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Estonia(2016 Jul)

5-10 귀족들이 살던 톰페아(Toompea)의 성곽까페

봉들레르 2016. 9. 1. 07:48


도시 전체를 보려면 톰페아 성곽 지대로 올라가야 한다. 

워낙 전망이 좋아 예전엔 귀족들의 주거지로 사용됐던 곳이다.

1219년 덴마크 왕은 치열한 전투 후 이곳에 상륙하여 원주민이 세운 목각성채를 접수하고 언덕에 요새를 설치하였다

그래서 성곽앞에 있는 화단과 공터부분을 덴마크 왕의 정원이라고 부른다.

 

성곽 길이만 4㎞. 지친 여행자들은 성곽 끄트머리의 카페에서 도시를 조망하며 커피를 마신다.

성곽으로 올라가는 계단

  음식값과 숙박비도 싸다.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인근 스웨덴이나 핀란드에 비하면 거의 절반 수준이다.

 

Tallitorni Kohvik. Tornwall Tower Cafe


 

 

 


타원형의 망루는 "Kiek in de Kok"이라는 탑인데 독일  북서부지방 말로 "부엌을 들여다보라"는 뜻으로

망루에 오르면 남의 집 부엌이 보일만큼 높다는 데서 나온 이름이다.

지금은 중세시대 박물관으로 탑위에 오르면 카페가 있다

가운데 사각형 성탑은 처녀의 탑(Maiden's tower)이라고 불리는 네이트시트론으로 중세시대 매춘부를 수감하던 곳이다.

http://linnamuuseum.ee/kok/en/

 

 

 

 

 

 

 

 

 




 







 

 

나선형의 좁은 돌계단을 쇠사슬에 의지해서 내려가기가 힘들다

 

한밤중에 수도사 복장의 유령이 나타났다고 해서 세워진 동상

 









탈린의 풍광은 아름답지만 역사는 고단하다. 에스토니아는 러시아로부터 많은 피해를 받았다.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와 함께 발트해 3국. 같은 이름으로 묶였지만

에스토니아는 핀란드계, 라트비아는 독일계, 리투아니아는 폴란드계로 문화, 언어, 종교가 다르다.

강대국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많은 시련을 겪었다는 것이 이 세 나라의 공통점이다.

특히 에스토니아는 제정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18세기, 러시아가 유럽으로 침공하는 교두보가 되어야 했다.

서쪽으로 진격하던 러시아는 발트해와 핀란드만을 접수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가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들 북유럽 국가는 발트해 3국을 러시아로부터 독립시키기 위해 지원했다.

특히 유럽과 가까이 접하고 있는 에스토니아가 가장 많은 지원을 받았다.

발트해 3국은 1918년 자유를 얻었지만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1940년 다시 소련 연방에 편입됐다.

결국 에스토니아가 독립한 것은 1991년에 이르러서였다.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소련 연방이 해체된 덕분이었다.

독립 직후의 에스토니아는 심각한 경제난을 겪어야 했다. 겨울철 난방유가 없어 산에 올라가 나무를 벨 정도였다.

노점상들은 레닌·스탈린과 관련된 책과 그림을 내다팔았다.

에스토니아는 급격히 변하고 있다. 현재 에스토니아의 목표는 기술정보(IT) 강국이 되는 것이다.

전 산업역량을 IT에 투자하고 있다. IT라는 첨단용어와 어울리지 않게 수도 탈린은 여전히 중세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빨간 지붕과 수도원, 돌이 깔린 골목길…. 호수와 푸른 숲, 중세가 어우러진 탈린은 아직까지 빛이 바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