갔다.

이혼하던 해에 그린 ‘두 프리다(1939)’는 당시의 그녀의 심정을 잘 드러낸다. 무표정한 두 프리다는 하나의 혈관으로 이어져 있다.

멕시코의상을 입은 오른쪽 자아의 심장은 이상이 없는 반면 왼쪽 자아의 심장은 심하게 찢어져 있다.

그리고 피를 쏟아내는 혈관에 직접 가위를 들고 조치를 취하고 있다.
칼로의 가슴앓이를 짐작할 수 있는 그림이다. 그림의 성격은 다분히 초현실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요소로 인해 생전에 칼로는 유럽에서 초현실주의 작가로 상당한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자신의 작품세계는 유럽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고, 멕시코에 뿌리를 둔 것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강하게 역설하였다.

어려운 신체적, 정신적 여건 속에서도 사회적 관습과 수동적 여인상을 완강히 거부하고

자신의 삶을 개척한 칼로의 모습으로 인해 페미니즘을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되었고,

1984년 멕시코 정부는 그의 작품을 국보로 분류하였다.

 

 

 

 

 

 

 

 

 

 

 

 

 

 

프리다는 1907년 7월6일, 멕시코의 코요아칸에서 유태계 헝가리안 독일인 아버지 기예르모 칼로(Guillermo Kahlo)와

스페인과 인디오의 혼혈인 어머니 마틸데 칼데론(Matilde Calderon) 사이에서 셋째 딸로 태어났다

가운데가 프리다 부모

 

 

아버지 기예르모 칼로(Guillermo Kahl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