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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프리카, 말리

봉들레르 2009. 9. 21. 12:28

 

 

 

 

아프리카 말리 (오래된 흑백영화에서나 봄직한 풍경들)


니제르강 따라 바마코~제네~몹티~팀북투 답사 
와! 니제르강이다.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 말리의 수도 바마코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니제르강이었다. 바마코 시내를 관통하는 이 강은 서울의 한강보다 강폭이 좁아 보였다. 차창
을 열자 습기를 머금은 시원한 바람이 뺨을 스친다.열대지방이라 더위를 걱정했는데, 1월 바마코의 
아침 공기는 한국의 가을 날씨처럼 선선하다. 온도계가 23℃를 가리키고 있다.
 
▲ 니제르강의 일몰(몹티), 니제르강과 버니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몹티는 말리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다. 니제르강(4,180km)은 나일강, 콩고강에 이어 아프리카에서 세 번째로 긴 강이다. 
서아프리카 기니 고원에서 발원해 말리,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베닌, 나이지리아를 거치며 대서양
으로 흘러든다. 이 강이 만들어내는 유역에 아프리카 인구의 절반이 몰려 산다. 니제르강이 만들어낸 
유서 깊은 도시 제네(Djenne‘)를 향해 길을 잡는다. 바마코에서 제네까지는 567km, 온종일 
자동차로 가야 한단다. 이른 새벽 바마코를 출발한 자동차가 자로 그은 듯 쭉쭉 뻗어있는 도로 위를 
달린다. 길 양쪽으로 망고나무숲이 싱그럽다. 망고나무 사이로 바오밥 나무들이 불쑥 불쑥 고개를 
내밀며 이곳이 아프리카 땅이라는 걸 말해준다.
 
▲ 제네 모스크,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인 이 모스크는 흙으로 지은 건축물 중 세계에서 가장 큰 
것이다. 진흙 모스크로 유명한 제네 모스는 이글거리는 태양에 자동차가 찜통처럼 데워질 
즈음 세구(Se‘gou)라는 도시에서 쉬어간다. 바마코에서 약 230km를 달려온 셈이다. 바마코에서 
헤어졌던 니제르강을 이곳에서 다시 만난다. 하구로 내려와서인지 강폭이 많이 넓어졌다. 강변에
서 빨래하는 아낙들 풍경이 한 폭의 아프리카 그림이 된다. 알라신의 기도시간에 맞추어 목욕 나온 
사람들도 니제르강 풍경 속으로 끼어들고 있다.세구를 출발한 지 얼마 후 자동차는 니제르강의 
지류인 바니강을 건넌다. 니제르강 보다는 강폭이 좁지만 그래도 꽤 큰 강이다. 이런 작은 강들이 
니제르강으로 흘러들어 몇 천km를 흘러가는 대하가 된다. 다리 아래 강변에서 아낙들이 가슴을 
드러낸 채 빨래하고 있다. 추수가 끝난 메마른 땅, 길가에서 파는 수박들과 그린 파파야, 느릿느릿 
길을 건너는 양떼들,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말리의 시골풍경들이 쭉쭉 뻗은 길만큼이나 지루하게 
펼쳐진다. 새벽별을 보며 바마코를 출발한 자동차가 해가 진 후에야 제네에 도착한다. 
니제르강과 바니강 사이에 위치한 제네는 광활하고 비옥한 땅이다. 이곳 사람들은 예로부터 두 강
을 따라 세구와 몹티, 그리고 팀북투까지 물자를 거래하며 상업 중심지로 발전해 왔다. 제네는 세계
문화유산 중 하나인 진흙 모스크로 유명하다. 제네 모스크는 캐러밴들이 황금과 소금 중계무역으로 
부를 쌓은 말리 제국의 가장 큰 건축물이다.

▲ (좌) 니제르강변에서 선적을 기다리고 있는 소금들(팀북투). (우) 팀북투 풍경.

