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Armenia(2018 Jul)

노아의 방주와 아라라트 산

봉들레르 2018. 8. 9. 17:46


아르메니아인의 성산(聖山)인 아라라트 산은, 성서에 따르면 대홍수가 끝났을 때

노아의 방주(方舟)가 표착(漂着)한 곳이라고 한다. 이 산을 바라보는 코르 비랍 수도원은 7세기에 세워졌다.


노아의 방주 [Noah's ark] 
모든 사람들이 타락한 생활에 빠져 있어 하느님이 홍수로 심판하려 할 때 홀로 바르게 살던 노아는

하느님의 특별한 계시로 홍수가 올 것을 미리 알게 된다.

그는 120년에 걸쳐 방주(길이 90.9m, 너비 15.15m, 높이 9.09m, 상 ·중 ·하 3층으로 된 배)를 만들어

8명의 가족과, 한 쌍씩의 여러 동물을 데리고 이 방주에 탄다.

대홍수를 만나 모든 생물이 전멸하고 말았지만, 이 방주에 탔던 노아의 가족과 동물들은 살아 남았다고 한다.

노아라는 말은 헤브라이어로 ‘휴식’이라는 뜻인데, 노아는 신앙의 모범, 방주는 신자의 단체인 교회, 대홍수는 하느님의 심판을 상징하며,

원시교회 이래 그리스도교 예술의 소재로 많이 다루어지고 있다


아라라트 산은 터키와 이란, 옛 소련 국경에 걸쳐 있는 산이다.

해발고도가 5,165미터인 아라라트 산은 기후 변동이 심하며 만년설로 뒤덮여 있고 큰 돌이 굴러다녀 오르기 어려운 산이다.

이 아라라트 산 정상 부근에 호수가 있는데 호수는 일 년 중 두 달 정도만 모습을 드러내고

나머지 열 달은 얼음에 묻혀 있기 때문에 위치조차 알아내기 어렵다.

노아의 방주를 찾으려는 사람들은 노아의 방주가 아라라트 산 근처에 도달했다는 성경 기록을 근거로

노아의 방주가 이 호수 안에 있다고 확신한다.

터키 아라라트 산에 지은 노아의 방주

성경에서는 노아의 방주가 길이 135미터, 폭 22.5미터, 높이 13.5미터에

배수량이 4만 3천 톤이나 되는 엄청난 크기였다고 전한다.


고대로부터 아라라트 산은 사람들에게 무척 신성한 산으로 여겨졌다.

아라라트 산은 노아의 방주와 에덴동산이 있던 성지로, 신이 출입을 금한 곳으로도 유명했기 때문이다.

기원전 300년 바빌로니아의 신관 베로소스는 “방주가 있는 곳까지 올라간 사람들은

언제나 배에서 송진을 긁어내어 악마를 물리치는 부적으로 삼았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마르코 폴로도 『동방견문록』에 “아무도 오를 수 없는 산봉우리, 만년설로 뒤덮인 그곳에는 노아의 방주가 있다”라고 썼다.

기원전 5세기에 칼데아인의 사제들이 이 산에 올라 방주에 칠해져 있던 역청을 긁어 왔다고 전해진다.

1829년에는 독일 사람인 파로트가 아라라트 산 꼭대기에 올랐다.

그는 방주는 찾지 못했지만 정상이 넓고 평평한 것으로 보아 방주가 얹힐 만하다고 했다.

1876년에는 영국 사람인 브라이스 경이 3,900미터 지점에서 사람 손으로 다듬은 것이 틀림없는 나무 조각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 나무 조각이 방주의 파편이라고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노아의 방주 유물 찾기’에 기름을 부은 사건이 되었다.

성경과 관련된 갖가지 이야기가 전해오는 아라라트 산


1883년 대지진 피해를 조사하던 터키 관리들은 빙하에 드러난 검은 물체를 발견했다.

거의 모두 얼음에 묻혀 있었으므로 전체 모습과 크기를 알 수는 없었지만 그 안에는 높이 5미터짜리 칸막이가 줄 이어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직접 들어가 보기도 했다고 한다.

배의 몸체는 12미터에서 15미터에 이르렀는데 만년설에 파묻혀 있었으므로 전체 크기를 짐작할 방법은 없었다.

1893년 방주를 목격한 네스토리우스 파 대주교는 “대단히 두꺼운 적갈색 용골로 돼 있었다”라고 보고했다.

