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plan abroad/중앙아시아

[스크랩] ★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봉들레르 2010. 9. 18. 18:54


고대 이슬람 색채가 남아있는 아름다운 도시, 부하라(Bukhara)


      부하라(Bukhara)는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주(州)의 주도(州都)로서 산스크리트어로 
      '수도원'이라는 뜻이며 현지에서는 우즈벡어로 '보하로'라고 부른다. 쟈라프샨 강의 하류에 
      자리잡고 있으며 우즈베키스탄 동부지역의 문화중심지로서 저지대에서 산출되는 
      가스와 농산물 가공,모피 가공의 중심지이다. 
      
      부하라 (Bukhara)는 유네스코로부터 
      도시 대부분의 유적지가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받아공장 하나 건설되지 않은 등 유적지 보존에 
      힘쓰면서 최고 1000년 전으로 떠나는 타임머신 여행을 할 수 있는 세계 유일한 곳이다. 
      
      사마르칸트의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한때 거대한 실크로드의 중심지였다. 또한 과거에는 
      이슬람 세계를 통털어 배움의 열기가 가장 높은 도시로서 약 350개의 이슬람 모스크와 100여개의 
      신학교를 가지고 있었으며 , 이러한 명성은 17세기 중앙아시아 대정복 시기까지 계속되었다.
      부하라가 얼마나 오래된 도시인가 하는가는 유적의 방사능 연대측정으로 알수 있는데 가장 
      오래된 층은 BC3~4 세기의 것이며 가장 최근의 유적은 9세기부터 20세기로 추정되어 
      약 2500년을 아우르는 역사를 가진 도시임을 알수 있게 한다. 특히 이곳의 140여개의 
      역사적인 건축물은 부하라를 마치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으로 만들어 놓았다. 게다가 이러한
      건축물들은 만들어진 시기도 달라서 보는이로 하여금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이 들게힌다. 
      1000년의 역사에 걸쳐있는 건물과 2세기동안 거의 변하지 않는 완전히 살아있는 도심지가 
      있는 부하라는 중앙 아시아에서 투르크스탄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이다. 
      사마르칸트의 눈부신 모자이크와 달리 부카라의 평범한 갈색은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가져다 줄 뿐만아니라 대부분의 도심지에 건축물이 보존되어 있으며 거대한 왕궁 요새,
      여러 곳의 옛 메드레사, 수많은 고대의 공중 목욕탕, 옛시절의 시장터의 유적이 남아 있다. 
       
      부하라가 자랑하는 많은 유적지 가운데 
      
      첫번째는 사실 '이스마일 샤마니왕의 영묘'이다. 
      웅장하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지금으로부터 무려 1100년전에 세워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18가지 벽돌로 제작된데다 투박하지만 원형 사각형 등 각종 모형과 꽃잎문양이 그려져 섬세한 
      예술성이 돋보이기도 하지만 여기에 사용된 진흙 벽돌은 수천년을 견딜 수 있도록 
      낙타젖으로 반죽을 해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지고있다.
      
