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France(2025.Mar)

4-2 The Rosary Chapel(La Chapelle Matisse)

봉들레르 2025. 4. 5. 18:10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20세기를 빛낸 찬란한 화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울림이 있는 색상과 심플한 형태로 자기만의 화법을 개척했다. “예술가는 본능과 직감에 의해 이끌려야 한다”는 명제로 예술을 새롭게 창조한 마티스.
 
그가 태어난 곳은 프랑스 북부 카토 캄브레시스의 외할아버지 댁이었다. 하지만 유년기를 보낸 건 외가에서 15킬로 떨어진 보엥 앙 베르망드아의 부모님 집이었다. 부친은 곡물과 그림을 파는 가게를 했고 모친은 아마추어 화가였다. 그가 자란 곳은 베틀을 짜는 직물염색공업이 발달했다. 마티스의 색감은 여기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마티스는 청년기까지 전혀 미술을 공부하지 않았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그는 법률보조인으로 일했다. 안타깝게도 그는 이 일에 전혀 흥미가 없었다. 스무 살 되던 해 그는 급성맹장염 수술을 받고 한 동안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다. 그 때 어머니는 그에게 화구상자를 주었다. 이는 정녕 신의 한수였다. 그림을 그리면서부터 마티스는 인생의 재미를 느꼈다. 결국 직장을 접고 미술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파리로 거처를 옮겼다.
 
학창시절 마티스는 수염을 기르고 안경을 낀 채 매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그에게 친구들은 ‘의사’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마티스의 운명을 바꾼 건 귀스타브 모로 선생과의 만남이었다. 이 선생 덕에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개발해 나갔다. 물론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건 고갱, 세잔, 고흐 등 후기인상파 화가들이었다. 또한 그의 스페인, 모로코, 러시아, 타이티 여행도 크게 한몫했다.
세계 여기저기를 돈 마티스. 그가 최종 닻을 내린 곳은 프랑스남부 방스(Vence)였다. 2차 세계대전으로 폭격의 위험에 처한 니스를 떠나 이곳에 왔다. 방스는 마티스에게 니스로부터 멀리 떨어진 느낌이 들게 했다. 니스에서 1시간 남짓 떨어졌지만 타이티를 연상시켰다. 아침 산책길에 만나는 소녀들, 여인들, 자전거를 타고 시장으로 달리는 남자들은 시장이 개장될 때의 타이티를 생각나게 했다.
 
이런 방스는 마티스의 말년을 살찌웠다. 영혼의 안식처인 이곳에 그는 로제르(Rosaire) 소성당을 지었다. 일명 마티스성당인 이곳은 방스의 찬란한 햇빛으로 둘러싸여 있다. 외부는 검소하지만 하양파랑 기와와 초승달과 불꽃모양의 13미터 철조 십자가가 인상적이다. 마티스는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난 오로지 성실하게 일만했다. 이 성당은 내 모든 화가생활의 총결산이다. 비록 불완전하지만 이 성당은 내 최고의 걸작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여든네 살까지 장수한 마티스. 수 없이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를 기념하기 위해 그의 고향과 코르시카 등 여러 곳에 미술관이 세워졌다. 하지만 마티스를 한눈에 보려면 방스가 최고다. 마티스성당은 그를 총망라한다. 더구나 방스는 모두의 로망인 프로방스가 아닌가!
경기신문

 

 

 

Chapelle du Rosaire의 내부 모습

모든 색상의 합을 상징하는 작은 흰색 예배당은 Vence의 언덕 꼭대기에 있다. 마티스가 중앙 각도에 자 모양 제대를 배치했다.
제대의 색상은 성찬례의 빵과 비슷하다. 공간 내부에는 세 세트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있으며,
생명의 나무를 표현하기 위해 세 가지 색상만 사용했다. 노란색은 태양을, 녹색은 식물을, 파란색은 지중해와 하늘을 나타낸다.
작가는 벽에 있는 세 개의 큰 벽화 타일의 일부가 될 스케치를 만들었다.
이 그림은 도미니코회의 창시자인 구즈만의 성 도미니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십자가의 길에 바쳐졌다.
마티스는 또한 고해실의 조각된 나무 문, 십자가 종, 제대의 청동 십자가, 청동 촛대, 작은 성찬식과 같은 가구를 만들었다.
사제의 예복에는 마티스가 전통적인 교회 색상인 보라색, 검은색, 분홍색, 빨간색을 사용했다.

 
색채와 야수파의 거장인 마티스는 빛으로 완전히 고립된 공간을 그려냈습니다.

로자리 예배당은 마티스 예배당이라고도 알려져 있으며, 코트다쥐르에서 매우 가까운 방스에 위치한
작은 도미니카 가톨릭 예배당으로  프랑스 예술가 앙리 마티스가 직접 설계했다.
20세기 가장 중요한 예술가 중 한 명인 앙리 마티스는 77세의 나이에 건강이 매우 나빴지만 말로에  걸작을 만들어냈다 .
당시 도미니카 수녀가 된 그의 친구이자 오랜 간호사인 모니크 부르주아는 마티스에게 예배당의 디자인하는 포괄하는 프로젝트를 부추겼다.. 건축,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세 개의 벽화, 가구에서 예복 세트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Saint Dominique를 대표하는 세라믹 타일 장식

Chapelle du Rosaire의 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