20세기에 들어 노아의 방주에 대해 더욱 구체적인 증거들이 보고되기 시작했다.

1916년 러시아 항공대 코스코비키 중위는 아라라트 산을 정찰한 결과를 보고했다.

1917년 아라라트 산을 등장한 탐험 대장은 사진과 함께 자세한 보고서를 러시아 황제에게 보냈다.

그러나 직후 볼셰비키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면서 보고서와 사진은 사라지고 말았다.

증언은 꾸며낸 이야기라고 평가 절하됐다.

1940년 터키 조종사 역시 비행 중에 찍은 사진 몇 장을 공개했는데 길이 150미터, 너비 50미터에 이르는 배로 밝혀졌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소련 공군이 얼어붙은 호숫가에 반쯤 파묻힌 배를 보고하자

보고를 근거로 특별 조사반이 파견됐는데 배의 길이가 120미터도 넘었다고 한다.

1955년에는 배의 마스트로 쓰인 듯한 1.5미터짜리 둥근 목재를 프랑스 사람이 가지고 돌아왔다.

그는 아들과 함께 천신만고 끝에 아라라트 산에 올랐는데 나무 막대는 방주의 재료로 알려진 가문비나무였다.

탄소 연대측정법으로는 기원전 3000년에서 4000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으며 방주의 유물이라고 발표됐다.

이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방주가 만들어졌던 시기와 거의 일치했다.

1959년 터키에 머물렀던 미국 공군 428 전술 비행 중대 소위 슈잉하머도

아라라트 산에서 본 방주에 대해 러시아 군인들과 거의 같은 내용을 증언했다.

1960년 터키 공군이 아라라트 산을 항공촬영한 사진에서 달걀처럼 생긴 물체를 발견했다.

거듭된 화산 폭발로 분화구에서 흘러나온 용암에 묻혀 있는 기이한 물체였다.

사진을 조사한 한 전문가는 “노아의 방주 이외의 다른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1969년에는 미국인으로 구성된 고고학 탐험대가 아라라트 산에 올랐다.

면밀히 조사한 결과 북서부 해발 4,900미터 지점에서 깊이 6미터 빙하 밑바닥에 배 비슷한 물체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라라트 산 상공에서 터키 조종사에 의해 촬영된 노아의 방주로 추정되는 물체


1974년 지구자원 탐사기술위성(ERTS)이 아라라트 산에서 어렴풋한 물체를 찍었는데

그 모습은 방주와 비슷했으나 터키 정부는 화산암이 침식해 우연히 배 모양을 띤 것이라고 발표했다.

1989년에는 아라라트 산 정상을 비행 중이던 미국인 조종사가 빙하에 뒤덮여 있는 방주를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사진은 단지 오랜 세월 동안 풍화작용을 받아 침식된 바위일 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1년 10월 미국 NBC는 스페이스 이미징의 인공위성 이코노스 2호가 찍은 괴물체를 분석해 노아의 방주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부분 부분이 끊겨 있기는 하지만 아라라트 산의 화산석과 색깔과 질감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 물체는 눈 위로 드러난 부분의 길이만 183미터에 달했다.

2006년 6월에는 그동안 제시된 설명과 다소 다른 자료가 발표됐다.

노아의 방주로 추정되는 고대 선박 잔해가 이란 엘부르스 산 정상 인근에서 발견됐다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노아의 방주가 아라라트 산에 묻혀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들은 노아의 방주가 묻혀 있는 장소가 이란 엘부르스 산이라고 주장했다.

성서를 연구하는 단체인 BASE(Bible Archaeology Search and Exploration)는 약 4,000미터 높이인 엘부르스 산 정상 인근에서

선박 잔해를 발견했는데 길이는 약 121미터나 된다고 발표했다.

아라라트 산에서도 선박의 잔해를 발견했다는 주장이 유효하다면 노아의 방주는 적어도 두 곳에 있었다는 아이러니도 생긴다.

고고학을 연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알려주지만 노아의 방주가 두 개라는 것은 어떤 연유로든 두 개가 돼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디지털글로브 위성이 촬영한 터키의 아라라트 산

산 중턱(원으로 표시된 부분)에 배 모양의 물체가 찍혀 있는데 화살표 부분은 배가 미끄러져 내려간 흔적처럼 보인다.

오른쪽 아래는 미국 중앙정보부의 위성사진으로 원 내부에 검은 물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