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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빛 예배당

봉들레르 2016. 10. 27. 09:54











생명의 빛 예배당 내부 Ⓒ건축사진가 김용관


빛 속에 나무가 둥둥 끈 집

생명의 빛 예배당

건축과 가장 비슷해 보이는 예술은 당연히 미술, 그중에서도 3차원 조형물을 만드는 조소다.

본질적으로 건축은 사람이 들어가 사용하는 기능이 우선이고,

조소는 기능적 쓸모가 아니라 예술성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다른 분야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작품의 용도와 목적을 떠나 ‘감동’을 지향하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작품이 입체라는 점에서 두 장르는 무척 닮아 보인다.

건축만의 매력-안과 밖의 반전

하지만 작품으로서의 건축과 조소는 작품의 크기 문제를 넘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건축물에는 조소 작품에는 없는 ‘내부’가 있다는 점이다.

건축은 바깥에서 보이는 외관 못잖게, 아니 그 이상으로 사람들이 들어가 활동하는 내부 ‘공간’이 중요하다.

그래서 건축 디자인은 안과 밖 모두를 아우르는 2중 작업이자 두 가지 결과물을 창조하는 일이다.

내면과 외면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은 곧 건축만의 특징이자 건축 디자인의 최고 매력이다.

그래서 건축가들은 사람들이 매력적인 외부, 그리고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내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넓은 실내가 있는 건물이라면 일부러 입구를 좁게 만들어 내부를 숨긴 다음 갑자기 공간이 나타나게 만들기도 하고,

가장 핵심이 되는 공간으로 이르는 동선을 최대한 호기심과 긴장감을 고조시키도록 배치하기도 한다.

생명의 빛 예배당 건축물 외부. 건물 외관은 플라스틱 소재인 폴리카보네이트로 덮여 있다. Ⓒ건축사진가 김용관

경기도 가평 설악면 설곡리 숲 속에 조용히 들어선 남서울은혜교회 선교센터 안에 있는 ‘생명의 빛 예배당’은

안과 밖이 있어 건축에만 있는 ‘반전의 매력’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다.

해외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 은퇴한 선교사들을 위한 숙소인 센터 자체는 콘도나 호텔처럼 여러 방들이 줄지어 있는 건물인데,

유리가 아니라 플라스틱 소재인 폴리카보네이트로 외관을 덮어 가벼우면서도 알맞게 투명한 느낌을 준다.

선교사들을 위한 건물이니 기도하고 예배도 드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내부에는 300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예배당이 지어졌다.

이 예배당이 바로 반전을 일으키는, 일반 예배 공간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뜨리는 내부 공간이다.

집 안의 집-빛 속에 돔을 이루는 나무의 성전

 

예배당 중심에 있는 원형 수조와 십자가 Ⓒ건축사진가 김용관

예배당이 있는 3층에 이르면, 콘크리트 건물 안에 갑자기 나무 기둥들이 모여 있는 독특한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나무로 지은 이글루 같은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나무와 빛이 만들어내는 특별한 내부가 펼쳐진다.

공을 반으로 자른 모습의 반구형 내부는 오로지 나무뿐,

그리고 그 동그란 천장이자 벽인 원구형 나무 구조체 안에 또 다른 원들이 존재한다.

정확히 원을 이루는 내부 중심에는 물을 담은 동그란 원형 수조가 있고, 그 물속에서 자코메티의 조각처럼 가는 쇠 십자가가 서 있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면 커다란 반구 지붕 표면에도 원들이 한 번 더 패여 있거나, 원형으로 뚫린 구멍이 있다.

껍데기만 벗긴 묵직한 나무 기둥들은 하늘에 매달려 지붕을 만들고, 나무 기둥 사이로 빛들이 쏟아진다.

폴리카보네이트 외관만 봤을 때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집 안의 집’이다.

기독교 건축에선 작아서 더 묘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공간들이 있다.

이른바 경당 또는 기도실 건물인데, 작은 건물이기 때문에 디자인 의도가 더욱 두드러지고

건축에서 감동을 만들어내는 핵심 요소인 ‘빛’의 효과가 극대화된 건축이다.

생명의 빛 예배당은 지금까지 한국에선 보기 어려웠던 ‘작은 종교 건축’을 시도한 사례다.

