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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제르바이잔-1

봉들레르 2009. 9. 19. 09:46

  • 글쓴이: 오뚜기

 

 

 

 

 

           아제르바이잔  국기

 

 

 

 

 

 

공식명칭 : 아제르바이잔공화국(Republic of Azerbaijan)
인구 : 8,474,000
면적 : 86,600㎢
수도 : 바쿠
정체·의회형태 : 중앙집권공화제, 다당제, 단원제
국가원수/정부수반 : 대통령/대통령
공식 언어 : 아제르바이잔어
독립년월일 : 1991. 8. 30
화폐단위 : 마나트(manat/A.M.)
국가(國歌) : Azerbaijan! Azerbaijan!

자카프카지예 지역 동부에 있는 국가.

 

 

 

소련을 구성했던 15개 공화국 중 하나이다. 카프카스 산맥의 남동부에 있는 아제르바이잔은 북쪽으로 러시아,

서쪽으로 그루지야와 아르메니아, 남쪽으로 이란과 접해 있으며, 동쪽은 카스피 해를 끼고 있다. 아르메니아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 나히체반 자치공화국과 분쟁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주가 영토에 포함되며,

수도는 바쿠이다. 카프카스 산맥의 남동부에 있는 3개국(그루지야·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가운데 가장 동쪽에

 있으며, 아제르바이잔의 남쪽에는 이란령 아제르바이잔 지역이 있다. 면적 86,600㎢(고립영토인 나히체반 면적

 5,500㎢과 나고르노카라바흐의 분쟁지역 4,400㎢ 포함), 인구 8,474,000(2006 추계).

 

 

 

 

자연환경
 
변화가 많은 자연경관이 특색이다. 영토의 40% 이상이 저지대이며 50% 정도가 해발 400∼1,500m이다.
해발 1,500m 이상 되는 지역은 전체의 10%를 조금 넘는다. 산맥의 사면은 너도밤나무·참나무·소나무 등
으로 덮여 있다. 중부와 동부는 건조한 아열대성기후로 겨울은 온화하며 여름(4∼5개월)은 매우 덥고 길다.
 
 
 
국민
 
아제르바이잔인은 고대로부터 자카프카지예 지역에 살았던 이란인 등 기존 정착민들의 혼혈에
11세기 오구주족의 한 분파인 셀주크족이 이주해 오면서 투르크인의 혈통이 혼합되어 형성되었다.
나히체반 자치공화국은 실질적으로 모든 거주자가 아제르바이잔인들인 반면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주는 3/4 이상이 아르메니아인이다. 러시아인이 인구의 6% 정도로 소수민족 가운데 가장 많다.
 
 
 
경제
 
아제르바이잔은 1990년대초 시장경제로 전환을 선언하고 대부분의 상품가격을 자유화하고
국영기업들을 민영화했다. 반면 토지의 사유화는 더디게 진행되었다.
경작지가 전체 국토의 1/8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농산물 생산은 풍부하다. 주요 농산품은 밀·목화·
포도(포도주용)·감자·담배·차 등이다. 소비에트 정권하에서 중공업의 발전에 주력한 결과 석유
 천연 가스 산업이 크게 확대되었으며 기계·설비 제조업과 식품가공업도 주요산업으로 성장했다. 20세기
초에는 러시아제국 및 소련의 석유생산량 대부분을 담당했다. 그후 석유생산에 있어서 아제르바이잔의
 중요성은 점차 약화되었으나 아직도 카스피 해 유전에서 연간 상당량의 석유를 생산하고 있다.
전력생산의 대부분은 화력발전에 의존한다. 다양한 공업부문 가운데 에너지 산업, 제조업, 화학공업이
가장 중요하다. 아제르바이잔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인 바쿠가 공업 중심지이며, 숨가이트는 철 야금업의
요지이다. 정유업을 통해 광물성 비료, 연료, 제초제, 공업용 기름, 합성고무, 플라스틱 등의 제품이 생산
되며 경공업 제품으로는 면직물·모직물·신발류 및 기타 소비재 등이 있다. 항행이 가능한 강이 거의 없어
 대부분의 화물은 철도로 운반된다. 그러나 카스피 해 연안의 바쿠는 해항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정치·사회
 
1991년 독립 이후 대통령과 최고 소비에트 회의 의원 450명을 직접선거로 선출했다. 1992년 최고
소비에트 회의가 폐지되고 50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국가의회로 대체되었으며, 1993년에는 대통령의
권한이 강화되었다. 그러나 이 기구들은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두고 아르메니아와 전쟁을 치르면서
급속도로 약화되었고, 1990년대초에는 이 전쟁에서의 패배에 대한 국민들의 항의로 대통령들이
연이어 물러나기도 했다.
보건위생 수준은 매우 양호하여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아르메니아인들 중에는 100세 이상인
사람이 많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문맹은 대체로 퇴치되었으며 고등교육기관이 많다. 모든 교육이
무상으로 이루어진다.
 

 
역사
 
아제르바이잔은 이란령 아제르바이잔과 서로 인접해 있으며, 두 지역에 살던 사람들의 뿌리는 서로
같다. 오늘날 아제르바이잔의 주민은 원래 페르시아(이란)인이었으나 9세기에 투르크화되었다. 그후
 몇 세기 동안 이 지역을 두고 아랍·투르크·몽골·이란이 싸웠다. 수차례에 걸친 전쟁은 19세기초에
러시아인들이 이란으로부터 지금의 아제르바이잔의 대부분 지역을 빼앗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그후로 아제르바이잔은 현재 국경선을 따라 러시아와 이란 양국으로 분할되었다.
인접해 있는 그루지야와 아르메니아가 그리스도교 국가인 반면, 아제르바이잔은 주민 대부분이 터키어를
쓰는 이슬람교도라는 점에서 서로 달랐다. 1917년 10월 볼셰비키 혁명 후 아제르바이잔은 1918년 5월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으나, 1920년 4월 소비에트 적군(赤軍)의 침공으로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공화국이 되었다. 1922∼36년 자카지예프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일부였다가 1936년에 독자적인
소련의 공화국이 되었다. 1989년 10월 5일 주권을 선언했으며 1991년 8월 30일 소련이 붕괴되자 독립을
선언했다. 그해 12월 독립국가연합에 가입했으나 1992년 10월 탈퇴했다(→ 러시아와 소련의 역사).
아제르바이잔은 2가지 지리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나히체반 자치공화국은 행정적으로 아제르바이잔에
속하며 아제르바이잔인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지리적으로는 아르메니아의 좁고 긴 땅을 사이에 두고
아제르바이잔과 떨어져 있다. 한편 지리적·행정적으로 아제르바이잔에 속해 있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주
그리스도교를 믿는 아르메니아인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이례적 상황을 들어 1980년대말과 1990년대
아르메니아가 나고르노카라바흐에 대해 자국으로의 행정적 편입을 주장했으나, 아제르바이잔은 이를 받아
들이지 않았다. 그로인해 1989∼91년 이 지역에서 내전이 발발했고, 1992∼93년에는 전면전으로 번졌다.
 이 전쟁으로 아제르바이잔은 정치적 혼란과 함께 심각한 경제적 손실을 입었으며,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아르메니아군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1994년 이루어진 휴전으로 전쟁이 수그러들었으나,
사실상 분쟁의 정치적 해결에는 아무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한국과의 관계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후 1992년 3월 23일 한국과 국교를 수립했으며 북한과는 같은 해 1월 30일에 수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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