      그러나 부하라의 상징이라면
      
      첫째 : 칼랸 미나레트(Kalyan Minaret) 건물 높이 47m의 첨탑으로서 중앙아시아에서는 
      가장 높은 탑으로 12세기에 지어졌고 당시 하루 5차례 예배시간을 알려주는 기능과 
      함께 밤에는 첨탑 꼭대기에 불을 밝혀 사막을 여행하던대상들에게 등대 역할은 물론 
      사막지대에서 길을 밝히는 나침반으로 작용한 셈이다. 
      미나레트를 옆으로 높이 33m의 모스크돔을 이룬 갈리안 사원은 16세기 초 세워졌고 
      사원의 기둥만 208개에 이른다. 사원 한 가운데 광장은 크기가 78mX118m로 한꺼번에 
      1만여명의 이슬람교도들이 예배를 드릴 정도여서 한때의 영화를 웅변하고 있다. 
      징기스칸(Genghis Khan)이 이 도시를 파괴하였을 때에도 
      캴랸 미나레트(Kalyan Minaret)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이곳만은 남겨 놓았다고 한다.
      둘째 : 지상에서 우뚝 솟은 아크라성(커다란 궁궐이란 뜻)에서 찾을 수 있다. 
      기원전부터 하나 둘 벽돌을 쌓기 시작하면서 18세기에 높이 16∼20m에 이르는 
      흙과 돌, 모래로 지어진 거대한 성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일명 대통령궁이라 불려 역대 왕조의 왕과 제후들이 부하라를 통치하던 곳이다. 
      현재는 러시아혁명 등 역사적 변란으로 인해 성곽 일부가 파괴돼 성곽둘레는800m밖에
      남지 않았지만 규모는 보는 이를 압도한다. 
      아크라성에는 구석기시대부터 내려오는 각종 유물들,
      실크로드를 오가던 상인들의 물품 등이 보존돼 당시 삶의 풍속도를 엿볼 수 있다. 
      그 밖에 : 생명의 물이 가득한 하우즈(연못)등 3곳이 중심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연못 주변에 세워진 17세기의 광장인 라비-하우즈(Labi-hauz)를 비롯해서 중앙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905년에 완성됨)이며 가장 정교한 
      이스마일 사마니(Ismail Samani)능묘 칼리안 미나레트(1127)와 모스크, 울루그베그 
      신학교(1417), 쿠켈다시 신학교(16세기), 아브둘라지즈한 신학교(1652)와 지금도 
      소련령 중앙 아시아에서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유일한 이슬람 신학교인 미리아랍 
      신학교(1536),등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아르크 요새 등이 손꼽힌다. 
      모슬럼과 이슬람 성직자 양성기관인 마가크 이 아타리 사원과 카르얀 사원을 비롯하여 
      약 350개의 이슬람 모스크와 100여개의 신학교가 있으며  
      특히 이곳이 가진 140여개의 역사적인 건축물은 부하라를 마치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으로 만들어 놓았다. 게다가 이러한 건축물들은 만들어진 시기도 달라서 
      보는이로 하여금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들게힌다. 
      이곳을 우즈베키스탄의 보물창고라고 부를 만큼 곳곳에 유명한 문화유적이 산재해 있다. 
      
      부하라는 처음 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그 위치를 옮기지 않은 채 수직적으로 성장해 왔다.
      지금도 지하 20m의 깊이에서 주거지와 공공건물, 성채의 잔해 등 유적 뿐 아니라 도자기, 
      주화, 보석 등이 발굴되고 있다.
      1997년이 도시 개국 2500년을 기념하는 해였으며 세월이 지났어도 여전히 고대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건물의 외벽은 인위적인 색을 칠한 것이 아니라 
      진흙 색깔 그대로를 이용하여 표현하였으며, 수세기동안 사막과 함께 조화를 이뤄온 
      고대 건물 등은 그것 스스로 고대의 문화를 느낄수 있게 한다.
      부하라는 서역으로 가는 좁은 ‘목구멍’이었던 둔황과 지정학적으로 비슷하다. 
      아랄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있는 ‘중앙아시아의 정수리’ 호라산 지역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어 
      일찍부터 실크로드 간선인 초원로와 오아시스 육로의 교차점이 됐다. 
      동쪽의 중국과 서쪽의 페르시아·유럽쪽 문물들이 부하라에서 한데 모였다가 각지로 전파된 
      까닭에 숱한 지역 왕조들의 도읍이 되었으며, 이민족 상인들 사이에는 경제적 패권의
      각축장이 되었다. 특히 동유럽·중동에서 중국으로 갈 경우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에 
      있어 실크로드가 쇠퇴하는 17세기 이후에도 중계 교역으로 쉼없이 번영을 누렸으며 
      오늘날 우량 박물관이 된 것은 20세기초까지 유지된 교역망 덕분이었다고 볼 수 있다.


