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Armenia(2018 Jul)

3-4 타미니안이 설계한 캐스케이드(Cascade)

봉들레르 2018. 8. 14. 18:05


에레반의 건축들은 전통적으로 다양한 색상의 자연산들을 이용해 왔다.

열에 강하고 가공하기 쉽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듯한 응회암을 이욯해서 도시가 분홍빛을 띤다



에레반의 지도는 캐스케이드와 오페라극장이 있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중심도로를 위주로 방사형 도로가 그려지며 그 위를 격자형 도로가 지나간다.

캐스케이드 왼쪽에는 각종 기관들이 오른쪽에는 마테나다란이 위치해 대칭을 이룬다


캐스케이드 공원 입구에 있는 알렉산드르 타마니안(Alexander Tamanyan)의 석상.

타마니안은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과 시내의 주요 건축물들을 설계했다.

캐스케이드 공원 입구에는 무언가를 골똘히 내려다보는 모습을 한 타마니안의 석상이 있다.

아마도 예레반의 도시 설계도를 보고 있는 것이리라.

석상 뒤로는 넓은 정원이 조성되어 있고 정원 사이사이마다 유명 작가들의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 정원 끝에는 6개의 계단으로 이뤄진 스피커 모양의 인공폭포 구조물이 있다.

 계단구조물 내부에도 예술작품들이 있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관람할 수 있다.

모두가 현대조각품들이다. 사실 이 공원은 타마니안 생전에는 완성되지 못했다.

1970년대 말 예레반의 도시계획위원장을 역임한 짐 토로스얀이

타마니안의 유작(遺作)에 자신의 생각을 추가하여 건설한 것이다.(월간조선)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을 현대풍의 도시로 설계한 이는 알렉산드르 타마니안이다.

그는 흑해 연안 출신의 뛰어난 건축가로 45세 때에 아르메니아로 이주해 15년을 살았다.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둔 곳도 예레반이다. 아르메니아를 사랑한 그는 곳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그가 설계한 예레반 시내의 건물들은 대부분이 응회암(凝灰巖)으로 지어졌다.

이 석재는 화산이 분출할 때 재와 모래가 엉겨서 굳어진 돌로 연한 분홍색이다.

그래서 예레반을 가리켜 ‘핑크도시’라고 부른다.






예레반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소 중 하나인 ‘캐스케이드’로 가는 길은

현대 도시 예레반의 아버지인, 건축가이며 도시계획가 알렉산더 타마니안을 만나는 길이기도 하다.

러시아 출신인 그는 러시아에서 건축가로서의 명성이 정점을 향하던 마흔다섯에 아르메니아로 이주해 이후 반생을 보냈고

또 예레반에서 숨을 거두어 아르메니아의 건축가로 남았다.

그는 예레반의 오페라하우스, 공화국 광장과 주변의 건물 등을 설계하는 등 아르메니아의 건축사와 도시사에 일획을 그었다.

캐스케이드로 향하는 길의 초입에 놓인, 설계도를 보는 대리석 상의 주인공이 타마니안이다.

바닥에는 그가 설계한 예레반의 도면이 새겨져 있다.

캐스케이드는 북쪽의 언덕과 도심을 연결하고자 했던 그가 구상한 계단형 구조물로

1936년 숨을 거둘 당시 착공조차 하지 못했고 설계도로만 남아 있던 미완의 유작이다.

1970년대 말 예레반의 도시계획위원회 위원장인 짐 토로스얀이 타마니안의 유작을 부활시켰다.

타마니안의 원안에 기초했지만 내부에 공간들을 만들어 연결하고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했으며

전면에 아르메니아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예술품들로 치장한 정원이 추가되었다.

1980년대 말 마침내 착공되었지만 1988년 대지진과 1991년 독립, 전쟁 등으로 중단되어 버려지다시피 한 후

2002년 아르메니아 출신 디아스포라의 후손이자 미국의 사업가인 카페스지안이 재산을 출연해 2009년 미술관으로 마침내 문을 열었다.

캐스케이드의 백미 중 하나는 언덕을 향해 계단형으로 만들어진 6개의 물이 흐르는 정원들과

그곳에 마름모꼴의 연못을 두고 설치된 조형물들이다. 
  


  공화국 광장에서부터 인공계단폭포가 있는 캐스케이드 공원까지 가는 길은 예레반의 중심가이다.

이 길을 걷노라니 오페라하우스가 근사한 위용을 자랑한다. 이 건물도 타마니안의 작품이다.


