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밭
피사는 토스카나주의 주도로 티레니아해에 접한 항만도시.
11~13세기에는 베네치아, 제노바, 아말피와 동등히 지중해 상업권으로 권세를 자랑한 4대 해양 공화국의 하나였다.
13세기 무렵부터 이 아르노강을 중심으로 푹카와 피렌체 간의 충돌도 있었지만 1509년에는 메디치가에 의해서 정복되었다.
‘피사’하면 생각나는 상징물 중 하나는 금세 쓰러질 듯 심하게 기운 ‘피사의 사탑’이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싶은 명소로 꼽는 곳이기도 하다. 사탑 주변에 주요 명소가 모여 있다.
마치 잠시 후라도 무너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기울어져 있는 탑으로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이자 전 세계 사람들을 피사로 불러들이는 이유다.
12~13세기에 걸쳐 부나노 피사노(Bunano Pisano)와 지오반니 디 시모네(Giovanni di Simone)가 건설한 것으로
높이 55m, 무게 14,453t로 297개의 계단이 있다.
탑은 특히 피사대학에 재학 중이던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낙하실험을 한 것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1964년 이탈리아 정부는 피사의 사탑 붕괴를 막기 위해 세계에 지원을 요청했고 경사각을 수정하기 위한 공사가 진행되었다.
1990년 안전상의 이유로 공개가 금지되었다가 10년 후인 2001년 일반인에게 다시 공개하기 시작했다.
피사의 사탑은 더 이상 기울어지지 않고 현재의 모습으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
피사는 사탑만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매년 6월16일에는 70000개의 캔들이 아르노 강가의 건물을 라이트 업하는 환상적인 ‘루미나라(Luminara)',
6월 마지막 일요일에는 중세부터 계속되어 오고 있는 유서있는 축제 ’죠코 델 폰테(Gioco del Ponte)'가
개최되어 피사에서 제일 활기찬 기간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더운 여름 철에는 CPT로 약 25분 거리에 있는 마리나 디 피사로 일광욕이나 해수욕을 즐길 수 있고
같은 CPT로 약 20~3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비코피사노(Vicopisano)나 칼치(Calci),
전철로 약 25분 정도의 룩카(Lucca)라고 하는 근교의 마을 등도 전망이 멋지다.
버스에서 내려 미니열차를 타고
내려서
조금 걸어가니 사탑이 보인다.
이탈리아 피사 두오모 성당 옆 피사의 사탑 앞에서 관광객들이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피사의 사탑은 1173년 설립 당시부터 지반 침하 작용으로 인해 기울기 시작했다고 전해지며
현재도 기울고 있어서 전 세계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피사는 피사의 사탑만이 집중조명을 받고 있지만 피사대학의 의학도였던 갈릴레이가
여러 과학 및 수학 실험을 행하던 곳으로 유명하며 과학과 수학에 있어서는 현재 이탈리아에서 손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두오모’ Duomo di Pisa
사탑에만 정신을 빼앗기는 건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운 피사의 대성당
1063년 팔레르모해에서 사라센 함대를 물리친 것을 기념해 성모마리아에게 바치는 이 대성당의 건축은 시작되었다.
1068년 건축가 부스케토(Buscheto)가 지휘를 맡아 12세기가 되면서 라이나르드라는 건축가에게 인계된다.
원주가 완성된 것은 14세기가 되고 나서였다.
위에서 바라보면 라틴 십자의 형태를 한 이 대성당은 깊이 95미터, 폭 32미터에 이르는
피사 로마네스크 양식의 최고 걸작으로 불리고 있다.
내부는 68개의 원주가 촘촘히 세워져 있고 5개 회랑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 원주의 상당수는 팔레모의 고대 유적으로부터 전리품으로부터 옮겨진 것이라고도 하는데
내장에는 비잔틴 양식의 영향이나 이슬람의 영향 등 여러 가지 스타일이 융합되어있다.
성당의 내부는 흰색과 검은색 줄무늬로 장식되어 다른 성당과 달리 밝은 분위기가 난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정면의 대벽화가 인상적이며
설교단은 1302년부터 11년에 걸쳐 만들어진 이탈리아 고딕 조각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세계당의 설교단을 만든 니콜라피서노의 아들 죠반니작. 8매의 패널을 6개의 원주와
인물상이 조각되어있는 5개의 기둥이 지탱하는 구조가 되고 있어
중앙의 기둥에는 신앙, 희망, 자애를 나타내는 의인상이 조각되어 있다.
패널에는 성서의 장면이 부조로 새겨져 그 주제는 ‘세례자 요한의 탄생’,
‘수태고지’, ‘마리아의 엘리자베스 방문’, ‘그리스도 탄생’, ‘그리스도의 공헌’,
‘신전 봉헌’, ‘영아 학살’, ‘수난’, ‘책형’, ‘마지막 심판’ 등이다.
1매의 패널에 여러 장면을 표현되어 인물의 움직임이나 격렬함을 느낄 수 있다.
갈릴레이가 제단 천정에 있는 구리램프를 보고 진자의 법칙을 발견한 것으로 유명하다.
'피사의 사탑' Torre di Pisa (Leaning Tower)
피사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리석의 탑으로 대성당의 종루로서 1173년에 착공,
건설 첫 공사 기간 중 탑은 지반 침하로 인하여 기울어졌다는 것이 판명되어
공사는 제2공사기간/제3공사기간으로 간격을 두고 진행되었다.
(착공으로부터 실로 199년의 세월이 지난 1372년에 완성).
하지만 그 기울기를 수정하지 못하고 그대로 54미터의 탑이 되었다.
