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Uzbekistan(2014 Aug)

2-3 히바 이찬칼라(Itchan Kala)

봉들레르 2014. 8. 9. 03:57

 

전설에 따르면 히바는 노아의 아들인 셤이 이곳을 발견했을 때 세워졌다고 한다.

히바는 카스피해와 볼가강으로 가는 실크로드의 지류에 위치한 작은 요새와 교역소로서 8세기까지 존재하였다.

16세기초에 히바는 티무르 제국의 수도가 되면서 북적되는 노예 시장이 들어섰으며,

다음 3세기동안 티무르 영토의 중심이 된다.

히바는 샤이바니 왕조의 한 왕후인 일바르스가 1512년 히바 지방에 독립왕국을 세운 것을 기원으로 한다.
 
이후 히바 칸국은 주변의 카자흐, 칼무크, 투르크멘 등 여러 민족과 부하라 칸국의 침략에 시달렸다.

 제13대 군주 아불가지 바하두르 칸(재위 1643∼1663)은 유명한 역사가로(투르크족의 계보)를 저술하였다.

히바 칸국은 1717년 러시아의 표트르 1세의 침략을 받았고,

1873년에는 다시 카우프만 장군에게 침략당하여 러시아의 보호국이 되었다가

1920년 완전히 멸망하여 1924년 히바 칸국의 영토는 우즈베키스탄에 편입되었다.
 
히바는 우루겐치에서 남서쪽으로 3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으며 면화숲과 과일나무, 끝없는 사막의 지평선을 바라볼 수 있다.

중앙 아시아의 다른 도시들과 달리 히바의 중심지는 잘 보존되어 있다.
 
히바가 이처럼 유물을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었던 이유는 이 곳이 키질쿰이라는 극도의 건조한 사막성 기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건조한 기후는 과거 유물을 보존하는 데 최적의 기후를 제공하였고 찾아오는 이 없는 고립된 환경은 유적 보존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19세기에 러시아가 마침내 티무르의 지배로부터 이 지역을 빼앗게 될 때까지

가장 용맹스런 사람들조차 이 사나운 민족과 그들의 사막 영토에 들어 오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시내에 밀집하여 있는 모스크사원, 무덤, 궁전, 메드레사에서 여행자는 실크로드의 영화를 느끼게 될 것이다.

사마르칸트가 청색, 부하라가 갈색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면, 히바는 터키석 타일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특히 성벽 내부도시인 이촌 칼라 에서는 이러한 타일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히바의 명소에는 넓적한 터키석 타일로 된 칼타 미노르 첨탑, 쿠크나 아르크 요새,

218개의 목재기둥으로 된 주마 모스크사원, 화려하게 장식된 토쉬-코블리 궁전,

이슬롬-후자 메드레사와 그 안의 등대처럼 보이는 첨탑, 정교하게 타일로 붙여져 있고

이슬람인들에 존경의 표본인 파라본 마무드 모슬럼 이 있다.

우르겐치에서 35Km 떨어진 히바의 고성(古城)앞

히바고성(古城) 앞에 호텔

히바고성(古城)앞에 고성을 본따서 만든 호텔

이찬 칼라 (Itchan Kala) 
예전에 이란 사막을 횡단하던 캐라반 (隊商)들의 마지막 휴식지였던 키바 오아시스 지역에

 10m높이의 벽돌을 쌓아 보호구역을 만든 도시 유적.
오래된 기념물들이 많은 편은 아니나 주마(Djuma)모스크 같은

중앙아시아의 뛰어난 모슬렘 건축들이 아직도 잘 보존되어 있다

이찬칼라 스카이 뷰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벽을 이중으로 쌓았으며 내성인 이찬칼라에는 칸의 궁전,

하렘, 모스크 등 왕과 귀족들이 살았고, 외성인 디샨칼라는 서민들이 살았는데,

지금도 히바에는 성을 중심으로 옛 모습 그대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18세기에 다시 완성된 이 성벽은 그 후 페르시아에 의해 다시 부셔진다.

현재의 이찬 칼라는 1970년에 보수 작업이 마무리 된 것이다

 진흙을 발라 아주 두껍게(10미터 정도) 축조한 이 성은 둘레가 2.5km이다.

약간 비스듬하게 성벽의 경사도가 있어서 언 듯 보기에는 쉽게 올라갈 수 있을 듯 하지만

기초 부분을 지나면 거의 직각의 높이라서 쉽게 올라가기는 어려울 듯하다

총 입구가 4개인데 그중에 서쪽문 입구

서문 우측

사진을 찍는데는 우즈벡 사람들이 적극적이다.

 

히바 수학자

 

 

모하메드 이븐 무사 알 카리즈미Mohammed ibn-Musa al-Khowarizmi

 인류는 기원후 500∼600년이 지나서 인도인들이 0을 발명하기를 기다려야 했다.