이른 새벽 모스크에서 울리는 기도 소리에 이끌려 숙소를 나온다. 푸르스름하게 밝아오는 여명 사이로 모스크의 윤곽이 드러난다. 흙으로 지은 탓인지 건물이 마치 자연의 일부처럼 푸근하게 다가온다. 확성기에서 들려오는 코란 소리만 들릴 뿐 아직 모스크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모스크 건축양식은 특이하다. 진흙벽돌로 쌓아올린 건축물은 외벽 군데군데에 촘촘히 박혀 있는 나무토막들이 인상적이다. 외벽에 나온 지주들은 쌓아올린 흙벽돌을 지탱하는 역할은 물론이고, 우기가 지난 후 흙을 덧칠할 때 발판을 걸치는 버팀목이 되기도 한단다. 매년 우기가 지나고 나면 한 달 동안 제네 사람들은 비로 흘러내린 건물을 수리 보수하는 작업에 동참한다. 이제 이 행사는 이곳 사람들 축제이기도 하다.
날이 밝아오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스크로 모여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원 내부로 향하고, 몇몇 사람들은 사원 벽에 기대어 코란을 읽는다. 월요일이면 장이 선다는 사원 앞 광장은 당나귀 몇 마리만 묶여 있다.


▲ 니제르강 풍경(몹티).

말리 최대 수상교역도시 몹티

제네에서 몹티(Mopti)로 길을 잡는다. 바니강과 니제르강이 만들어낸 너른 초지 위로 수많은 소떼들이 지나가고 있다. 소를 키우는 사람들은 펄족으로, 이곳에서 수도 바마코까지 한 달 정도 걸려서 소를 몰고 가 그곳 시장에 내다 판다. 제네를 출발한 지 2시간 남짓, 말리 최대의 수상도시 몹티에 도착했다.

니제르강과 바니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몹티는 이 강들로 인해 말리에서 제일 가는 수상교역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다. 강변에 형성된 시장 안으로 들어가 본다. 토기, 곡식, 바구니, 말린 생선, 등 등 온갖 물품들과 사람들이 한곳에 뒤엉켜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대부분의 말린 생선들은 가루를 만들어 조미료로 쓴단다.

강변 부둣가에는 대리석 같은 소금덩어리들이 가득 쌓여 있다. 저 소금들은 팀북투에서 배로 실어온 것들인데, 이곳 몹티에서 교역되는 아주 중요한 물품이다. 팀북투에서 북쪽으로 740km 떨어진 사하라 사막 깊숙한 곳에 타우데니(Taoudenni) 소금광산이 있다. 소금 캐러밴들은 11월부터 3월까지 시원한 계절이 되면 낙타들을 몰고 소금을 실어 나른다. 소금광산에서 팀북투까지는 낙타로 보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대리석처럼 잘린 소금 한 덩어리는 60kg 정도 되는데, 낙타 한 마리에 보통 네 덩어리 정도 싣는다. 소금을 캐는 인부들은 네 덩어리를 캐면 한 덩어리를 갖게 되고, 팀북투에서 거래되는 소금 한 덩어리 가격은 약 5,000세파(10,000원) 정도다. 사막 광산에서 일하는 인부들은 오아시스 마을(낙타로 3일 정도 걸리는 거리)에서 물을 사다 먹어야만 하는데, 30리터짜리 물 한 통을 소금 두 덩어리와 맞바꾼다고 한다. 소금 실은 배 한 척이 부두로 들어오고 있다. 이곳에서 팀북투까지는 배로 이틀이 걸린다.


▲ (좌) 짐을 잔뜩 실은 몹티의 화물선. (우)길가에서 수박 파는 아이
선착장에서 피나세라는 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본다. 짐과 사람을 잔뜩 실은 배들이 끊임없이 오간다. 오래된 화물선, 그 사이에 간신히 끼어 앉은 사람들, 오래된 흑백영화에서나 봄직한 아프리카 풍경들이다. 나도 저 뱃전에 누워 느릿느릿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흘러가고픈 충동이 인다.

사하라 사막의 젖줄인 니제르강은 어디서 흘러와 어디로 흘러가는지 몰라 한 동안 수수께끼의 강으로 불렸다. 1353년 팀북투에 들른 이븐 바투타(아랍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행가)는 미지의 땅에서 발원해 사막 내륙으로 흘러간다고만 그의 여행기에 적고 있다. 1805년 영국의 탐험가 망고파크가 유럽인 최초로 이 강을 탐험하다 죽는다. 그 후 1830년에 이르러서야 이 강의 하류를 찾아내는 데 성공한다.

