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정보/여행지정보

[레바논] 아랍, 역사의 향기 속으로

봉들레르 2009. 5. 7. 17:09

[레바논] 아랍, 역사의 향기 속으로


글쓴이: aatnb

등록일: 2007-05-04 01:05
조회수: 400 / 추천수: 34
 

사막의 땅, 일부 다처제의 나라, 전쟁과 내전으로 얼룩진 곳…….
우리네 마음 속에 자리한 아랍은 참으로 멀다.
아랍인들의 친절을 느끼고, 그들의 찬란한 역사를 보기 전에는 그럴 것이다.
아랍, 그 속으로 발을 들여놓기 전에는.

레바논과 시리아, 요르단 3개국을 여행한다는 말에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 반응은 ‘위험하다’. 이라크와 인접한 나라들이라는, 그야말로 막연한 걱정에 더해 지난 2월, 하리리 수상이 암살당한 후 심상치 않다는 레바논의 분위기가 한 몫을 거들었다. 실제 레바논에서는 배후 조종 국가로 지목된 시리아 국민 10여명이 암살됐다. 레바논에서 열심히 일하던 백만 시리아 국민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며 레바논 땅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 국제 뉴스는 간간히 레바논의 총선 결과를 알려준다. 레바논 곳곳에서 펄럭였던 선거 포스터들, 이제는 찢겨져 쓰레기통으로 들어갔을 터다. 레바논 땅을 떠났던 시리아 국민들도 발길을 돌려 하나 둘 레바논으로 돌아올 게다.

레바논, 그 속에 들어가기 전까지 주변 국가들과 얽히고 설킨 전설 같은 이야기는 베이루트의 스카이라인마저 묘하게 변모시킨다. 저 안에서는 끝없는 음모와 모략이 일어날 듯.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는 한데, 활기로 넘쳐났다. 도로에 줄을 선 자동차와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파란 하늘만큼 상쾌한 도시 곳곳에는 노천 카페가 즐비하다. ‘아랍의 지중해’라 불리는 명성에 걸맞게 1970년대부터 20여 년 간 지속됐다는 내전의 흔적 또한 베이루트에서는 의미가 없어 보인다.

베이루트에서 북쪽으로 40km 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한 비블로스에 발을 놓는 순간 기우는 그야말로 기우임을 알았다. 하나 둘 스러져 한줌 돌무더기로 변해버린 고대도시, 비블로스. 하루, 일주일, 한달, 일년이라는 시간은 수천 년의 세월 속에서는 티끌에 불과하다.

시돈, 티레와 함께 페니키아 시대의 3대 도시국가 중 하나인 비블로스는 BC4500년 전에 형성된 도시다. BC3000년 경에 파라오와 무역을 통해 백향목 등의 나무를 팔고, 파피루스와 리넨 등을 들여왔다. 당시에는 구블라(Gubla), 그발(Gebal) 등으로 불린 이곳이 비블로스라는 이름을 얻게 된 건 파라오와 무역을 통해 얻은 파피루스를 헬라로 되판 BC1200년 경이다. 중간무역을 통해 파피루스를 들여온 헬라에서는 이곳을 파피루스, 즉 그리스어로 비블로스라 부른 것이다. 재미있는 건 비블로스라는 말이 다시 라틴어의 바빌리아로, 유럽을 지나 바이블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예수의 숱한 언행을 적은 바이블, 성경 또한 한낱 종이의 재료에 불과했던 파피루스에서 출발했다니. ‘네 시작은 미비하였으나, 네 끝은 심히 창대하리라(욥8:7)’.

비블로스의 지금 이름은 주바일(Jbail)이다. 하나 비블로스에서 주바일을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옛 도시와 지중해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비블로스의 십자군 성채에 서면 더욱 그러해 저도 모르게 ‘비블로스’를 되뇌게 된다. 무너진 도시, 부서진 돌 무더기 사이에서 비블로스는 여전히 살아 숨쉬는 것이다. 오벨리스크 신전이라 불리는 바알 신전터는 그나마 모양을 갖췄다. 이곳에서는 BC2세기 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비블로스 왕 아히람의 돌널이 출토됐다.

베이루트에서 시돈으로 다시 티레로 길을 잇는다. 아랍어로 사이다(Sayda)라 불리는 시돈은 레바논의 전 수상 하리리가 태어난 곳이라 곳곳이 애도의 물결로 가득하다.

티레(Tyre)는 시돈에서 남쪽으로 40km 가량 떨어져 있다. 원형을 완전히 갖추진 않았지만 티레의 유적은 옛 모습을 쉬이 상상할 수 있도록 제 모습을 보여준다. 그 중 원형극장인 히포드럼은 그야말로 놀랍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건축물이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건축물 아래가 모두 시장이었다는 사실. 수 백 개의 상가가 들어섰을 법해 당시의 영화를 짐작할 만하다.

