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사마르칸트(Samarqand)의 영광

사마르칸트(Samarqand)의 영광

27-2)  사실 혜초사문을 따라 10여 개국의 나라를 돌아다니는 동안 제일 어려웠던 점은 언어문제였다. 현재 영어권으로 세계가 단일화된 상태에서도 그런데, 혜초사문은  곳곳의 원주민들과 도대체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였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볼 때가 많았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새록새록 혜초란 인간의 위대함이 간절해짐을 어쩌지 못했다. 내 경우에도 아프간과 우즈벡의 경우가 특히 힘이 들었는데, 이 나라는 오랫동안 쏘련권에 속해 있었기에 러시아어가 국어로 되어 있었지만 1991년 자립한 후 현재는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민족의 우즈벡어 이외에 타지크어, 카자크어 등을 각자 쓰고 있어서, 출국할 때 사가지고 온 러시아 사전에 의한 알량한 러시아어 몇 마디와 손짓발짓 등을 총 동원하는 ‘생존어(生存語)’ 만 가지고는 곤란할 때가 많았다. 예를 들면, 일단 “생큐”해서 반응이 없으면 “스파시버” 또는 “부라흐마트” 했다가 그것저것도 안 되면, 에라 모르겠다하고는 두 손을 잡고 흔들며 한국말로 “감사감사”하면서 씩 웃어주는 식이었다. 힘이 좀 들긴 하지만 대개는 먹혀드는(?) 수법이었다. *사마르칸트의 고풍스런 시가지  그 외에도 돈도 아주 ‘문제거리’였다. 무슨 소린가 하면 이 나라는 화폐단위가 우리와 비슷할 정도로 높고, 거기다 화폐가 모두 소액환이어서 한 끼 식사 값으로 한 움큼의 돈을 지불해야하는 정도여서, 만약 1백 달러 정도를 우즈벡 화폐-‘숨(soum)’으로 바꾸면 지갑에다 도저히 집어넣을 수가 없어서 돈가방을 하나 마련해야 한다. 더구나 이웃나라 키르기스탄의 화폐는 ‘솜(som)’ 이어서 남쪽 나라- 인도, 파키스탄, 네팔, 아프간에서 공통적으로 쓰던 ‘루피’의 익숙함에 비해 여간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하니 특히 ‘돈 간수’를 잘 해야 하는 나그네들로서는 무척 신경 쓰이는 문제의 하나였다.       각설하고, 다시 혜초를 따라 속디아나 깊숙이  들어가 보자. 혜초는 아마도, 더 이상의 서쪽길은 의미가 없기에 발길을 동쪽으로 돌려 후라싼 총독부 마샤드에서 빈번한 대상들의 틈에 끼어 카라쿰 사막을 건너 아무다리아를 건너 부하라로 왔을 것이다. 안국-부하라와 강국-사마르칸트는 성격이 비슷한 도시이다. 둘 다 고대 실크로드의 핵심적인 도시국가였고 또한 티무르제국의 영광을 함께 누렸던 곳이었다. 그래서 마샤드와 부하라 사이에는 교통이 빈번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일정을 줄이기 위해서는 아쉽지만 하나를 포기해야했는데, 마침 사마르칸트로의 중간에 유명한 ‘철문관(鐵門關)‘이 있기에 부하라를 포기하고 철문을 넘어서 바로 385km 떨어진 사마르칸트로 직행하게 되었다. 기원전의 사서인 『史記』에는 이 지방은 ‘대월지국’으로 역사에 등장한다.                                         *레기스탄광장 『대월지국(大月氏國)은 대원(大?, Fergana)의 서쪽으로 대략 2~3천리에 있고 위수(僞水)의 북쪽에 있다. 그 남쪽은 대하(大夏), 서쪽은 안식(安息), 북쪽은 강거(康居, Samarqand )로써 행국(行國)으로 가축과 함께 이동하면서 살아간다.(중략) 처음 월지는 돈황과 기련산맥 사이에 있었으나 흉노에게 쫓겨서 멀리 대원을 지나 위수 북쪽에 도읍을 정하였다.…』  속디아나는 이스람화 되기 전에는 오히려 중국의 영향을 받았던 곳이었다. 한의 장건(張騫)의 여행이후 이광리(李廣利)의 대원(大?)