이 독특한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는 신형철 그르노블대 교수다.

6살에 프랑스로 건너가 성장한 그는 이 작품으로 자기 이름을 고국 건축계에 알렸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그가 한국에서 작품을 설계하게 된 것은 그의 아버지와 건축주인 홍정길 목사의 인연 덕분이었다.

어머니를 위해 기증한 나무, 과연 어떤 건축으로 풀어낼 것인가

홍 목사가 신 교수에게 예배당 설계를 의뢰하면서 부탁한 조건은 한 가지였다.

건축 자재로 러시아산 홍송을 활용해달라는 부탁이었다.

홍 목사에게 뜻밖의 홍송이 생기게 된 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었다. 우연히 알게 된 한 목재 사업가가 나무를 기증한 것이었다.

러시아에서 사업을 하는 그는 평생 바깥으로 나돈 자신을 위해 기도한 어머니를 위해 예배당을 짓는데 써달라며 원목을 기증했다.

예배당 설계는 이 나무를 어떻게 건축으로 풀어낼 것인가를 연구하는 것으로 출발했다.

나무를 보면 누구나 통나무집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다.

통나무집은 가장 원시적인 구조지만 특유의 거칠면서도 매력적인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건축가는 통나무집 형식에 마음이 끌리지 않았고, 그런 분위기를 넘어서는 새로운 방식을 고민했다.

러시아까지 직접 방문하고 여러 목재 시설을 찾아다니면서 건축가는 ‘통나무집과 반대가 되는 건축은 무엇일까?’를 궁리했다.

나무를 수직으로 세워 건축물 내부에 사용하였다. Ⓒ건축사진가 김용관


통나무집과 다르면서도 나무의 특성을 잘 살리는 방법으로 찾아낸 디자인 해법은 ‘수직’이었다.

일반적으로 나무는 수평, 곧 옆으로 뉘어 쌓는다. 건축가는 반대로 나무를 세우기로 했다.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은 물론 나무가 살아있던 때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의미도 있었다.

수직으로 선 나무가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된다는 개념도 더해졌다.

자연스럽게 예배당 위치는 하늘에서 내리는 빛을 받는 맨 위층인 3층으로 올라갔다.

예배당의 내부 공간 형태는 돔으로 정해졌다.

절대 기하학적 형태인 원은 ‘세상’을 의미하는 오랜 상징이자, 기독교 건축에서 익숙한 형태다.

나무를 수직으로 세우고, 그 아래쪽을 돔 모양으로 파내 내부를 만드는 정확한 원구형 돔, 예배당의 콘셉트는 이렇게 확정됐다.

규모의 미학-알맞은 사이즈가 만들어내는 공간의 매력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규모’의 문제였다. 건축에서 규모는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공간의 크기가 용도에 알맞은 규모일 때 감동과 매력이 커지는 법이다.

건축가는 처음부터 예배당을 크게 짓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신 교수가 볼 때 가장 알맞은 규모는 300명 정도를 수용하는 크기였고, 그의 뜻대로 예배당은 350석 규모로 지어졌다.


3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원형 공간. Ⓒ건축사진가 김용관

실내를 원형 공간으로 한 데에는 종교적 상징 의미 외에도 한 가지 의미가 더 있었다.

예배당이 모인 이들이 서로 보고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원형이어서 옆 사람도 보이고 앞 사람도 보이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 것이었다.

실내가 원형인 데에는 기존 개신교 공간들이 너무 목사의 권위를 강조해 앞쪽으로만 강조되는 공간을 피한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

원형으로 이런 고정관념을 깨면서 중심부에는 자연스럽게 십자가를 배치했다.

서구의 오랜 종교 건축 역사에서 내부 공간이 반원형인 곳은 드물지 않지만 완벽한 원형인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생명의 빛 예배당은 의외로 매우 특별한 사례다.

실로 까다로운 공사 과정-구조공학의 매력으로

하지만 나무 아래쪽을 돔 모양으로 잘라내 공간을 만든다는 이 단순해 보이는 공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공사에 쓰인 원목의 숫자는 모두 834개. 이 중에서 바닥과 연결되어 기둥 역할을 하는 나무가 192개이고,

나머지 600여 개는 모두 허공에 매달린 것들이다.

