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Uzbekistan(2014 Aug)

3-1 히바의 아침햇살

봉들레르 2014. 8. 19. 15:44

일관성 있으며 세계적으로 잘 보존된 도시의 유적이며 히바(Khiva)의 도심에 해당하는 이찬 칼라는

호라즘(Khorezm)의 잃어버린 문명을 훌륭하게 증언해 주고 있다.

주마 모스크와 같은 이찬 칼라의 몇몇 기념물은 주목할 만한 건축물이며,

크기는 웅장하지만 디자인은 단순한 마드라사의 경우는 중앙아시아 특유의 이슬람 건축에 대한 훌륭한 본보기이다.

히바의 가옥 건축은 그 설계와 건축 방식 때문에 이찬 칼라의 흥미로운 요소들 중 하나로 꼽힌다.

옛날 옥수스(Oxus) 강이었던 아무다리야(Amu Darya) 강의 서쪽에 있는 히바 오아시스는 대상들이

페르시아로 이어지는 사막을 건너기 전에 마지막으로 휴식을 취하던 곳이었다.

4세기에 히바는 이란 인들이 세운 호라즘(그리스어로 ‘코레스미아(Choresmia)’) 왕국의 중심지였다.

이 왕국의 번영은 이 지역의 ‘검은 모래(black sands)’를 비옥한 목초지와 정원, 과수원으로 바꿀 수 있는 수압 기술과 관련돼 있었다.

712년 처음 아랍 인이 이 도시를 정복했으며, 그다음에는 1221년 몽골 인들이 이곳을 차지했다.

1379년에는 몽골의 지배를 받다가 티무르의 수중에 넘어갔고, 1512년에 우즈베크 인들의 지배를 받으면서 새로운 나라의 수도가 되었으며,

1643년부터는 한국(khanate)의 수도가 되었다. 19세기 동안 독립을 누렸으나 1873년에 러시아의 보호국이 되었다.

직사각형 모양의 이 도시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즉, 이전의 요새화된 외부 도시인 디샨칼라(Dichan Kala)와 10m 높이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심지인 이찬 칼라로 나뉜다.

비록 1788년~1789년에 대대적으로 재건되기는 했지만, 주마 모스크를 제외하고 17세기 이전에 지어진 건축물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대부분의 공공건물들은 동서 축을 중심으로 하여 그 둘레에 무리지어 있는데, 그 한쪽 끝 옆으로 히바 군주들의 웅장한 집들이 이어져 있다.

북서쪽에는 1686년~1688년에 아랑 칸(Arang-Khan)에 의해 건설된 ‘고대 요새’ 쿠냐아르크(Kunya Ark)가 있다.

처음 지어졌을 때 쿠냐아르크는 가공할 만한 사각형 보루였지만, 19세기 초 알라울리 칸에 의해서 호화로운 궁전으로 바뀌었다.

1830년~1838년에 건설된 북동쪽의 타슈하울리 궁전(Tash-Khauli Palace) 역시 알라울리 칸을 위한 것이었다.

 그 외의 특별한 기념물들로는 파흘라반 마흐무트(Pahlavan Mahmud, 1247~1325)의 무덤과,

14세기에 지어졌을 당시의 배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세이드 알우딘(Sayid All-Uddin)의 무덤을 들 수 있다.

이찬 칼라의 많은 기념물이 비록 화려하지만, 개개의 기념물들보다는 더할 나위 없는 도시 구성과

19, 20세기에 지어진 주요 건축물들이 과거의 건축물과 함께 뛰어난 조화를 이루는 것에서 그 우수성이 유래한다

해가 뜨기 전에 이찬칼라로 들어섰다.

아직 문을 열기전이라 높은 장소를 찾기가 어렵다.

 

 

 

아침햇살에 물들어가는 이찬칼라

 

 

 

동문으로 나와 차들이 가는 곳으로 쫓아가 보니 시장이다.

 

납작한 복숭아가 특히 맛있었다.

사과도 아주 작은 사과가 맛있다.

 

 

 

세계공통 채소 토마토

 

 

 

 

본격적인 아침장을 위해 계속 차들이 밀려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