원정 그리고 고선지(高仙芝)의 사마르칸트의 원정으로 중국의 영향력은 그 절정기를 맞았으나 이스람의 팽창으로 두 세력권은 충돌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드디어 751년, 타라스(Taras) 강변에서 중앙아시아의 주인을 가르는 역사적인 대회전이 벌어졌는데, 당시 아랍연합군과 당군 사이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한 부족이 바로 현재의 우즈벡의 선조인 카를루크 족이었다. 그들은 중반전에 들어가자 갑자기 방향을 돌려 동맹군을 뒤에서 공격을 하였다. 그리하여 당군은 역전패하고 고선지는 겨우 서역도호부가 있는 쿠차로 도주하여 그간 쌓은 혁혁한 전공에 먹칠을 하게 된다. *아프라시브 벽화(부분도)  고구려 유민 장군인 고선지는 747년 소발율-길깃트를 탈환한 제1차원정의 공로로 절도사에 임명되어 서역의 총사령관으로 승진하여서 3년 뒤에는 또 다른 대상로인 천산북로길 개척에 나가 중앙아시아의 중심지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까지 점령하여 그의 이름을 온 천하에 떨쳤으나 마지막에 우군의 배신으로 허망하게 무너진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소발율의 공략은 세계전쟁사에 길이 남는 명승부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훗날 고선지의 원정로를 탐험한 스타인(A Stein)도 와칸계곡을 지나며 중국장수 고선지를, 알프스를 넘었던 한니발, 나폴레옹에 비교하면서 명장으로 꼽았다. 또 동시대에 살았던 시성 두보(杜甫)도 고선지의 애마(愛馬)를 노래하며 한 많은 서역의 영웅의 영혼을 달래기도 했다.                                                    *아프라시브 박물관  타라스의 패전은 중국으로서는 당장 중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잃는 표면적인 것보다 더 막대한 손실이 뒤 따랐다. 원래 비단과 종이 제조법은 수천 년 동안 중국인들의 전매특허였다. 그것 때문에 동양문화의 종주국 행세도 가능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중국의 역대 왕조들은 누에나방을 외부세계로 나가지 못하게 엄중한 보안조치를 하고 대신 부가가치가 높은 황금 값 같은 비단만 수출을 했기 때문에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로마인들은 중국인을 세레스(Ceres)라고 불렀는데, 그들은 비단이 동물성이란 사실을 상상조차 할 수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역사적인 대회전에서 대패한 뒤 신개척지 중앙아시아에 진출해있던 수많은 기술자들은 포로가 되어 사마르칸트로, 다시 바그다드로 끌려가서 살기 위해서라도 자청해서 비단, 종이, 도자기의 제조법을 아랍 권에 전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리하여 실크로드 무역은 막대한 손실을 가져왔다. 더구나 특히 종이의 전래는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신기술에 의한 종이의 대량생산은 인쇄술의 혁명으로 이어져 후에 다가올 르네상스에 초석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이 종이의 서구전래는 동양이 문화적으로 역전당하는 한 계기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티무르대왕의 황금묘  혜초사문이 강국(康國)으로 불렀던 사마르칸트는 속디아나의 중남부 제라프샨(Zerafshan) 계곡에 위치하고 있는데, 그곳에 도착할 즈음에는 계곡이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드넓은 옥토가 펼쳐졌다. 한 겨울인데도 보리 싹이 파랗게 솟아나고 있어서인지 보로딘의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라는 교향시(交響詩)의 멜로디가 언뜻 떠오를 정도로 광활하고 그리고도 전원적이었다.  역시 푸른 색 타일로 뒤 덥힌 고도는 ‘사마르칸트’다웠다. 