이글거리며 불타던 태양도 니제르강 앞에서는 수줍은 색시처럼 강물에다 얼굴을 적신다. 바람은 자고, 새들은 낮게 나른다. 강변 백사장에 조각이불처럼 널려있던 빨래들이 하나 둘 아낙들의 광주리 속으로 담아지고, 물길 따라 어디론가 떠났던 사람들이 피나세를 타고 속속 포구로 돌아온다. 작은 배를 탄 사람들은 수심이 그리 깊지 않은지 긴 장대를 이용해 배를 저어 온다. 이 해거름에 길 떠나는 자들은 많지 않으리라. 해가 지면 동물도 사람도 회귀본능에 의해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갈 집을 찾지 못한 여행자만이 해거름 니제르 강변에서 서성대고 있다. 


환상의 교역도시 팀북투로 향하다

몹티에서 3시간 정도 포장된 길을 달려 두완자(Doawanga)라는 작은 도시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길을 꺾자 황톳길로 바뀐다. 누런 모래바람 사이로 수많은 낙타떼들과 당나귀떼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원시의 땅 아프리카에 와있음을 실감한다. 이 길이 팀북투로 향하는 길인데도 다니는 차량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화물들과 사람들은 배로 이동하기 때문이란다.

3시간쯤 달려 니제르강변에 닿는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니제르강은 바다처럼 넓다. 한적한 강변에서 연락선 오기를 기다린다. 강 건너편에 환상의 교역도시 팀북투가 있다고 한다. 연락선이 닿는 모래톱에는 몇몇 사람들이 움막집을 짓고 산다.

▲ 팀북투의 움막집들.

기다려도 배는 오지 않고 방금 어부가 잡아 온 물고기를 구워 허기진 배를 채운다. 울루재개란 물고기인데 준치처럼 생겼다. 울루는 개이고, 재개는 물고기란 뜻이란다. 물고기의 이빨이 개의 이빨을 닮아 그런 이름이 붙여졌단다.

니제르강에 어둠이 내린 후에야 연락선이 도착했다. 강폭이 얼마나 넓은지 강을 건너는 데 1시간이나 걸렸다. 어두운 니제르강을 건너 20여 분 차로 달려서야 팀북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중세시대 유럽 상인들은 지중해 연안 무어인(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교도)들의 집을 둘러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무어인들의 방에는 황금장식은 물론 상아와 각종 보석 등으로 치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디서 이런 진귀한 것들을 구했느냐는 질문에 무어인들의 대답은 하나 같이 팀북투에서 가져왔다고 대답했다.

13세기 말리 왕국의 왕인 칸칸무사(Kankan Musa)는 메카로 성지순례를 가기 위해 카이로에 들렀는데, 그 때 그가 가지고 온 황금 때문에 카이로의 금값이 폭락했다고 한다. 당시 카이로에 머물고 있던 베네치아 상인들로부터 퍼져나간 소문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어 갔다. 사하라 모래사막 저 너머 팀북투라는 곳에는 황금으로 만든 궁전과 온갖 보석이 있는 아프리카의 엘도라도가 있다고.


▲ (좌) 제네 모스크 앞에서 코란을 읽는 사람들 (우) 세구 부근에서 만난 말리 아낙들
그 후 유럽의 수많은 탐험가들이 팀북투를 찾아 떠났지만 돌아오지 못했다. 1828년 4월 프랑스 탐험가 카이예(Rene Caillie)가 서양인 최초로 팀북투 땅을 밟게 된다. 그러나 그곳은 모래바람에 묻혀가는 몇 채의 허름한 사원과 진흙집뿐이었다. 찬란했던 말리왕국은 모로코에 의해 멸망했으며, 부의 중심이었던 팀북투는 철저하게 약탈당했다. 설상가상으로 니제르강의 금맥마저 바닥을 드러내고 인구도 줄어 폐도시가 되다시피 하였다.

