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의 본래 이름은 Ota-Darvoza인데 이 말은 아버지의 문이라는 뜻이다.
Ichan-Kala가 1990년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
이찬칼라의 정문이라고 할 수 있다.
1920년에 혁명 후 혼란으로 파괴되었지만 1970년에 복원되었다.
문은 2개의 미나레트 같은 탑으로 지어졌고 문을 두른 성벽에 선물상점과 가이드 사무실이 있다.
이찬칼라는 입구가 많아서 다른 입구를 통해 입장권이 없이도 둘러볼 수 있으나,
이곳에서 입장권을 구입하면 이찬칼라 내(內) 모든 박물관 및 유적지를 볼 수 있다.
만약 입장권이 없으면 각각의 장소에서 입장권을 따로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여기서 미리 구입을 하는 것이 편리하다.
관광객들이 너무 더워서 그늘진 곳만 찾아 다닌다.
목걸이가 3개다
섬세하게 조각한 출입문 문양
입구에 들어서면 눈에 확들어오는 것이 청탑이다.
26m 미완성 ‘짧은 첨탑’ 칼라 미노르 첨탑 Kalta Minor Tower(Short minaret)1850
서문에 들어서면 머지않은 곳에 화려한 미너렛(첨탑)의 푸른 외관이 사람들을 압도한다
우주베키스탄에서는 결혼을 할때 본인의 의사대로 결혼할수 없다.
부모님들이 직접 결정을 하고 나이순으로 결혼을 하기때문에 동생이 먼저 결혼을 한다던가 할수가 없으며 일부다처제, 조혼풍습이 있다..
결혼을 할때 신부쪽이 거절하면 세번까지 재방문해서 요청할수 있고, 동의시에는 '파티아'라는 빵을 먹으면서 혼인 일정을 잡는다.
민족개념이 강해서 자민족으로 한정되있고 같은 민족이라도 다른 계층과의 결혼은 재난을 가져오고 훗날 자식이 병신된다고 여긴다..
혼인 1주일 전에 신부 집으로 쌀 1자루, 밀가루 2포대, 양파 1포대, 당근 1포대, 한 두 마리의 양을 보낸다.
예식용 옷감은 신랑측에서 신부 것을, 신부는 신랑것을 준비하고 당일 아침일찍 신부는 우주벡 고유의 악단과 함께 신랑 집으로 간다.
오전 10시를 전후해서 신랑,신부와 친구들은 이슬람 서원으로 가서 혼인 선서식을 한다.
결혼은 신랑과 신부집에서 세 차례에 걸쳐서 온동네의 잔치로 행사를 벌이며 신부는 눈만 보이면서 상대방의 인사를 받는다.
결혼은 이틀에 걸쳐 진행되는데, 첫날은 신부집에서 잔치가 벌어지며 다음날 새벽 신랑집에서 전통음식인 쁠로브를 준비해서 대접한다.
이때 남자 손님만 참석할 수 있으며 그날 저녁 이슬람 서원인 마스지드에서 신랑신부가 기도하고 결혼식장
또는 연회장으로 가서 잔치를 벌인다. 이때 친지들이 선물을 건네준다..
대부분의 하객은 오후에 초대를 받게 되며, 저녁 파티에는 부모들의 친구들이 먼저 초대되고, 신랑,신부의 친구가 나중에 초대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객은 축의금을 전달하거나 집기 비품등을 선물하기도 하지만 축의금을 전달할 때는 한국처럼 봉투에 넣어서 전달하지는 않는다.
파티중에 춤은 빼놓을수 없는 행사이며, 신랑과 신부, 하객들이 개인별로 춤을 추는 하객에게 돈을 집어주는 풍습이 있으며,
춤이 끝날 때까지 이 돈을 손에 쥔 채로 춤을 춥다. 마지막에 신랑 아버지가 이들의 행복과 출산을 기원하는 기도를 한다.
첫날 밤은 신랑 집에서 치르되, 신랑은 신부와 동침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잠을 자서도 안된다..
결혼식 이튿날 오전에 신랑 친구들은 신랑을 가까운 친구 집으로 데려가서 그곳에서 음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게 한다.
그 사이 신랑 집에서는 신부를 시댁 식구들에게 인사를 시킨다. 해지기 전에 신랑은 집으로 돌아와 신부와 동침하게 된다.