▼ 우즈베키스탄 지도




▲ 부하라의 전경. 가운데 탑이 칼랸 미나레트



▲ 칼랸 성원 내부의 뜰



▲ 칼랸 성원 맞은 편의 미리아랍 메드레세



▲ 연못 라비하우스. 뒤쪽은 쿠켈다시 메드레세



▲ 노디르 디반베기 메드레세



▲ 라비하우스 앞에 있는 나스레딘 호자 동상



▲ 굼바스. 좌측 뒤편으로 칼랸 미나레트와 미리아랍 메드레세가 보인다.



▲ 카라반의 밤길을 인도하던 부하라 사막 등대 (46m 높이의 칼랸 미나레트)



▲ 아르크 성의 전경

 



이슬람 학문 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분야는 의학이다.
부하라의 대표적 의사이자 철학자이기도 한 이븐 시나가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부하라의 상징인 미르 아랍 마드라사(신학교) 들머리 모습.
이슬람 부흥을 누렸던 15세기 티무르 시대에 지은 이 신학교는 청백색 모자이크 타일로 식물
·문자문양을 기묘하게 조화시킨 장식은 당대 건축미술의 백미다.
과거에 많은 신학생들이 공부를 했다는 이곳은 관광객들만 드문드문 드나들며 옛 영광의 흔적만 보이고 있다.

 


                                      


부하라 캴란미나레트와 서원



부하라 캴란미나레트와 서원



아르크성의 모래바람

 

 




이 곳 근처에는 군인 둘이서 지키는 초소가 있었는데,
미군의 사막 위장색보다는 훨씬 진한색의 군복을 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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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축성 -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전축성 모습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칼리얀 미나렛
신전(이슬람교사원)



미나렛에서 본 부하라 시내


16세기 부하라 칸국의 수도였던 이 도시는 이슬람 성직자 양성기관으로 또한 이름을 떨쳤다.

지금 남아 있는 큼직한 건물들도 대다수가 메드레사 (학교) 건물이다.

지금은 용도가 달라졌지만. 한낮에 칼리얀 미나렛 꼭대기에서 바라본 부하라의

올드타운은 왕궁과 모스크, 메드레세를 빼놓고는 모두 회갈색 이다.

 

해가 기우는 시간에 부하라성의 성벽에서 바라본 올드타운은 갈색이다.

거의 모두가 흙벽돌과 흙으로 지은 건물들은 햇빛이 비추는

각도에 따라 색깔이 변하면서 부드럽게 모두를 감싸 안는다.



칼리얀 미나렛


부하라의 상징이고 가장 오래된 미나렛이다.

칭기즈칸도 이 미나렛을 보고 부하라를 침공하였고

그래서 이 칼리얀 미나렛은 파괴되지 않았다고 한다.

 


칼리얀 미나렛, 좌측은 부하라 성



칼리얀 미나렛



칼리얀 미나렛



칼리얀 미나렛



부하라 왕궁



왕궁 광장



부하라 성 정문


7세기에 축성되어 몇 번을 개축한 성으로18세기에 부하라 왕이 살던 곳이다.

정문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반 정도는 복구되어 있고 지금도 계속 복구 중이다.

성곽 외부의 축성 형태가 특이하다.

 

성벽이 활처럼 휘어지게 쌓아 올라가다가 어느 정도 올라가서는

직각으로 올라갔고 일정 간격으로 기둥으로 세웠는지

거대한 둥근 지지대가 역시 비스듬히 세워져 있다.



부하라 성



4 기둥이 있는 메드라사(학교) 





 

부하라 아르크 성 정면

















 







 

아르크 고성의 전경.

아르크 고성은 고대 부하라의 발상지이며, 부하라 왕국의 왕이 살던 곳이다.
들어가는 곳은 오른쪽에 보이는 문이 유일하며, 현재의 건물은 18세기에 복원한 것이다.






















출처 : 흰 구름 처럼
글쓴이 : 고덕산마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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