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Armenia(2018 Jul)

4-4 아자트 계곡상류에 게하르트 수도원(Monastery of Geghard in the Upper Azat Valley)

봉들레르 2018. 9. 4. 15:20

















게하르트 수도원(Monastery of Geghard)은 계곡의 바위를 파서 깎아 만든 교회와 묘지로 구성되어 있다.

잘 보존된 자연 경관 속에 자리 잡은 이 수도원은 중세 아르메니아 건축의 전성기를 확인할 수 있다.

수도원 주변은 아자트 계곡(Azat Valley)으로 들어가는 깎아지른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게하르트 수도원은 아자트 계곡 맨 윗부분 깎아지른 절벽에 둘러싸여 있다.

수도원의 소재지는 서력 기원 전에 신성한 샘물이 솟아나던 곳이며,

설립 당시에는 ‘동굴 사원(Monastery of the Cave)’을 뜻하는 ‘아이비랑크(Ayvirank)’였다.

훗날 이름이 게하르트로 바뀌었는데 이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찌른 로마 병사의 창’을 뜻하는 말이다.

최초의 교회는 9세기 아랍인들의 침입 때 완전히 파괴되었으나 13세기에 프로샨(Proshyan) 왕자들의 후원을 받아 재건하였다.

이 왕자들은 죽은 후 그곳 묘지에 묻혔다. 왕자들은 1200년에 관개 조직을 만들고 단지 안에 있는 교회의 재건 비용까지 지불하였다.

이때는 ‘일곱 교회 수도원과 40제단 수도원(Seven Churches and the Monastery of the Forty Altars)’이라고 하였다.

수도원은 보관된 성물 덕분에 유명해졌다. 그중에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찌른 로마 병사의 창도 있으며,

이 창은 1250년에 사도 유다가 기부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수도원은 ‘게하르드방크(Geghardavank)’라고도 불린다.

이 때문에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뿐 아니라 몇 세기 동안 순례자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였다.

사도 안드레아와 요한의 유물, 여러 세기 동안 독실한 방문객들이 기증한 토지, 금전, 필사본 등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아자트 계곡의 외딴곳에 깎아지른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게하르트 수도원 단지는 자연 경관이 매우 훌륭하다.

바위를 파서 깎아 만든 훌륭한 교회와 묘지는 중세 아르메니아의 수도원 건축과 장식 예술을 온전하게 보존하고 있다.

이곳 문화의 혁신적인 특색은 훗날 이 지역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성 그레고리(Gregory)의 전승에 따르면, 게하르트 수도원은 4세기에 세워졌다.

최초로 건립된 수도원은 9세기경 아랍인의 침입으로 완전히 파괴되었으나 13세기에 다시 번창하였다.

이 수도원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찌른 창, 12세기에 기증받은 사도 안드레아와 사도 요한의 유물,

여러 세기 동안 독실한 방문객들이 기증한 토지, 금전, 필사본 등 보관된 성물로 더욱 유명하다.

게하르트 수도원은 본 예배당(Kathoghikè)과 그 서쪽에 있는 가비트(gavit), 바위를 파서 깎아 만든 아바잔(Avazan) 교회,

묘지이자 동굴 교회인 자마툰(Jhamatun), 그리고 성 그레고리 예배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도원 단지에서 가장 오래된 곳은 성 그레고리 교회 예배당이다.

예배당은 수도원 단지 중심에서 동쪽으로 떨어져 있으며 산비탈의 바위를 파고 들어가서 지었지만 미완성 상태이다.

외벽에 새긴 명문은 1177년부터 씌어진 것이다. 십자가의 화려한 장식은 예배당 벽면 밑에 있는 바위 표면까지 이어져 있다.

이 명문에 따르면 본 예배당은 1215년에 세워졌으며,

고전 아르메니아 양식인 정사각형 안에 등변 십자가가 내접하는 설계에 정사각형 초석 위를 돔으로 덮었다.

아치 모양 지붕은 초석과 연계되어 있다. 십자가 끝의 동쪽 팔은 애프스로 연결되고, 나머지는 정사각형이다.

교회 모서리에는 반원통형 둥근 천장으로 된 2층짜리 작은 예배당이 있다. 내벽에는 기증자들의 기록을 새긴 수많은 명문이 있다.

외벽의 석조는 특별히 섬세하고 훌륭하게 마무리하였다. 가비트의 홀은 아바잔 교회와 연결된다.

이곳은 중세 아르메니아 건축의 전통을 따랐으며 건물의 구조와 규모는 소작농의 오두막을 그대로 표현하였다.

거대한 원기둥 4개가 중심을 이루며 그 위에 나무도리로 만든 지붕이 있다. 지붕 중간에는 구멍을 뚫어 빛이 들어오게 하였다.

돌로 지은 교회는 위풍당당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원주 이외의 나머지 공간에는 다양한 지붕을 씌웠으며 중앙 부분은 종유석을 끼운 돔으로 장식하였는데

이는 아르메니아 기법의 가장 완벽한 사례이다. 현관의 홀은 학습장이나 모임 장소로 사용하거나 순례자나 방문객을 수용하였다.

최초의 바위 동굴 교회는 1250년 이전에 세워졌는데, 바위를 파고 들어간 등변 열십자 형태였다.

동쪽의 바위를 거칠게 잘라 만든 정사각형 방은 프로샨(Proshyan) 왕조 때에 왕자들의 묘지로 쓰였다.

이것은 1283년에 두 번째로 세운 자마툰과 연결하는 통로로 사용하였다.

두 번째 자마툰은 외부로 이어지는 계단에 있는데 메리크(Merik) 왕자와 그리고르(Grigor) 왕자의 무덤이 있다.

12, 13세기에 수도원 지구는 방어 방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수도자들은 방벽 외부 바위에 구멍을 파서 낸 수도실에서 생활하였다.

이는 몇몇 간소한 기도실과 함께 보존되어 있다.







길도 없는 돌산중턱에 십자가가 있다






                

                     아제르바이잔이 파괴한 나키체반 아르메니아 공동묘지 카하르 사본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찌른 창 게르하르드 룽기누수의 창을 보관하였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