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Montenegro,Bosnia(2011,Aug)

11-6 Sarajevo oldtown

봉들레르 2011. 11. 11. 17:35


 사라예보는 16세기 오토만 터어키 지배 시대에는 발칸에서 이스탄불 다음으로 크고 중요한 도시였으며,

통계에 의하면 1838년도에 전 유고 슬라비아(지금 세르비아)수도인 베오그라드가 3만 인구였는데, 당시 사라예보는 8만 인구였다.

1851년도에 현재 크로아티아의 수도인 자그레브가 만사천이었다니, 당시에 이름이 났던 곳이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겠다.
사라예보에 와 보면 서유럽의 거대도시처럼 웅장한 건물 자랑거리는 거의 없다.

오토만 터어키 지배 415년간 (1483년에서 1878년)의 지배를 통한 이슬람 문화

그리고 40년간 (1878년에서 1918년)의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통한 캐톨릭과

또한 발칸 지역의 동방정교회의 기독교 문화가 어우러져 만들어낸 독특한 문화를 그려내고 있다.
이곳은 서유럽에서 또한 지중해에서도 느끼기 힘든 독특한 느낌을 받는 곳으로 정말 특이하며

골목골목을 며칠간 거닐면서 구경하고 싶어진다.

사라예보 역내

사라예보에서는 숙박없이 가방을 맡기고 시내를 관광한 후에 밤기차를 이용하여 다시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로 갈 생각이다.

역내를 찍고있는데 직원이 쫓아오더니 찍지말란다. 무슨 비밀이라고

우선 사라예보에서 자그레브가는 기차표를 예매하였다.

아무리 짐을 보관하는 장소를 찾아도 없어서 역승무원에게 부탁을 해 매표소 안에다 맡겼다. 물론 유료다.

역전면에 카페

위성으로 본 사라예보는 산꼭대기로 둘러싸인 특이한 지형의 분지로 되어있다.. 

1984년 유고연방의 수도였던 이곳에선 제14회 동계올림픽을

 비동맹국의 맹주 격인 유고가 개최하고 동유럽에서는 처음 열린 올림픽이였다

그로부터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유고연방은 내전으로 갈가리 찢겼다.

 종교와 민족을 초월해 '하나의 국가'를 표방했던 유고는 그 제창자인 티토 대통령이 죽자 사실상 8개 독립국가로 나뉘어버렸다.

그 과정에서 20만명 가깝게 죽었으며, 250만명이 넘는 난민이 발생했고, 2만명이 넘는 이슬람계 보스니아 여성이 강간당했다.

거대한 공동묘지로 변한 사라예보 동계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 주변.

사라예보의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 주변 녹지와 체육시설은 모두 묘지로 변했다.

지금 그곳에는 이슬람 특유의 가늘고 긴 묘비를 앞세운 무덤 8000여 개가 늘어서 있다.

좁은 분지인 사라예보 시 외곽의 언덕에서 세르비아군이 포격과 조준 사격을 하는 바람에

너무나 많은 사상자가 발생해 '평화의 제전'이 치러진 장소가 공동묘지로 변하고 말았다 

역앞 광장

기차역 좌측에는 우체국이 있고 버스터미널이 있다.

가장 눈낄을 끄는 건물이 꼭 아이스바 모양이다.

 Avaz Twist Tower 는 Sarajevo 신문사 사옥이다.

 

역전면

 

 

역앞 메트로

보스니아에서는 영어가 잘 안통해서 손짓발짓을 많이 해야했다.

1번 트램으로 Old City이동

 

비엔나에서 살다가 사라예보로 이사를 와서 살고있다는 백발의 현지인이 트램표 사용하는 법을 알려준다.

배운대로

 

 

 

 

 

 

 

사라예보 구시가에 거의 다왔다.

바슈카르지아 거리

 

 

 

 

 

 

가지후스레브베그 모스크(Gazi Husrev-Beg Mosque)

사라예보를 건설한 오스만 터어키의 술탄을 기념하여 1530년 보스니아를 통치하던 가지후스레브의 명령으로 페르시아의 건축가가 만들었다.

 

The Sebilj is a pseudo-Ottoman style wooden fountain in the centre of Baščaršija square.

밤에는 이렇게 바뀐다.

사라예보의 가장 대표적인 거리로 매스컴에 나오는 거리다.

 

 

 

 

 

 

 

좌측에 보이는 모리카 한(Morica Han)은 카라반들이 묵어가는 숙소였다고 한다.

 

 

 

 

하늘에서 본 구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