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Czech(2013.Aug)

3-8 괴테 '유럽의 발코니'- 드레스덴

봉들레르 2013. 9. 8. 23:37

 

 

 

'독일의 피렌체'라 일컬어지는 우아하고 매력적인 옛 동독 작센주 내 작은 도시 드레스덴.

도시 곳곳에 있는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의 건물들이 드레스덴의 화려했지만 어두웠던 역사를 동시에 보여준다.

작센 선제후(選帝侯)의 예술에 관한 애정으로 드레스덴의 건물은 독일의 보석이라고 불릴 만큼 아름답다. 

츠빙거 궁전, 젬퍼 오페라 등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건물은 독일의 문화적 자부심을 확인하는 듯

 특유의 화려함과 웅장함을 자랑한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융단폭격으로

시민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도시 내 주요 건물이 파괴되었다.

그러나 통일 후 독일 정부와 시민의 노력으로 대부분 건물은 예전의 멋진 모습을 되찾았고,

최근 드레스덴은 문화는 물론 유럽의 학문과 과학을 선도하는 비즈니스 도시로 떠오르고 있다.

 

 

 

 

 

 

 

 

 

 

       

 

     

 

 

 

 

 

 

 

레지덴츠

 

독일도시이자 작센주의 주도로 엘베강 연안의 마이센피르나의 중간, 베를린 남쪽 약 189km 지점에 위치하여,

 엘베강에 의해서 좌안의 구시가와 우안의 신시가로 나뉘며, 7개의 교량에 의해서 연결되어 있다.

래 슬라브 취락지대로 슬라브어로 숲속의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과거에 도시 곳곳에 세워졌던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과 예술품들 덕분에 '독일의 피렌체'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도시로,

 1711∼1722년에 건립된 바로크 양식의 츠빙거 궁전을 비롯하여 수많은 궁전들과 드레스덴 미술관 등

유명한 건축물과 회화 등 많은 문화재가 있고,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과 건축가 고트프리트 젬퍼의 이름을 딴

젬퍼오퍼(Semperoper)라는 오페라극장 등이 있어 예술의 도시, 음악의 도시로서 알려져 있다.


현재 독일 남동부에 있어서의 경제·교통·문화의 중심 도시이며, 항공기 제조, 정밀 광학기기·기계·화학·담배 등 각종 공업이 발달되어 있다.

 또 도기로도 알려져 있며 1875년에 창설된 공과대학과 조형미술·음악·교통·의학 등의 대학이 있고,

도서관·방송국·박물관 등의 문화 시설도 잘 정비되어 있으며, 특히 베버, 실러, 슈트라우스 등과도 연고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앞서 위에 언급대로 본래 슬라브족의 취락지대였으나 게르만의 식민에 의하여 1200년 이전에 성이 구축되고,

 1206년에 도시가 되었고 이후 마이센 변경백인 하인리히가 거성울 구축했다.

허나 그가 죽은 후 보헤미아령, 브란덴부르크령으로 전전하다가 14세기 초에야 다시 마이센 변경백령으로 복귀했다.


15세기 후반 마이센 변경백의 베팅가문이 분열하였을 때, 드레스덴은 알베르트계 베팅가에 속하고,

 17세기에 베팅가가 작센 선거후의 위치를 굳혔기 때문에 그 수도가 되었다.

그 무렵 1600년대 신성 로마 제국내에서 발생한 30년 전쟁과 1685년의 대화재 등으로

도시 전체가 파괴되거나 전소되자 도시 주위에 성벽을 구축하고,

18세기에 이르러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와 2세가 각종 문화시설을 정비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을 세우면서 독일 유수의 도시로 만들려고 했다.


허나 7년 전쟁 때 작센이 오스트리아에 가담하였기 때문에 프로이센군의 포격을 받아 도시는 파괴되었다.

 이후 나폴레옹 전쟁 때 작센이 프랑스와 동맹을 맺은 계기로 나폴레옹이 이 도시를 작전기지로 삼고 동맹군과 싸웠기 때문에 적지 않은 손상을 입었다.

이후 19세기에 들어 산업화로 인한 경제 붐이 일어나면서 초기 단계의 기계 엔지니어링, 자동차, 항공, 카메라, 초콜릿 산업 등이 발달하기 시작,

1945년 이전 드레스덴은 독일의 주요 도시 중 가장 활발한 산업도시 역할을 했다.


세계 2차 대전이 시작된 후 드레스덴은 독일의 다른 도시들과 달리 후방에 위치해 큰 피해를 입지 않았으나

 전쟁이 끝나갈 무렵인 1945년 2월 14일 영국군의 폭격(드레스덴 폭격)으로

수많은 고 건축물들과 공장시설이 파괴되는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고 종전 후 동독령으로 들어가면서

전쟁보상으로 주요 공장들이 해체되고, 기업들은 본사를 서독으로 이전했다. 그나마 많은 숙련된 전문 인력들은 동독에 남았다.


이후 도시의 고 건축물에 대한 복구 작업을 진행하기 시작했고, 독일이 통일되면서 구시가지의 복구 작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태다.

 1726~1743년에 세워졌다가 1945년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성모 교회(Frauenkirche, 프라우엔키르헤)가 1993년부터 복원에 착수해 2

005년에 준공되어 다시 축성된 사례가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