카페스지안 미술관의 소장품이기도 한 조형물들


"Shadows I" sculpture by Jaume Plensa


한국인 조각가 지용호씨의 작품으로 폐타이어를 이용해서 만든 힘이 넘치는 사자..

                   

Barry Flanagan  Hares on Elephants Sculpture


Botero's Roman Warrior, Cafesjian Museum of Art, Yerevan, Armenia.


Fernando Botero, Woman Smoking a Cigarette, 1987 bronze, dark brown patina

자본주의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같기도하고,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관념을 나타낸 것같기도하다

페르난도 보테르(Fernando Botero)

1932년 콜롬비아 메델린(Medellin)에서 태어났다.

투우사 양성학교를 나와 16세 때 메델린 미술연구소에서 개최한 그룹전에

두 점의 수채화를 출품한 것을 계기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1

951년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로 이주하여 첫 개인전을 열었고,

그 후 피렌체의 아카데미아 산마르코, 보고타의 국립미술대학에서 공부하였다.  

1957년 미국 워싱턴에 있는 범미연맹(Pan American Union)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1969년에는 뉴욕현대미술관에서 부풀려진 이미지에 관한 전시회를 열었다. 1973년부터는 조각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작품의 배경은 고향 남미대륙으로 독재자, 탱고 댄서, 창녀, 아낙네 등이 등장한다.

소재로 삼은 인물이나 동물은 모두 실제보다 살찐 모습으로 그려지며,

작고 통통한 입과 옆으로 퍼진 눈으로 뚱뚱함이 더욱 강조된다.  

마치 튜브에 바람을 넣은 것처럼 부풀려진 인물과 동물상, 독특한 양감이 드러나는 정물 등을 통해 특유의 유머감각과 남미의 정서를 표현하였고,

옛 거장들의 걸작에서 소재와 방법을 차용하여 패러디한 독특한 작품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또 고대의 신화를 이용해 정치적 권위주의를 예리하게 고발하고, 현대 사회상을 풍자한 작품도 있다.  

주요 작품으로 모나리자를 패러디한 유화《모나리자》(1977),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응용한 유화《스페인 정복자의 자화상》(1986) 등과

조각작품으로 제우스가 유로파를 범하는 그리스 신화를 패러디한 브론즈 작품《유로파의 강탈》(1992)이 있고,

그 외《창문 앞의 여자》(1990), 《담배 피우는 여인》 등이 있다.




The Running Deer


"The Cat" by Fernando Botero. Park on the way to Cascade. Yerevan, Armenia

First level



1층에서 2층 가는 에스칼레이터옆





Second level


팔랑개비





2층에서 3층






Third level


3층에서 4층으로




Fourth level












4층에서 5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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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th level


Fifth level: "Divers" by David Martin










5층에서 그 위로












































One of the main reasons why Cascade has a great number of visitors

 (more than 1,200,000 people visited the Cafesjian Center for Arts as of 2011)

is the spectacular view to Yerevan from the top of Cascade.

Cascade is crowded with visitors not only during daytime or summertime.

It is always full of both local people and tourists even in the evenings

(the youth spends time here more in the evenings) and winter days.


캐스케이드 내부에는 층별로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다.

아르메니아 역사를 세 점의 대형 무랄(벽화)로 표현한 1층 상설 전시실의 프레스코화는 특히 눈길을 끈다.

그리고르 카니얀의 것인데 한눈에 멕시코의 무랄을 연상케 한다.

캐스케이드 외부의 계단을 걷거나 내부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상부에 이르면 마침내 언덕 위에 오른 것이다.

역시 타마니안의 작품인 오페라하우스를 비롯해 도심 전체를 굽어볼 수 있는 그곳에서 고개를 들면

지평선 너머 손에 잡힐 듯 우뚝 서 있는 아르메니아인들의 영산(靈山) 아라랏이 보인다.

노아의 방주가 마지막에 걸려 머물렀다는 종교적 상상력의 무대이기도 한 바로 그 산이다.

소련 시절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국장(國章)을 장식하는 아라랏은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그곳에 있지만

그 사이에 국경이 있고 아라랏은 그 너머 터키 영토에 속해 있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이 한창이던 1993년 터키가 경제 봉쇄와 함께 국경까지 폐쇄한 후 아라랏은 더욱 멀어졌다.









홈페이지 http://www.cmf.am/About-CCA


퍼온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