갈릴레이가 공을 떨어뜨린 것은 지어낸 이야기
갈릴레이가 피사의 사탑을 사용해 ‘낙하의 법칙’을 발견한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기운 피사의 사탑의 정상으로부터 크기가 다른 2개의 구를 동시에 떨어뜨려 동시에 지면에 떨어졌다는 이야기다.
물체가 낙하할 때의 시간은 그 물체의 질량에 의존하지 않고 일정하다는 걸 증명했지만
실은 이 일화는 제자 빈센조 비비아니(Vincenzo Viviani)의 창작으로 실제로는 다른 방법으로 증명했다고 말해지고 있다.
기울어진 레일을 준비하여 그 레일 위를 크기가 같고 무게가 다른 구를 굴렸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에서는 물체는 무거운 정도만큼 빨리 낙하한다고 여겨지고 있었다.
기울어진 사탑을 바로 세우기 위해 손으로 밀어보고
머리로 받쳐보고
등으로 기댔다.
양쪽에서 균형을 잡는다.
반드시 봐야 할 파자타(건물의 앞면)
라이나르드의 설계에 의한 최하층부에는 블라인드 아케이드가 서있는데
이는 피사 로마네스크 양식의 특징이기도 한 능형 모양으로 장식되어있다.
외관 전면에는 무수한 아치가 5계단에 걸쳐 나란히 서있고 2계단째부터
위로는 그 아치와 아치를 지지하는 것 같이 우아한 기둥이 있지만
실제로 이러한 기둥은 장식이며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 무수한 기둥이 건물 전체에 경쾌함을 주어 건물 전체에 레이스를 펼친 것 같은 우아함을 주고 있다.
이것이 피사 로마네스크 양식의 제일 큰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종루에는 각각 다른 음계를 가진 7개의 종이 걸려있다.
탑내부는 나선형으로 된 294개의 계단을 통해 종루까지 올라갈 수 있다
매점에서 파는 음료수병도 사탑을 닮았다.
사탑앞에 레스토랑
커피잔과 피사사탑
여러자연현상을 설명할 수있는 피보나치수열을 발견한
leonardo fibonacci는 피사에서 태어났다
땅거미가 질 때에 미니기차로 갔다.
미니기차로 피사를 돌아본다.
투어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피렌체 숙소로 돌아와서 와인 치즈 컵라면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짓다가 기울어지기 시작해 100년 가까이 공사 중단
1173년 8월 9일 건축가 보나노 피사노의 설계 아래(실질적인 건축은 디오티살비가 담당했다는 설도 있다) 종루 건립에 착공했지만
불과 2층을 다 올리기도 전에 종루는 한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5년만에 건설 공사는 2층을 올리다 만 형태로 중단되었다(제1공기: 1173-1178년).
이후 어떻게 기울어짐을 극복하여 공사를 재개할 것인지에 대해 갑론을박이 난무하고 당대 이탈리아의 유명한 건축가들이 논쟁에 뛰어들었다.
그렇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은 것도 있고, 피사 공화국이 제노바 공화국, 루카 공화국, 피렌체 공화국으로부터 난타당하고 있어
나라 사정이 어려웠던 것도 있어서 공사는 100년 가까이 중단되었고 종루는 2층을 올리다 만 형태로 방치되어 있었다.
1272년 건축가 조반니 디 시모네가 나서 마침내 공사는 94년만에 재개되었다.
조반니 디 시모네는 기울어진 쪽을 길게 하고 반대쪽을 짧게 하는 방식으로
인위적으로 윗층을 지면에 수직으로 조정하는 방식으로 종루를 쌓아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본질적인 문제인 지반의 부등 침하를 어떻게 하지 않고 종루를 올려나갔으므로 하중만 더해져
'피사의 사탑'은 기울어지다 못해 탑이 비틀려 회전하기까지 했다. 공사는 6년만에 다시 중단되었다(제2공기: 1272-1278년).
◆피사의 국력 쇠퇴, 애초 설계 무시하고 7층으로 완공 선언
그 사이에 피사 공화국은 1284년 제노바 공화국과 코르시카와 사르데냐를 두고 다투다
멜로리아 해전에서 궤멸적인 손실을 입으며 국세가 완전히 주저앉고 말았다.
한때 제노바·베네치아·아말피와 함께 이탈리아의 4대 해양 도시 국가라는 지위를 얻기도 했었으나,
이제 그런 영광으로부터 완전히 탈락해 버릴 정도의 치명적 타격이었다.
기울어가는 사탑만큼이나 피사의 국세도 기울어가던 1319년, 토마소 디 안드레아 피사노라는 건축가가 나섰다.
애초 1173년에 착공할 때에는 훨씬 높은 종루를 건설할 계획으로 있었지만,
이렇게 탑은 기울고 나라 사정도 어려워진 마당에 146년이나 지난 애초의 계획이나 설계 따위는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토마소 디 안드레아 피사노는 그 때까지 건설되어 있던 탑의 꼭대기에 종전의 기울기를 무시하고
지면과 수직이 되게끔 7층을 얹어버린 뒤 완공을 선언해버렸다. 지금도 피사의 사탑의 꼭대기만 지면과 수직인 이유이다.
그 사이에 유럽의 건축 유행이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고딕 양식으로 바뀔 정도로 오랜 세월이 흐른터라 최상층만 고딕 양식으로 얹어졌다.
애초의 기능인 종루에 맞도록 사탑에 종이 장착되어 최종 완공된 것은 1372년의 일이다.
한편 UAE의 아부다비에 있는 캐피털 게이트 빌딩은 18도의 기울기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지만,
피사의 사탑과 달리 이쪽은 애초부터 경사지게 기울여 건설할 목적으로 착공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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