이 말은 상상했던 것에서 별 차이가 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 만큼 고색창연하였다. ‘푸른 타일의 제국’의 수도다웠다. 사마르칸트는 중앙아시아의 최고(最古) 도시의 하나로,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마라칸다로 불려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찬탄을 받을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한다. 1220년 칭기즈칸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기까지는 '뵈유크 이페크 율루(yolu)'-즉 ‘대 실크로드’의 중간교역지로 번창하였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우선 중앙아시아 최대의 볼거리라는 레기스탄(Registan) 광장으로 달려가 반나절을 입을 벌리고 기웃거리다 다음으로는 구르아미르(Gur Emir)묘지로 갔다. 일세의 영웅 티무르가 청옥(靑玉)으로 만든 관(棺)안에 누워있는 곳이었다. 아미르 티무르(Amir Timur, 1336~1405)의 가계(家系)는 징기스칸의 후손으로 이어진다고 하는데, 전투에서 오른발을 다쳤기 때문에 ‘절름발이 티무르’라고도 불렸다. 그가 유명한 것은 물론 정복전쟁의 승자이기 때문이다. 그의 군대는 중앙아시아는 물론이려니와 남으로는 인도 델리까지, 북으로는 모스크바 근처까지, 서쪽으로는 이란, 이라크, 그리고 터키의 앙카라(Ankara)까지 진군하여 이집트와 연합한 오스만터키 제국의 황제까지 포로로 잡았을 정도였다.   이제 그가 무릎을 꿇리지 못한 곳은 오직 동쪽뿐이었다. 당시 중국에서는 징기스칸의 후예인 원(元)나라를 무너뜨린 명(明)이 막 건국되었을 때였는데, 객관적 전력으로는 명은 티무르제국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티무르의 평생의 꿈은 징기스칸의 위업을 이어 세계제국을 이룩하는 일이었기에 명의 토벌은 그의 최대의 목표였다. 그러나 하늘이 중국을 도왔는지 동방원정길에 나선 티무르는 그만 도중에서 병사하고 말아서 징기스칸의 유업을 이루려던 그의 마지막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의 평전은 용맹, 강건, 준엄하였다지만 또한 문화를 사랑하고 산업을 장려하여서“징기스칸은 부시고, 티무르는 건설했다.”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될 정도였다.                                               *사마르칸트의 전경   티무르의 객사에 이은 혼란은 티무르의 제4남 샤루흐(Shahrukh)가 즉위하며 안정되었는데, 그는 내정을 그의 아들 울루그벡에게 맡기고 아프간의 서부도시 헤라트(Herat)로 천도하여 서남쪽 경영에 몰두하였다. 그의 38년간의 치세는 티무르왕조의 전성시대를 이루었다. 1447년에 즉위한 그의 아들 울루그벡(Ulugbek)은 조부의 유업을 이어받아 사마르칸트를 세계의 중심지로 키워나갔는데, 전 세계의 건축기술자들을 데려와서 특색 있는 건축물들을 세웠다. 이스람 학문의 요람인 마드라사(Madrasa)를 곳곳에 세우고 세계 최대의 천문대를 세워 직접 연구를 하는 등, “옥좌에 앉은 학자”라는 별명처럼  지나치게 문치(文治)에 치중하자 알라의 신권에 불안을 느낀 이스람 사제들이 그의 아들을 사주하여 아비의 목을 베게 하였다. 그 뒤 나라는 돌이키지 못하는 혼란에 빠져 들어가며 내란상태에 이르러 1500년에는 북쪽에서 밀려들어 온 우즈벡 민족에게 허망하게 사마르칸트를 내주고 말아 한 세기 남짓 중앙아시아를 호령했던 ‘푸른 타일의 제국’도 문을 닫게 되었다.   티무르의 부인이 세웠다는 거대한 모스크, 비비하늄 아래는 중앙아시아 최대의 바자 르(bazar)가 떠들썩함에 묻혀 있었다. 우즈벡의 특산인 요란하게 치장된 리피오슈카(lipioshka)란 이름의 빵과, 서역의 명물인 석류(石榴), 말린 살구-우르크(uruk), 건포도, 각종 곡식류와 치즈류 그리고 김치와 각종 장아찌를 비롯한 먹거리와 아름답게 수놓은 네모난 전통모자 도파(doppa)와 의상 등 정말 없는 것이 없는 거대한 시장이었다. 