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omestic travel/동해안

1-3 달라진 오죽헌

봉들레르 2011. 12. 5. 00:47

 

경포대 누각 안에는 “第一江山(제일강산)”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그 뜻은 “강릉산수갑천하(江陵山水甲天下)”라고 했던 조선 초기 학자 서거정의 말에서 따온 것이다.

 천하에서 강릉의 경치가 최고라는 뜻일 터. 그런 강릉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명소가 바로 오죽헌이다.

 

 

 

철죽꽃이 피었다.

율곡선생 유적 정화비

 

600년 된 배롱나무는 율곡매와 같은 나이의 나무로 사임당이 이곳에 머물 때 함께 있던 나무다

뒤뜰에 오죽이 자라고 있어서 오죽헌

 

 

율곡송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는 율곡송

신사임당은  딸만 다섯 나신 부모님을 위해 결혼하고도 오죽헌에 20년간 살면서 아들 율곡 이이를 낳았다.
이렇게 시집 간 딸이 친정집에 머무르면서 아이를 낳는 일은 조선 전기의 가족문화에서는 가능한 일이었다.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 중기까지 결혼을 바탕으로 한 가족문화가 여성의 거주지 중심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시집을 가도 친정집에서 거주하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오죽헌은 양반집 모습을 보존한 희귀한 예로 주심포계통의 청순하고 소박한 팔작집이다.

사랑채인 바깥채 툇마루 기둥에는 멋진 필체의 주련이 걸려 있는데 추사 김정희의 글씨라 한다

어제각은 율곡 이이의 저서 ‘격몽요결’과 어린시절에 사용하였던 벼루를 보관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다.

오천원권의 빨간 점선에 그려진 율곡이 쓰던 벼루

 

오죽헌은 본채인 안채와 바깥채가 있다. 안채는 안주인이 기거하던 곳이고 바깥채는 사랑채로서 바깥주인의 처소이다.

장애인들은 이 길로 가세요

오죽헌을 돌아 전면으로 빠져나오면 드넓은 정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너와지붕을 얹은 누각들과 조화를 이루며 율곡 기념관과 오죽헌 박물관이 서 있다

 

 

 

 

물레

베틀

송판을 켤 때 쓰이는 도구들

뗌목

대장간 도구들

눈위에서 쓰이는 도구

타작할 때 쓰이는 도구

자리매는 도구

강릉 단오제

물의 낙차를 이용한 방아.

동동주를 뜰 때 사용되는 용수

 

옷을 만들고 시칠 때 필요한 도구

 

 

 

 

기생옷

여름철에 피서도구

 

 

신사임당은 산수화는 물론이고 수박, 오이, 가지 등의 다양한 채소들과 개구리, 쥐, 메뚜기, 나비 등의 벌레들을 담은 여덟 폭 병풍 초충도를 남겼다.

당시 초충도는 그 정교함과 현실감 있는 필채와 세필(細筆) 등으로 세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사임당은 몽유도원도로 유명한 조선최고의 화가였던 안견과 비견되는 여성최고의 화가로 또한 학문과 재능을 겸비한 여인이다

스스로 지은 호 신사임당의 본명은 신인선은 7살 때부터 스승 없이 그림그리기를 시작했다.

그는 풀벌레와 포도를 그리는 데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어느 날 열 살도 채 안된 여자아이가 대청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당시 사대부며 명문가들은 매(梅), 란(蘭), 국(菊), 죽(竹) 사군자(四君子)를 즐겨 그렸지만,

이 여자아이가 그리는 것은 오이, 가지, 포도, 수박 등의 과실과 나비, 벌, 메뚜기, 개구리 같은 벌레들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아이가 그림을 그리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마당에서 노닐던 수탉이 대청으로 올라와 그림을 다 쪼아 버리고 만다.

 돌아와 그 광경을 본 아이가 속이 상해 엉엉 울었다.

겨레의 어머니로 불리는 신사임당께서 5만원권 화폐인물이 된 지 2년이 되었다.

 5000권 아들 율곡 선생에 이어 37년 만에 어머니 사임당께서 화폐인물이 됨에 따라

 지구상 250여개국가에서 통용되고 있는 1600여종의 화폐 가운데 모자가 나란히 화폐인물이 된 유일한 국가가 되었다.

화폐 역사상 최초의 일인데다 화폐인물 두 분 모두 강릉 오죽헌에서 태어났다

지갑속에 5천원권에 그려진 수박그림

오른쪽에서 3번째가 수박그림

 

엇갈린 백일홍

오죽헌앞 가로등이 이미지화 되어있다. 좋은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