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omestic travel/서울시내

2013.05.12 윤웅렬 별장, 윤동주 문학관

봉들레르 2013. 5. 16. 00:39

 

독특한 모양의 집

아마도 미술인이 살겠지

독특한 집 바로 건너가 윤웅렬 별장이다.


조선 말 무신이었던 윤웅렬 대감. 대표적인 개화파로 윤치호의 부친이었던 그는 1884년 갑신정변이 실패하자 전남 완도로 유배되고 만다.

3년 째 귀양살이를 하던 어느 날, 자신의 집 노비가 마을에 명두(마마를 앓다 죽은 여자 아이의 귀신) 무당이 앞날을 기가 막히게 잘 맞춘다고 귀띔했다.

귀양살이에 지쳐있던 윤 대감은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무당을 찾아갔다.

어찌된 일이지 소녀무당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들렸다. 윤 대감은 무당을 시험코자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고 묻자

무당은 “한양에서 온 고관 나리 아닙니까?”라고 대답했다. 무당은 윤 대감에게 귀양살이는 보름 후에 끝나며

아들 윤치호는 미국에서 만난 청나라 여인과 약혼해 중국 상해에서 결혼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윤 대감은 거짓말이라도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었다. 내친 김에 그는 전생까지 물었다. 그러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소녀무당은 앙칼진 목소리로 “대감은 전생에 승려였습니다”라면서 "법호는 해파(海波)요, 승명은 여순(與淳)이었다"고 구체적으로 알려줬다.

윤 대감이 전생에 함경도 안변의 석왕사(釋王寺)란 절에서 열심히 정진한 공덕으로 다음 생엔 중국에서 태어나

일품 대신으로 큰 공로를 세우며 부귀했고 금생은 조선에서 태어나 장차 군부대신이 될 것이며 5복을 구족하며 부귀하겠다고 예언했다.

귀양살이 온 대신에겐 과분한 전생이었다. 소녀는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전생에 함께 출가한 형은 지지리도 복이 없군요.”

형은 스님 노릇을 잘못해 시주금을 횡령하고 부처님의 보물을 훔친 죄로 지옥에 떨어졌다가 겨우 사람으로 환생했지만

가난한 과보를 받아 끔찍하게 고생하고 있다고 했다. “형을 찾을 거면 강원도 통천으로 가십시오.

거기서 ‘새술막이’란 술집을 하고 있습니다. 이름은 이경운이며 두 손이 모두 조막손이랍니다.”

보름 후 윤 대감은 유배지에서 석방됐다. 소녀의 예언이 적중한 것이었다. 그 후 윤 대감은 소녀의 예언대로 군부대신에 오른 뒤,

1903년 아들 윤치호와 호위병을 끌고 함경도 석왕사를 찾아갔다. “혹시 해파 여순이란 승려를 아는가?” 하지만 스님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백 년 전 스님의 행적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윤 대감은 소녀 무당의 말을 믿고 함경도까지 호위병을 끌고 온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는 모든 것을 잊고 사냥이나 할 요량으로 뒷산에 올랐다가 암자 입구에서 잠시 숨을 돌렸다. 그때였다.

암자 앞에 줄지어 서 있는 부도 중에 ‘해파당 여순(海波堂 與淳)’이라 쓴 부도가 있는 게 아닌가.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자신의 전생을 여기서 만날 줄이야. 그는 아들과 수행원을 불러 부도 앞에 절하게 한 뒤

석왕사 스님들에게 완도의 소녀 무당 얘기를 들려줬다고 한다. 윤 대감은 그 즉시 하인을 강원도 통천으로 보내 전생의 형님을 수소문했다.

과연 소녀 무당의 말대로 ‘새술막이’란 술집을 하는 ‘이경운’이란 자를 만날 수 있다. 그는 양손이 모두 조막손으로 지지리도 가난했다.

하인은 늙은 이경운을 윤 대감 집으로 데려와 절하게 했다. 그러자 윤 대감은 절을 못하게 한 뒤 이경운에게 전생의 인연을 얘기하고는

“전생의 형님에게 돈 백 냥과 옷감 열 필을 드립니다. 이 돈으로 노후를 편히 지내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늙은 이경운을 배려해 군수에게 환전표를 떼어주고 운반까지 도왔다고 한다.

이로써 완도 소녀 무당이 말한 자신의 전생까지 확인한 윤 대감은 함경도 석왕사에 대중을 불러 대중공양을 올리고

전생에 공부한 도량에 500냥을 시주했다. 이는 안변 '석왕사지'에 남아있는 글이다.

윤웅렬 대감처럼 자신의 전생을 알기란 쉽지 않다. 아마도 그가 전생에 큰 복을 쌓았기에 가능했던 일인 듯싶다.