지금도 이러할진대 전성기의 모습이 어떠했을지는 쉽게 상상이 되고도 남을 정도였다.               *사마르칸트의 바자르  티무르가 유럽 제국에 보낸 사절의 답례로 사마르칸트에 온 클라비호(Clavijo)는 1403년, 사마르칸트에서 만난 중국 사절단의 대상행렬의 규모를 비단, 사향, 루비, 다이아몬드, 진주, 대황, 등을 가득 실은 7백여 필의 낙타의 대 카라반이었다고 하며, 그의 눈에 비친 바자르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을 보면 사마르칸트의 바자르는 세계 최대였다고 하는 말이 수긍이 간다. 『티무르가 즉위한 후 여러 나라에서 가져온 상품이 엄청나서 시장의 진열장의 턱없이 모자라자 티무르는 기술관리에게 명하여 성을 가로 지르는 바자르를 건설하여 상인들을 입주시키도록 했다. (중략) 이 바자르는 사마르칸트 성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에 이르는 대시장으로 규모는 상당히 크고 천장은 돔으로 덥혀 있는데 광선이 들어올 수 있도록 곳곳에 창문이 열려 있다. 』     반나절을 카메라를 들고 바자르 안을 헤매던 ‘해동의 나그네’ 가 목도 마르고 피곤도 해서 휴식을 취할 겸 길가의 노점에서 양고기 고치구이 ‘사실리크’ 몇 개를 막 집어 들려는 순간 이번에는 바자르의 입구공터에서 마술단이 연기를 펼치려고 갑자기 떠들썩해지는 것이 아닌가? 그 옛날 장안에서 성행하였다던 서역인의 ‘환술(幻術)’ 의 후손들일 것이니 어찌 먹을 것이 목구멍에 넘어갈 것인가! *사마르칸트의 대바자르   물론 이 고도의 매력이 직선과 곡선을 절묘하게 이용한 거대한 원형 돔과 미나렛의 조화와 푸른 타일의 단조로운 아름다움에 있지만. 무엇보다 ‘해동의 나그네’의 관심이 끌리는 것은 최근 칭기즈칸의 군대에 의해 폐허가 된 구시가에서 발굴된 아랍 침공 이전의 궁전 터와 벽화 등이었는데, 거기에는 뜻밖에도 신라의 사신도(使臣圖)를 발견할 수 있어서 감격스러웠다. 그곳은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아프라시프(Afrasiab)라는 언덕이었다. 1989년 우즈벡과 프랑스의 합작으로 발굴한 곳은 이스람화 되기 이전의 도읍의 유적이었는데, 그 현장을 박물관으로 만들어 그 벽화를 원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신라의 두 사신들은 각양각색의 각국의 방문객의 뒤에서 조우관(鳥羽冠)을 쓰고 서 있었다.  사마르칸트와 중원간의 교류는 한대 이후 상황에 따라서는 일시적으로 단절되기도 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사신들의 왕래는 끊이지 않았던 것을 기록에서 간간히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혜초의 순례 직후 고선지가 속디아나를 공략한 것을 보아도 당나라 때에도 강국과 중원과의 교류는 상당히 밀접하였음이 증명되고 있다. 그렇다면 신라 사신들의 강국 방문이란 안내책자의 문구와 벽화는 현실성이 있다고 보여 진다. 물론 이런 사신도는 장안, 뚠황 등에서도 발견되고 있고 토번(吐蕃)의 뵌뽀교의 사제들도 비슷한 조우관을 쓰고 있다는 기록이 있기에 단지, 벽화작법상의 도본(圖本)에 의한 임사(臨寫)일 가능성도 있는 것이어서 좀더 고증을 요하는 문제이지만, 그런 학술적인 면을 떠나서라도 이역만리에서 천년의 시공을 뛰어넘는 배달민족의 흔적을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아프라시브 박룰관의 신라사신도  참, 또 한 문제, 그러니까, 만약 우리의 혜초가 강국- 즉 사마르칸트에 왔었다면 여기 이 유적지 일대가 바로, 승려 한 사람만이 달랑 있던 바로 그 사원일 가능성도 배재할 수없다.  『 강국(康國)에 절 하나와 승려 한 사람이 있기는 하나 그도 또한 불법을 잘 몰라 공경할 줄 모른다.…』

출처 : 한국티베트문화연구소

글쓴이 : 김규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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