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린이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은 까다로운 도시 건축법 덕분이다.
집을 짓는 것은 물론 수리나 개조를 할 때에도 철저히 시의 통제를 받는다.
도로 포장도 아스팔트 대신 단단한 돌을 깔았다. 삭막한 아스팔트와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미로 같은 도시의 골목길을 하루 종일 걸으면 중세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짧은 다리라는 이름의 ‘뤼히케 얄그(Lühike Jalg) 거리
짧은 다리라는 이름의 ‘뤼히케 얄그(Lühike Jalg) 거리 그리고 긴 다리라는 뜻의 ‘픽 얄그(Pikk Jalg)가 있다
이 재미있는 이름의 두 거리는 고지대에서 저지대를 이어주는 골목 두 개를 일컫는다.
저지대에서 고지대로 올라갈 때는 ‘짧은 다리’, 반대로 내려갈 때는 ‘긴 다리’를 사용해서 내려오면 골목길의 정취를 한껏 더 느낄 수 있다.
뤼히케 얄그는 일반인들이 주로 이용했고 픽얄그는 긴다리라는 의미로 귀족들을 위한 통로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올라 있는 탈린의 구시가는 규모가 크지 않아 도보로 몇 시간이면 돌아볼 수 있다.
하지만 도시의 '미세 혈관'인 골목골목까지 찬찬히 뜯어보려면 하루해가 짧기만 하다.
옛 시가지는 크게 고지대와 저지대로 구분할 수 있다. 높이의 차이는 곧 신분의 차이였다.
고지대에는 주로 영주와 귀족 등이, 저지대에는 상인과 일반인들이 거주했다.
이곳은 두개의 골목으로 연결돼 있다. 짧은 다리라는 뜻의 뤼히케 얄그(Luhike Jalg)와 긴 다리라는 의미의 픽 얄그(Pikk Jalg) 거리다.
지체 높은 양반들이 주로 드나들던 정치 및 행정 기관이나 각국의 대사관 등은 당연히 고지대에 자리를 틀었다.
고지대 중심에는 톰페아 언덕이 있다. '최고봉'이라는 뜻에 걸맞지 않게 높이는 해발 40m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도시 전체가 낮게 엎드린 탈린에서 이 정도면 고도 차이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톰페아 언덕에는 신화 한 토막이 똬리를 틀고 있다.
에스토니아를 건국한 거인 칼렙의 아내 린다는 남편이 세상을 등지자 그의 무덤을 표시하기 위해
엄청나게 크고 무거운 돌을 산 위로 옮기고자 했다. 하지만 돌이 너무나 무거운 나머지 가는 도중 바닷가 근처에 떨어뜨리고 만다.
그 돌이 떨어진 자리가 지금의 톰페아 언덕이 됐고, 슬픔에 잠긴 아내가 흘린 눈물이 윌레미스테 호수가 됐다는 것이다.
언덕에는 13~14세기에 걸쳐 성과 성벽이 건설됐다. 한때 성곽의 길이는 4km에 달했으며,
원뿔 모양의 탑이 46개나 세워졌다. 지금은 약 1.9km의 성벽에 26개의 탑이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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