다음날 아침 가까운 친척중에 아이를 출산한 경험이 있는 양가 여성 각 한명이
이들이 동침한 침구를 집안 식구들에게 보여주며 신부의 처녀성을 확인한다.
이러한 의식은 이슬람교의 혼례의식에서 유래한 것으로 결혼후 신랑신부는 40일동안 혼자서 어두운 거리나 어두운 곳을 갈수가 없다..
그릇과 빵에 문양을 내는 도구
한여름에 보기만 해도 더운 털모자를 판매한다.
탑은 하늘로 높이 뻗어나지 못하고 허리 부분이 직선으로 잘린 원통형 모양이다
미완성 미너렛으로 불리기도 하는 칼타 미너렛이다.
투르크어로 짧다는 뜻의 이 첨탑은 완성되지 못했기 때문에 갖가지 슬픈 전설이 남아있다.
당시의 히바 국왕은 109m 높이의 멋진 첨탑을 세워 그 꼭대기에서 400㎞ 떨어진 이웃나라 부하라 도시를 내려다볼 계획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부하라 왕은 기술자들을 매수해서 공사를 중단시켰다.
분노한 히바왕은 달아나고 있던 이들 기술자 모두를 사막에서 붙잡아 압송해 처형했다.
방법은 각각 포대에 넣어 탑 위에서 떨어트려 죽였으므로 공사가 중단됐다고 한다.
그럴듯한 스토리텔링이나 사실은 1852년 착공한지 3년 만에 히바왕이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전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단부의 직경은 14.2m이기 때문에 만약 완성이 되었으면
70m에서 80m의 높이가 되었겠지만 지금은 26m에서 중단된 채 있다. 덧붙여 칼타는 ‘짧다’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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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이라도 탑신 부분의 유약 타일장식이 정교하고 아름다워 더욱 유명해졌다.
당대 최고의 기술자들이 동원되어 녹, 청, 백색 등 갖가지 색상을 구사하며 아라베스크 문양으로 장식하였다.
이슬람교는 신의 형상을 만드는 것에 반대했다. 그래서 아름답고 상상력이 포함된 정교한 문양으로 신의 나라를 찬양하였다.
이 칼타 미너렛은 거대한 규모 면에서도 비교할 수 없을 만치 기대를 모았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기도처`등대`사형대로 쓰여
원래 미너렛의 용도는 하루 다섯 번의 기도시간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 시간이 되면 미너렛 위에서 낭랑한 목소리로 코란을 읽었다고 한다.
두 번째는 등대의 역할이다. 사막을 건너온 대상들이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밤이 되면 횃불을 켰다.
세 번째 용도는 사형대. 첨탑 위에서 죄인을 떨어트렸다.
오늘날에는 주마 모스크와 칼타 미너렛 모두가 훌륭한 관광자원으로 관심을 끌며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고 있다.
건축학적으로도 걸작으로 손꼽힌다는 두 곳 모두 얼핏 보면 단순 소박해 보이나
가까이 다가가 보면 화려하면서도 섬세하여 영상미가 뛰어난 소재들이다.
나아가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깊다.
옛날 신학교가 지금은 오리엔트 스타호텔이다
무하마드아민칸(Muhammad-Amin-Khan)의 신학교
무함마드 아민 칸의 지시로 1852년 완성되었으며,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신학교이며
한 때는 건물의 벽이 두껍고 튼튼해서 이슬람 최고재판소의 사무국 겸 감옥으로도 사용됨.
정면 입구와 건물 앞은 타일로 장식되어 있으며, 1977년부터 현재까지 호텔로 사용되고 있음
호텔좌측에 물건파는 곳
2층의 건물에는 120개의 방이 있고 히바에서 처음으로 신학생을 위해 방을 주었다고 한다.
학생들은 12세부터 공부를 시작했으며, 15년이 기본 코스였다고 한다.
하지만 성적이 우수하면 5년 만에도 졸업을 하기도 했다.
정면 입구와 건물 앞은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지금은 호텔에 객실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우즈벡 사람들
아들 손을 잡고 고성 구경에 나선 할아버지
할아버지 나이가 100세란다
빵(난)에 무늬를 내는 도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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