안타깝게도 그는 대표적인 친일파로 남작 지위까지 수여받았다. 지금도 부암동에 가면 윤웅렬 대감의 별장이 있다.

서울시 민속 문화재로 지정된 그의 별장엔 윤대감의 전생과 현생의 비밀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만 같다.

인터넷신문

개화기 지식인 윤치호의 아버지인 반계(磻溪) 윤웅렬의 별장

윤보선 대통령의 큰 할아버지가 윤웅렬이다.

윤치호는 윤보선의 당숙

안으로 들어 갈 수는 없어서 담장넘어로 보았다.

 

퍼온 사진

 

 

 

 

 

 

언덕길을 내려오다 있는 앤스나무 (Ann s namu)카페

1층은 cafe고 2층으로 올라가면 소품, 옷들도 파는 곳

큰 길을 따라서 올라가면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나온다.

 

언덕에서 바라보는 풍경

 

 

 

언덕에서 계단으로 내려가면

 

 

 

 

 

 

 

 

윤동주가 살아생전에 직접 구매하여 읽던 시집들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 유고작 초판본

 

윤동주 문학관

 

 

 

 

# 서울에 새 명소가 등장하다
한겨레신문기사

 

서울 종로구 자하문 터널 위쪽, 청운동에서 부암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

청운중학교를 지나 서울 성벽으로 이어지는 왼쪽 언덕 입구에 최근 새로운 건물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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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김재경 건축사진가


건물은 경복궁 바로 뒤에서 서울 전체를 굽어보는 백악산을 바라보는 곳에 있다. 작지만 밤이면 보석처럼 빛난다.
그리고, 이 건물이 지어지는 과정에는 흥미로운 뒷 이야기가 숨어 있다.

도대체 무슨 건물이며, 무슨 이야기일까?

 

# 건축가, 40년 된 건물을 고치게 되다

 

2011년 6월, 건축가 이소진씨(아틀리에리옹서울 대표)에게 새 일이 시작됐다. 오래된 건물 하나를 고쳐달라는 것.

바로 이 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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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소진

 

건물은 이 고갯길의 상징인 고 최규식 서장의 동상 바로 맞은 편에 있었다. 딱 보기만해도 낡고 오래된, 그리고 작은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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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소진


건물 이름은 `윤동주 문학전시관'. 주옥같은 시로 사랑받는 민족시인 윤동주를 기리는 문학관이었다.

그런데 왜 이리 허름하냐고?

그건 이 건물이 `임시 문학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원래 저 건물은 청운동 일대에 물을 공급하는 수도가압장이었다. 가압장은 물에 압력을 가해 전달하는 시설.

원래 1974년 지은 이 가압장이 낡고 오래되어 2008년 용도 폐기 되었고,

구청은 이 건물을 쓸 방안을 찾아 놔두다가 윤동주 시인이 젊은 시절 인왕산 부근에서 하숙을 하면서 <별 헤는 밤> 등의 시를 썼으니

그를 기리는 문학관을 종로구에 세우기로 했다. 그래서 저 은퇴한 가압장이 문학관으로 재탄생하게 됐다.

우선 임시로 자료를 전시하고, 제대로 고치는 작업을 이소진 건축가에게 의뢰한 것이었다.

 

이소진 건축가는 젊은 건축가들(45살 이하)이 가장 받고 싶어 하는 상인 `젊은 건축가상' 2012년 수상자다. 프

랑스에서 오랫 동안 일하다가 돌아와 주로 규모가 크지 않은 공공건축을 맡아 건축계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과연 이 건물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 건축가는 고민했다.

 

건축가는 이 건물이 동네 주민들에겐 30년 넘게 보아온 친숙한 풍경이란 점을 고려했다. 그래서 최대한 원래 건물의 이미지를 변형시키지 않고 기존 형태를 유지하면서 깨끗하고 단정한 전시관을 구상했다.

문제는 전시 자료가 아주 많지 않다는 것. 그 말은 결국 건물 자체의 공간으로 승부하는 전시관이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저 가압장 설비실이었던 건물을 구조는 그대로 놔두면서 내부를 싹 고치는 설계를 마쳤다.

 

# 예상 못한 발견-"이건 보물이야"

 

그런데, 거의 설계가 마무리된 시점에 변수가 생겼다. 전혀 예상 못한.

공사 현장을 찾아간 건축가의 눈에 벽 하나가 보였다. 건물 뒤쪽에 있던 벽인데 그날 따라 그 벽에 눈길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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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소진

일반적으로 축대 옹벽이면 위에서 내려 스며든 물이 빠지는 배수구가 있어야 했다.