팀북투는 말리의 수도 바마코에서 동쪽으로 약 907km 떨어져 있다. 밤늦게 도착한 팀북투는 희미한 불빛 아래 웅크리고 있는 작은 사막도시에 불과하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너무 적막하고 쓸쓸하다. 시내 변두리 모래언덕에 있는 숙소에 여장을 푼다. 불어오는 모래바람에 입안이 서걱거린다. 호텔 앞 사구에 올라보지만 어둠 속에 묻혀버린 팀북투는 방향조차 알 길 없다. 팀북투가 낳은 세계적인 뮤지션 알리 파르카 투레의 'Talking Timbuktu'를 들으며 팀북투의 첫 밤을 보낸다.

새벽 모래바람에 실려 모스크의 기도소리가 들려온다. 모스크의 새벽풍경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숙소를 나선다. 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아 길을 나선다. 길이 따로 보이지 않는다. 걸으면 길이 되는 모래밭이다. 푹푹 빠지는 모랫길이 이곳이 사하라 사막임을 일러준다.

▲ 팀북투 상코레 사원.
희미한 가로등 아래 작은 사원 하나가 보인다. 상코레(Sankore) 사원이라는 표지판이 서 있다. 사원 문은 굳게 닫혀 있고, 주변 어디에도 인적은 없다. 건물 뒤쪽 둥근 창으로 불빛이 새나온다. 용기를 내 들여다보니 푸른 옷을 입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다.

날이 밝아오자 사원 앞 골목에 있는 화덕에 불이 지펴지고 아낙은 빵을 구워낸다. 몇몇 사람들이 빵을 사기 위해 화덕으로 모여든다. 500세파(1,000원 정도)짜리 동전을 건네자 화덕에서 갓 구운 빵 5개를 담아준다. 도심 변두리 마을들은 우리의 옛 초가집을 연상시키는 움막집이다. 모래바람을 막기 위함인지 집집마다 울타리가 쳐져 있다. 마을을 몇 바퀴 둘러봐도 딱히 볼 것이 없다. 이곳이 왜 세계문화유산인지 아직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 (좌) 상코레 사원 앞, 빵을 굽는 화덕(팀북투), (우) 팀북투 부근 사막의 투아그레족의 집.
팀북투에서 제일 큰 사원인 징게르베르 사원을 찾는다. 말리왕국의 칸칸무사 왕이 건축한 사원으로, 그는 메카 성지 순례 후 돌아와서 여러 이슬람 사원을 짓기 시작한다. 팀북투의 전성기에는 이곳이 이슬람의 경제적 역할뿐만 아니라 정신적 중심지였다고 전한다. 2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훌륭한 스승 밑에서 코란은 물론이고 수학과 의학, 수사학과 논리학, 천문학 등을 공부했다고 한다. 특히 상코레 대학은 그 명성이 아랍지방까지 전해졌다고 한다.

당시 이곳에서는 얼마만큼의 장서를 갖고 있느냐가 곧 부의 척도였다고 한다. 지금도 그 전통은 이어져 이곳에서는 개인 도서관과 박물관이 아주 유명하다고 한다. 한 개인 박물관에 들어가 본다. 규모는 작지만 소장되어 있는 서적들과 생활도구들은 사막에서 문명의 꽃을 피웠던 흔적들을 그나마 느낄 수 있었다. 팀북투의 작은 골목길에는 이외에도 여러 개인 박물관과 도서관이 있다. 이곳을 방문했던 여러 탐험가들이 묵었던 집들은 기념관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들린 아흐메드 바바(Ahmed Baba)센터에는 13세기경 손으로 쓴 오래된 서적들이 형광등과 관광객들의 카메라 플래시에 노출되어 바스러져 가고 있었다.

“이 골목 골목 하나 하나, 이 작은 건물 하나 하나가 우리가 지켜 나가야 할 세계문화유산입니다.”

안내를 맡은 투아그레족 청년의 목소리에 비장함이 묻어난다. 한 줄기 모래바람이 골목을 휩쓸고 지나간다. 사하라 사막은 무서운 기세로 아프리카 땅을 집어 삼키고 있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잊혀진 도시 누란 왕국처럼 이곳 팀북투도 얼마 후면 사하라 사막의 모래 속으로 사라져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팀북투는 198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 이해선 포토저널리스트

 

 
 

 
출처 : 詩의 향기 / 무명시인을 찾아서
글쓴이 : 동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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