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Finland(2016 Jul)

1-1 헬싱키 가는 길

봉들레르 2016. 7. 22. 08:56

 핀란드 국적항공사 핀에어는 헬싱키가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음을 파악해

 헬싱키 공항을 아시아-유럽 환승 공항으로 키웠다

측지선으로 된 항로

 

이륙준비

 

 기내에서 주는 와인이  맛있다

 

 

 

 

 

 

 

핀란드 헬싱키 상공

 

 

작은 나라 핀란드는 스웨덴과 러시아 사이에 끼어 지내다 1907년 러시아로부터 독립했다.

 헬싱키는 500년 이상 된 도시로서 핀란드의 중심일 뿐 아니라 러시아와 발틱, 스칸디나비아를 연결하는 요충에 있다.

헬싱키에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스토니아 탈린(Tallinn), 스웨덴 스톡홀름을 연결하는 정기 여객선이 있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북유럽은 아이들의 천국이다.

앞으로 사진을 보면 알수있게 된다

 핀란드 헬싱키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지하철

 

지하철을 타고

 

 

 

헬싱키 역에 도착

핀란드는 ‘유럽’하면 흔히들 떠올리는 서부 유럽과는 거리가 먼 동북쪽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러시아, 서북쪽으로는 스웨덴과 노르웨이와 그 국경을 맞대고 있다.
핀란드는 습윤 대륙성 기후로 추운 겨울이 길고 온난한 여름 날씨를 가지는 것이 특성이지만

Gulf of Finland의 만류와 맞닿아 있는 발틱해의 영향으로 같은 위도에 위치한 시베리아나 알라스카에 비해 기온이 높은 편이다.
헬싱키는 핀란드의 끝단에 위치하고 있어 1월과 2월의 평균 기온은 영하 5도이고,

영하 20도로 떨어지는 기간은 1년에 1, 2주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북반구에 위치해 태양이 떠 있는 시간이 겨울에는 6시간 이하로 짧고

반대로 여름에는 약 19시간으로 백야현상이 나타나는 특징을 가진다.
춥고 어두운 겨울과 대부분이 암석으로 이뤄져 있는 지반은 남부 지방을 제외하고는 농업의 발달이 어려운 조건을 갖추었지만

풍부한 삼림 자원을 바탕으로 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벌목 제한, 기술 지원 등을 통한 보존과 개발 사업을 병행하며 국가의 목재 산업이 이어질 수 있도록 장기 계획을 세워 지원해왔다.

핀란드는 역사적으로 가장 큰 목재, 목재 가공품 수출국이었다.

1918년 러시아로부터의 독립과 전쟁 이후 단기간에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룩하였는데,

하나의 독립된 국가로서의 짧은 역사가 무색하리만큼 현재 높은 삶의 질과 교육, 복지의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핀란드는 노르웨이와 스웨덴과 더불어 사회 민주주의를 채택한 나라로 국민들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는 강한 정부가 존재한다.

이들의 뿌리 깊은 복지 정책은 높은 세금과 정직한 쓰임새로 실현 가능한데 이렇게 거두어진 세금은

사회 곳곳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다.
예를 들어 핀란드의 공교육은 대학교 석사과정까지 모두 무료이며

부모에게서 독립해 대학 교육을 받는 학생들에게는 기초 생활비가 지급된다.

또한 임신을 한 여성은 혼인 여부와 관계없이 출산 전 Maternity Package(신생아와 아이를 갓 낳은 엄마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물품을 넣은 상자)와 이에 상응하는 양의 돈 중 더 유용한 것을 선택할 수 있으며,

출산 후에는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모든 부모에게 양육비가 지급된다.
그리고 창업자와 실업자를 위한 교육과 금전적인 지원도 하고 있어 실패를 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고 있다.