그런데 시멘트벽에는 그런 배수 시설이 전혀 없었다.

 

궁금해진 건축가는 그 벽의 정체를 알아봤다. 그리고 안전을 위해서라도 구조진단을 요청했다.

여기저기 알아본 결과 벽의 정체가 드러났다. 바로 `물탱크'였다.

일반적으로 가압장이면 당연히 물탱크가 있을 것 같지만 물탱크 시설이 멀리  떨어진 곳들도 많아 그 존재를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물탱크는 아주 크지는 않았지만 묘했다. 바닥 면적(55㎡, 16.6평)은 좁고 높이는 5미터에 이르는 수직 공간이었다.

게다가 2개였다. 똑같은 물탱크 2개가 샴쌍동이처럼 나란히 붙어 언덕 속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설계를 거의 마친 상황. 건축가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는 마음 속으로 외쳤다. '이건 보물이다!'라고.

방치되었던 빈 물탱크는 동굴 같으면서도 위아래로 길어 독특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고, 벽에는 오랜 세월 물이 만들어낸 추상화 같은 자국들이 선명했다.

 

어떻게 하면 이 물탱크를 활용할까, 건축가는 신이 나서 궁리를 시작했다.

설계? 다시 하면 되니까. 이 재미있는 공간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잖아도 건물은 너무 작아 전시장으로 쓰기에 부족했고,

새로운 공간이 등장했으니 이를 잘 활용하면 새로운 전시관을 시도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건축가는 건축주인 종로구청 쪽에 제안했다. 이 물탱크를 활용해보자고.

용도를 다한 산업시설을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고쳐 쓰는 것은 이미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했다.

구청은 그 아이디어를 받아들였다. 버려졌던 물탱크는 새로운 운명을 맞게 됐다.

 

# 어, 이거 생각보다 어렵네...

 

그러나, 막상 물탱크를 다시 쓰는 방안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애초 건축가는 최대한 원형을 살려 전시 공간으로 쓰고자 했다. 하지만 쉽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다. 공간 특성상 습기 조절과 조명이 쉽지 않았고, 내부 공간 연출도 어려웠다.

 
건축가는 고심에 고심을 한 끝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어차피 물탱크는 2개. 모두 전시장으로 쓰지 말고, 하나는 아예 지붕을 걷어내 옥외 공간으로 만들면 어떨까?'
 
기존 건물에 전시장을, 그리고 이어지는 두 개의 물탱크 중 앞의 것을 지붕을 뜯어 통로로 만들고, 남은 물탱크 하나는 전시장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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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소진

 
물탱크 하나는 그래서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변신하게 됐다.


지붕을 뜯어내자 5미터 깊이의 물탱크는 하늘을 바라보는 창문처럼 변했다. 아래에서 위를 보면 시멘트벽이 액자를 만들고,

 네모꼴 프레임을 통해 저 높은 곳의 푸른 하늘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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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소진


지붕을 뜯어내니 벽의 물자국이 확실하게 드러났다. 오랜 세월 물을 저장하면서 생긴 그 자국은 마치 추상화처럼 보였다.

건축가는 이 물자국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고 봤다.
 
아주 간단한 과정이었지만 공사는 뜻밖에도 쉽지 않았다. 오래된 건물이어서 도면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건축가와 시공업체는 일일이 구석구석을 실측하면서 낡은 시멘트벽이 무너지지 않도록 구조적으로 보강을 해나가야했다.
건물을 새로 짓는 것도 아니고 고쳐 쓰는 것임을 감안하면 무척이나 까다롭고 수고로운 공사였다.
그 바람에 공사는 7개월이나 계속 됐다. 저 정도 크기 건물이면 새로 짓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 예상 못한 반전을 숨기고 있는 문학관
 
오랜 공사를 마치고 최근 건물은 드디어 완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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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첫 인상은 그냥 단순깔끔하다.
건물은 새단장을 했지만 40년 가까이 주민들이 보아왔던 가압장 기계실의 느낌을 그대로 간직해 계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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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앞면은 윤동주 시인의 얼굴과 시를 새긴 하얀 철판. 이곳이 윤동주문학관임을 보여준다.
 
윤동주 시인을 만났으면, 이제 안으로 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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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김재경 건축사진가


본 전시장 내부에는 시인의 가족인 윤인석 성균관대 교수 등이 기증한 자료들이 있다. 그러나 많지는 않은 편.
 
전시장 내부를 돌아보고 나면 한 구석에 검은 철문이 기다린다.
그 문을 열면 이런 공간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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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김재경 건축사진가


문학관 본 건물과 영상 전시실을 연결하는 통로다.
이 통로는 안뜰(중정)이기도 하다.
바로 지붕을 걷어낸 물탱크가 이렇게 변한 것이다.
 