차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는 티레 왕인 히람이 건설했다는 유적지가 자리했다. 파아란 지중해를 품은 기둥 사이를 걸어 바다 가까이로 간다.


“일본인?”
“아니, 한국인”
“난 일본인이 싫어. 한국인은 좋아. 한국인이니까 특별히 싸게 해 줄게”

바다에서 건져낸 티레의 유물이라며 작은 도자기와 동전 가방을 펼친 상인이 수작을 건다. “진짜”를 연발하는 그에게서는 티레의 옛 영화는 찾아볼 수 없다.

헬리오폴리스, 태양의 도시인 바알벡으로 가려면 수프 지역을 지난다. 사막과 같은 산인 레바논 산맥과 안티 레바논 산맥을 바라보며 달리는 이 길은 참으로 평온하다. 유유히 걸음을 떼는 양과 젖소, 드문드문 놓인 과일 농장 등. 살며시 미소를 짓게 하는 길이다.

해발 1,000m에 자리한 마을 가운데에는 말로만 듣던 백향목이 자리했다. 모두 팔아버려 쉽게 볼 수 없게 됐다는 백향목은 레바논 국기의 가운데를 차지한 그 모습 그대로 위풍당당하다.

백향목에 레바논이 있다면, 바알벡(Baalbeck)에는 로마가 있다. BC64년 경, 바알신을 숭배하고 제물을 올리던 자리에는 주피터 신전이 들어선다.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권위가 신의 경계마저 무너뜨린 것이다. 지금은 27m의 6개 기둥만 남은 주피터 신전은 원래 40m가 넘는 54개의 기둥으로 이뤄졌을 것이라 추정된다. 원래의 크기로 따지자면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넘어선다. 로마는 이렇게 거대한 신전을 세워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려 했다.

주피터 신전이 많은 부분, 제 모습을 잃은 것에 반해 바커스 신전은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아주 미미하게 느껴질 만큼 거대한 바커스 신전. 하나 고개를 들어 바라보면 기둥 조각의 섬세한 솜씨가 눈에 들어온다. 거대함과 섬세함을 두루 지닌 바알벡 유적은 그래서 감히 레바논의 최고라 할 만하다.

바알벡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아랍의 또 다른 땅, 시리아가 펼쳐진다. 레바논을 떠나며, 아랍의 여정을 이으며, 한국에서 떠나오기 전에 주변 사람들의 말을 떠올린다. ‘위험하다’에 이은 그들의 두 번째 반응은 ‘좋겠다’ 였다. 돌이켜 보건데 ‘위험하다’는 그들의 말은 진정 기우였다. 참으로, 정말로, ‘좋다’.

*피죤락(pigeon rock)

어마어마한 크기의 바위 두 개가 바다 위에 떠 있는 곳이다. 레바논의 상징처럼 여겨진 곳으로 가이드북이나 엽서 등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베이루트와 가까운 곳에 자리해 짬을 내어 다녀오는 것도 괜찮다.

*기념품

비블로스 유적지를 지나면 옛 상가 유적지를 복원해 만든 기념품 판매장이 줄을 이어 서있다. 이곳에서는 비블로스에서 발견된 유물과 일대에서 출토된 화석 등 진짜 유물을 판매한다. 모두 국가에서 인정한 기념품 판매장이라 합법적이다. 엄지 손가락 크기만한 작은 도자기가 40달러 정도. 유물을 구입한다면 합법적으로 샀다는 인증서와 영수증을 반드시 챙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항 세관에서 추궁을 당할지도 모른다.

*카페

비블로스 기념품 판매장을 지나 길을 이으면 옛 항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옛 항구의 명성은 사라졌지만, 레바논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이곳은 여전히 활기로 넘쳐난다. 바다를 바라보고 선 카페에서 항구의 정취에 젖어보는 것도 좋다. 바다를 닮은 이곳의 카페는 하나같이 예쁘다.

베이루트 시내에는 유럽 풍의 노천카페가 즐비하다. 레바논은 아랍 지역 중에서도 치안이 좋은 편이라 밤의 노천카페도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

*음식

‘유럽에 프랑스, 아시아에 중국이 있다면, 아랍에는 레바논이 있다’고 할 정도로 음식의 고장으로 알려진 곳이 레바논이다. 레바논은 아랍의 다른 지역에 비해 토양이 비옥해 야채가 신선하고 과일의 당도가 높다. 커다란 접시에 풍성하게 담아내는 야채와 양고기를 함께 즐기면 수라상도 부럽지 않을 정도. 입맛이 까다로워 한식 외에는 잘 먹지 못하는 이들이라면 고추장을 준비해 야채와 곁들여 먹으면 된다.

-by AATNB 이진경(jingy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