 인도에서 언제, 누구에 의해 0이 발명됐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단지, 많은 학자가 이미 6세기쯤 인도에서 수의 자리를 정하는 기수법이 행해졌던 것은 아닐까 하고 추정할 뿐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숫자 0을 기초로 한 이후의 온갖 수학적 발견과 그것의 응용,

이를 테면 우주공학, 컴퓨터공학 등은 불가능했으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0을 발명한 것이 인도인이 아니란 주장도 있다. 히바인,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지금도 그들의 조상이 0을 발명했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호레즘(혹은 히바)의 수학자인 모하메드 이븐 무사 알 카리즈미(Mohammed ibn-Musa al-Khowarizmi)가 

발명한 대수학(algebra)은 아라비아를 거쳐 서방에 전해졌고,

이 지역의 의사들은 파스퇴르보다 훨씬 앞서 세균의 존재를 밝혀냈다고 주장한다.

15세기에는 아미르 티무르의 손자인 울루그벡이 천문학과 예술을 발전시켰다고 전한다.

그는 그리스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우스의 천문표를 바로잡고, 항성(恒星)의 위치를 정확하게 밝혔으며,

당시 측정한 1년의 시간은 실제와 1분도 차이가 나지 않는 정확한 것이었다.

하여튼 수도였던 사마르칸드에는 저명한 예술가와 건축가들이 모여들었고,

그는 “학예를 연마하는 것은 모든 이슬람 국민의 의무”라는 강령으로 도시를 건설하여

오늘날 유네스코의 문화재로 지정된 아름다운 중세 모스크와 왕족의 묘들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사마르칸드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그곳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아프라시아프 벽화를 보고 충격을 받게 된다.

1975년 벽화의 발굴자인 알리바움은 아프라시아프 벽화 발굴 보고서에서 한민족(韓民族)의 의상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 사람은 머리에 차양이 없는 모자를 쓰고 있다.

또한 진주로 장식된 리본이 머리 둘레를 죄고 있고, 머리 꼭대기에는 두 개의 깃털이 꽂혀 있다.

그의 머리는 짧고 검은색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얼굴은 밝은 색을 띠고 있다….”

그는 이 사신들의 새 깃털이 꽂힌 머리 장식을 보고 이들의 국적을 고구려인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국내의 권위자들도 이러한 주장에 동의한 바 있지만,

박물관의 벽화 복사본에 선명하게 표시된 ‘Corean’이란 글씨를 보는 것은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6세기쯤에 고구려가 넓디넓은 중국의 강역을 넘어 사마르칸드 지역과 교통했다니.

그러니까 실크로드의 동방 기착지는 한반도가 아닌가.

중앙아시아는 잊힌 대륙이다.

 특히, 서구 중심의 세계사와 역사를 배운 우리에게는 잊힌 세계라기보다 존재하지 않는 세계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는 사람들은 더 큰 충격을 받게 되는지 모르겠다.

신라의 고승들이 해로를 따라 인도를 왕래했던 것처럼,

또 다른 조상들이 실크로드를 따라 알타이산맥과 파미르고원을 넘어 중앙아시아까지 교통했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놀라울 따름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왜 알려지지 않았는가.

우리는 왜, 로마제국의 흥망성쇠(興亡盛衰)에 대해서는 시시콜콜한 것까지도 배우면서도,

중앙아시아·인도·이집트·러시아 지역을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여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티무르제국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았는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유명해진 조로아스터교와 아베스타가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지역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왜 잘 알려지지 않았는가.

이런 것은 모두 지식패권주의의 산물이고, 우리 입장에서는 일천한 학문의 누적에서 오는 폐단과 다름없다.

역사를 고증할 기록이 많지 않은 우리로서는 중국에서 참조를 많이 했었고,

오늘날에는 서구, 특히 영어권에서 기록을 참조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긴 하다.

그러나 옛 소련의 변방이자 세계의 변방으로 치부되다시피하던 중앙아시아가

실은 우리 조상들의 가까운 이웃이었음을 알기 위해서,

그럼으로써 우리의 역사를 바로알기 위해서는 서구 중심의 지식만을 편식하는 지식패권주의는 이제 폐기돼야 할 것이다.
[장영준 / 중앙대 교수·영문학] 

 서문 남쪽에 "THE SILKROAD PROJECT"라는 대형 안내판(한반도 지도에 경주부산 그리고 평양이 표시되었다)

 

이번 여행으로 나의 실크로드 프로젝트는 투르판, 카슈카르, 사마르칸트, 부하라를 거쳐서 히바까지 이어진다

 

고성입구인 서문쪽으로

 

고성 서문앞 우리가 묵을 숙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