헬싱키의 역사
헬싱키는 1550년 스웨덴의 왕 Gustavus Vasa(구스타프 바사)에 의해 처음으로 세워졌다.
이 당시 핀란드는 스웨덴 령이었으며 헬싱키는 당시 에스토니아 수도 Tallinn(탈린)을 견제할 요량으로 세워진 도시였다.
그 당시 헬싱키의 중심부는 현재와 같이 남쪽 Kruununhaka(크루눈하까)지역이 아닌 약 6km가량 북쪽에 위치한

Vantaa(반따)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있었다.
당시 러시아와 발틱 국가들, 독일간의 전쟁에서 스웨덴이 이들을 견제하고자 헬싱키를 전략적 군사기지로 이용하고 있었으며

1640년 현재의 남쪽으로 이동했다.
18세기에 들어서며 러시아의 세력을 더욱 강해졌고 급기야 1703년 핀란드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

새 수도 St.Petersburg(상트 페테르부르크)를 세우며 당시 스웨덴에 속해 있던 헬싱키와 핀란드의 발전 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그 후 헬싱키는 스웨덴과 러시아 사이의 반복적인 전쟁 속에서 수차례 양쪽 국가에 번갈아가며 점령당하는 수모를 겪었고,

이에 1748년 스웨덴은 요새 Suomenlinna(수오멘린나, UNESCO문화 유산)를 짓지만

1809년 러시아에 점령당하게 되고 러시아령 자치국 Grand Duchy 시대에 접어들게 된다.
당시 핀란드의 수도는 헬싱키에서 서쪽으로 약 170km 떨어진 해안가에 위치해 스웨덴과 거리가 가까운 Turku(뚜르꾸)였으나 1812년 러시아는 스웨덴 견제를 이유로 수도를 뚜르꾸에서 헬싱키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당시 헬싱키는 황무지에 가까웠기 때문에 도시를 새로 처음부터 계획해야하는 수준이었는데

당시 뚜르꾸에 있던 핀란드의 유일한 대학, Royal College of Turku이 헬싱키로 옮겨 오게 됐고 그 중심으로 관공서, 성당이 지어졌다.
1828년 핀란드의 수도로 공식 임명된 헬싱키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발전하기 시작했고 20세기 초에는 인구 10만 명을 넘어섰다.

핀란드는 러시아로부터 1917년 독립했고 빠른 도약을 하게 된다.

핀란드는 앞으로의 발전 모델을 서유럽에 두고 건축 및 가구, 도자 등 생활용품에서

프랑스나 이탈리아, 그리스 등지의 양식을 적극적으로 모방하고 만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제 2차 세계 대전 중인 1940년대 중반까지도 핀란드는 러시아, 독일군과 전쟁을 치뤄야 했고

러시아에게 핀란드 동쪽 Karelia(까렐리아) 지방을 빼앗기게 된다.

이로 인해 집을 잃은 난민과 1950년대 중반 산업화로 인해 새로운 직장이 늘어나며

다른 지방에서 이주해 온 사람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자 헬싱키 시의 면적도 같이 늘어나야만 했다.

1950년대 이후 핀란드는 25년간 대통령으로 군림한 Urho Kekkonen(우르호 께꼬넨)의 지휘 아래에

당시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맺음과 동시에 역시 서유럽과도 교류를 하는 모호한 입장에 서게 된다.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을 시장으로 삼아 급속도의 경제 성장을 이룩한 핀란드는 1975년 세계 GDP 순위에서 상위 15위를 달성하고

70, 80년대에 걸쳐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복지 수준을 보여주게 된다.
그러나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의 경제 악화와 은행 위기는 1990년대 초 핀란드에 극심한 경기 불황을 가져다 줬고

1993년 바닥을 쳤던 불황으로부터 회복, 지금껏 꾸준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핀란드는 1995년 유럽 연합의 멤버로, 1999년에는 유로존의 멤버로 가입했다.

핀란드의 고유 화폐였던 Markka(마르까)는 2002년 유로 화폐로 통일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