이 나무들을 매단 상태에서 원형 공간 모양대로 자르는 것은 어려웠기 때문에,

미리 절단면을 정해서 아래쪽을 잘라낸 뒤 매다는 방식으로 진행해야 했다.

각 기둥들의 절단면이 매끄럽게 원형으로 이어지도록 기둥 하나하나마다 모두 따로 위치와 높이를 정하고 절단 각도를 지정해줘야 했다.

이 나무 기둥별 개별 도면을 그리는 데 건축가는 3년 가까운 시간을 들였고, 그린 도면은 모두 합치면 수천 장에 이를 정도였다.


약 600여 개의 원목들은 가는 철로 지탱되어 허공에 매달려 있다. Ⓒ건축사진가 김용관


더 큰 어려움은 둔중한 나무 기둥들이 공중에 안전하게 매달리게 하는 구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선 적합한 업체가 없어 건축가는 독일의 유명 구조 업체인 ‘볼링거 앤 그로만’을 찾아갔다.

일본의 유명 건축가 SANAA의 대표작인 ‘롤렉스 교육센터’,

거대한 지붕이 거의 기둥 없이 허공에 떠 있는 부산 ‘영화의 전당’ 등의 구조설계를 했던 회사다.

뜻밖에도 새로운 구조 방식에 흥미를 느낀 업체 쪽에선 “꼭 우리가 해보고 싶다”고 선뜻 받아들였다.

최고 수준의 업체가 참여하면서 하늘에 나무가 떠 있는 디자인은 비로소 해결됐다.

공중에 배치되는 나무들을 얇고 가는 철 구조가 위와 아래 양쪽에서 잡아주는 구조다.

조금이라도 각도가 틀어지면 안 되기 때문에 매달았다가 다시 떼어내 조정하는 작업이 반복된 끝에

빛이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돔 천장이 완성됐다.

빛 속에 뜬 나무, 중력을 거스르는 쾌감

건축가가 스스로 규정한 이 예배당의 열쇳말은 ‘빛의 중력’이다.

빛은 무게가 없기에 중력과는 연결되지 않아 보이는 요소다.

기독교에서 ‘말씀’의 상징인 빛 속에서 땅에 뿌리박혀 있는 게 정상인 나무가 중력의 법칙을 뛰어넘어 공중에 떠오른다.

빛과 나무가 하나가 되어 건축의 몸통을 만들고, 그 모습 자체로 종교 공간의 특성인 감동을 구현하는 것이 설계의 요체였다고 건축가는 설명한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과 나무가 어우러진 원형 천정 Ⓒ건축사진가 김용관


나무 돔의 디자인은 큰 원구에 작은 다른 원구들이 붙은 모습이다.

전체 지붕이 되는 큰 원구가 있고, 그 표면에 다시 움푹 팬 작은 원구가 있고,

아예 구멍으로 처리해 빛이 들어오는 원이 또 있고,

원 모양의 입구 3개에 벽 모퉁이 네 곳에도 원구형으로 한번 파낸 공간이 들어가 모두 12개의 요소가 돔에 더해졌다.

물론 이 12라는 숫자는 기독교의 12제자와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한다.

생명의 빛 예배당은 여러 면에서 흥미롭고 인상적인 건축이다.

어머니를 위한 아들의 기부 이야기가 건물 속에 담겼고, 젊은 건축가의 과감한 시도가 새로운 디자인으로 구현된 돋보이는 데뷔작이다.

산업 재료인 폴리카보네이트가 투과한 빛과 그 속에서 자연재료인 나무 구조체가 다시 한 번 새롭게 빛을 연출하는 특별한 분위기,

중력을 뛰어넘는 나무 지붕의 긴장감과 알맞은 규모의 공간이 주는 포근함이 공존한다.

종교 건축 최고의 특성인 빛의 감동을 추구한 이 예배당은 설과 추석 연휴에만 문을 닫을 뿐 언제나 방문객을 위해 문을 열고 있고

매주 일요일 오전 예배에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글   구본준 | 건축 칼럼니스트, 한겨레 기자
건축물 안내
  • 건축명 생명의 빛 예배당
  • 주소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설곡리 105-4,
  • 면적 선교센터 면적 4109㎡(1,243평), 예배당 면적 350㎡(106평), 돔 높이 12.5m.
  • 건축가 신형철(http://www.shinslab.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