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Spain(2015 Feb)

11-1 그라나다 알람브라 여름별궁 헤네랄리페

봉들레르 2015. 4. 15. 19:30

 

알람브라 궁전(Alhambra)

유럽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번영했던 이슬람 도시 그라나다.

무슬림 왕조의 지배는 1492년 기독교 세력에 함락되면서 과거가 됐지만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은 현재도 유럽에 세워진 아랍 최고의 유적으로 칭송받고 있다.

사실 그라나다가 지금처럼 여행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데 크게 공헌을 한 사람은 미국의 작가 워싱턴 어빙이다.

그는 폐허가 된 궁전에 머물며 '알람브라 이야기'를 집필했다.

1832년 그의 소설이 발간되자마자 큰 인기를 끌며 알함브라가 주목받기 시작하자 에스파냐 정부에서 궁전을 복원했다.

덕분에 그라나다의 상징이자 하이라이트인 궁전을 여행객이 체험할 수 있게 됐다.

지난 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알람브라 궁전은 유럽에 현존하는 이슬람 건축물중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알람브라 궁전 유적지는 크게 4개 구역으로 나뉜다.

핵심이며 극찬을 받는 나사르 궁전(Palacio de Nazaries)과 르네상스 풍의 카를로스 5세 궁전(Palacio de Carlos V),

여름 별궁 헤네랄리페(Generalife), 성채인 알카사바(Alcazaba) 등이다.
알람브라 궁전 입장권 예매는 오전과 오후 시간대로 나뉜다.

 알함브라의 핵심인 나사르 궁전은 티켓 구매시 정해진 시간 외에는 입장이 불가하니

궁전의 다른 곳을 관람하다가 시간을 잘 맞춰 도착하도록 한다.

숙소에서 밥으로 아침 식사

 9:00 체크 아웃 후 짐 맡기고

 

택시를 타고 알함브라 궁전(Palacio de la Alhambra)로 출발

 

9:10~14:00 알함브라 궁전 관람

(헤네랄리페(Generalife) -> 10:30 나스리 궁(Palacios Nazaries)

-> 12:10~12:40 파라도르(Parador) 커피숍 휴식 ->카를로스 5세 궁전(Palacio de Carlos V) -> 알카사바(Alcazaba))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한 입장권을 뽑아내기만 하면 된다.

입장권에는 지정된 입장시간이 명시되어 있다.

입장권을 사기위해 줄을 서있는 관광객들

입구

알람브라 궁전(Alhambra)에서 여름 별궁 헤네랄리페(Generalife),

 

 

 

 

 

 

 

 

 

 

 

 

 

 이슬람 사람들은 물이 귀한 아프리카나 중동 지역에서 살았기 때문에 알함브라 궁전 내 여러 군데에 연못과 분수를 만들어 두었다고 한다

 

 

 

 

 

 

 

 

 

 

 

 

 

 

 헤네랄리페 정원 

멀리 시에라 네바다 산맥에서 끌어온 물로 만든 분수가 경탄을 자아낸다.

 

 

 

 

 

 

 

 

 

 

알람브라 궁전의 다로강을 지나 건너편에 위치한 하얀 언덕 마을 '알바이신(Albaicin)'은

구시가지로 아랍인이 집단 거주하던 지역이다.

현재도 유서 깊은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마을 정상에 위치한 전망대에 오르면 환상적인 전망이 펼쳐진다

 

 

 

밀애의 장소를 제공했다고 죽임을 당한 사이프러스 나무 

나사리 왕조의 늙은 왕에게는 왕비와 후궁 5명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젊은 후궁이 근위대 장교와 몰래 통정을 하였다.

후궁은 아벤세라헤스 가문의 귀족의 딸이었는데, 왕은 용서를 해준다고 말했다.

얼마 후 왕은 헤네랄리페 별궁에서 파티를 개최하여 아벤세라헤스 가문의 귀족 청년 24 ~ 30명을 초청하여 연회를 베풀고는

결국 파티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근위대원을 풀어 청년들의 목을 모두 베어 분수 앞에 걸어놓았다.

그 핏물은 3일간이나 씻겨 내려가 흘러내렸다고 전해진다.

 

 

 

 

 

 

 

 

 

 

 

 

 

알람브라는 조그마한 산 전체가 궁전이다. 사실 궁전 자체는 다른 유럽 국가의 것들보다 크지 않지만,

코르도바의 메스키타(스페인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이슬람 사원)보다 정교하고, 건물 배치 하나하나에도 기품이 넘친다.

무엇보다 여타 유럽의 왕궁이 평면에 인공적인 직선으로 정원을 만든 것과 달리 이곳은

산의 곡선을 그대로 살린 점이 돋보이며, 높은 곳에 위치해 주변 조망도 매우 훌륭하다.

 

 

 

 

 

 

 

 

여름 별궁의 아세키아 정원

 

 

알함브라 궁전은 13세기 후반에 만들기 시작해 14세기에 완성된 건축물로 이슬람의 건축 양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라나다의 무어 왕조가 세운 모스크(이슬람교 사원)로 주로 궁전과 요새로 쓰였다.
알함브라 궁전은 아랍어로 '붉은 성'이라는 뜻과 '빨간색'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햇볕에 말린 벽돌의 붉은 색깔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그라나다도 마찬가지로 스페인어로 '석류'라는 뜻이기 때문에 그라나다의 문장은 석류 그림이다.

석류는 익으면 빨간색이 된다.

알함브라 궁전의 아름다움을 익히 알고 있던 이사벨 여왕은 병사들에게

"아름다운 알함브라 궁전은 후손에게 물려줘야 하니 화살 하나도 쏘지 말라"고 명령을 내린다.
알함브라 궁전에 입성을 위해 결국, 군사들은 궁전을 포위했다, 풀었다를 반복한다.

공격을 하지 않는 대신 이사벨 여왕은 집시들을 시켜 궁전 안을 정탐했다. 쉽게 말하면 집시들이 이사벨 여왕의 스파이 역할을 한 것이다

집시들은 보고 온 정보를 이사벨 여왕에게 보고하며, 안에 무기는 얼마나 되는지,

식량은 얼마나 남았는지, 이슬람 군대의 사기는 어떤지 등을 꼼꼼하게 알려줬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그 해인 1492년 1월 2일,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은 '레콘키스타(국토회복운동)'를 통해

약 800년간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한 이슬람 세력의 거점인 그라나다에서 최후의 항복을 받아낸다.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왕 보아브딜은 이 궁전을 평화적으로 내어주고 아프리카로 떠난 것이다.
결국, 이슬람 군대가 항복하면서 이사벨 여왕은 꿈에 그리던 알함브라 궁전에 입성하게 된다.

이렇게 스페인은 비로소 근대 국가로의 이행을 걷게 된다.

이때 이사벨 여왕은 집시들의 공로를 인정해 그들에게 세금을 면제해 준다.

이사벨 여왕의 덕분으로 집시들은 지금까지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 

세계적 명작소설인 '돈키호테'의 저자이자 스페인의 국민 소설가인 세르반테스(1547~ 1616)는 그라나다를 보기 전에는 죽지 말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