얕고 부드러운 통로가 공간 옆으로 이어지고, 그 아래에는 잔돌을 깔았다. 그리고 식물은 수크렁을 중심으로 아주 간결하게 심었다.

밤이 되면 통로 계단 아래에 불이 들어온다.

물탱크 시절의 자국은 벽화처럼 벽에 남았다. 높이 5미터 물탱크는 땅과 하늘을 잇는 통로가 됐다.
올려다 보면 파란 하늘과 함께 오랫 동안 물탱크를 옆에서 지켜온 팥배나무 가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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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닿는 윗부분은 안전을 위해 건축가가 벽을 덧대 올린 부분. 새로 만들어 새하얀 상태다.

그래서 아랫쪽 물때와 대비를 이룬다. 물탱크에 쌓인 세월을 보여주는 장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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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김재경 건축사진가 


이제 저 통로를 따라 앞에 보이는 철문으로 간다.
나머지 하나 남은 물탱크로 들어갈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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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김재경 건축사진가

 
원형을 거의 그대로 남긴 물탱크는 영상 전시장이 됐다.
사람이 들어오면 센서가 자동 감지해 벽에 윤동주 시인에 대한 영상을 벽에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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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탱크 시절 작업자들이 드나들던 입구는 뚜껑을 걷어내 빛이 들어오는 창문이 됐다.

저 구멍을 통해 떨어진 빛이 깊숙히 떨어지면서 원래 있던 사다리를 걷어낸 자국과 시멘트 벽의 재질감을 드러낸다. 

 
# 그럼, 건축가가 한 것은 도대체 뭐지?

 
윤동주문학관은 이 것으로 끝이다.
 
이 문학관은 전시보다는 공간 자체가 관객들을 맞아주는 곳이다.
그리고 그 공간 자체도 막상 아무 전시 기능을 하지 않는 통로가 된 물탱크 부분이 가장 강력한 인상을 남긴다.


두 물탱크가 변신한 중정, 그리고 영상전시장은 모두 거칠고 날것 그대로에 가깝다.

새롭게 덧붙인 것은 거의 없고, 세월의 흔적과 설비 시설의 구조 그 자체가 공간을 이룬다.

그래서 다른 곳에선 만날 수 없는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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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김재경


건축가는 원래 있던 건물 형태를 거의 그대로 따랐다. 그리고 발견된 물탱크 2개 중 하나는

지붕을 걷어내는 정도로만 고치고, 나머지 하나도 거의 그대로 남겼을 뿐이다.
 
그러면 이런 의문도 들 법하다. 과연 이 건물은 건축가가 설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라고.

이 건물은 건축인가, 아니면 그저 재활용일 뿐일까?
 
분명 건축이다. 물탱크를 발견한 것은 우연이지만, 그걸 활용하기로 한 선택 자체가 건축 행위였다.

그렇게 활용하면서도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는 것, 그 역시 건축적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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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건축가는 왜 이토록 자기의 조형 의지를 최소화했을까?
자기만의 감각을 최대한 집어넣었을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다.
 
그건 이 건물의 의미 때문이었다.
 
윤동주라는 시인은 화려하고 현란한 수사로 사람을 사로잡는 시인이 아니었다.
그는 순수하고 깨끗한 언어로, 잘난척 하지 않고 조용히 남들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시인이었다.
그런 시인의 문학관을 최대한 튀고 잘난척 하는 건물로 구상할 수는 없었다.
건축가는 그래서 시인을 닮은 문학관을 선택했다.
 
그리고, 내부에서 물탱크가 변신한 강력한 공간을 만나게 되는 만큼 외부는 최대한 차분하게 손을 대는 것으로 그쳤다.
이는 앞서 말했든 오랜 세월 이 건물을 보아온 동네 주민들의 기억을 감안한 결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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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물 바로 옆 서울 성곽으로 올라가는 공원길에 올라가 내려다본 문학관의 모습.

아쉽게도 윤동주문학관은 야간 개장은 하지 않는다. 조만간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사진=김재경 건축사진가

윤동주문학관은 그래서 이처럼 조용하고 차분한 건물로 재탄생했다.
아파트 경비실만한 작은 건물, 얼핏 보면 건축가가 한 것이 없어보이는 건물, 그런 역설적인 건축을 보여주는 건물이다.

 이소진 건축가는 이 건물로 올해 `젊은 건축가상'까지 받았다. 

건축이란 꾸미는 것만이 아니라 비워내는 것일 수도 있으며, 

남아 있는 것을 되살리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조용히 말해줬기 때문이었다.
 
by 구본준  http://blog.hani.co.kr/bonb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