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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공사(懸空寺)

봉들레르 2021. 7. 17. 14:19

현공사는 중국의 오악(五岳)으로 이름난 헝산(恒山)의 60m 절벽에 세워졌다.

491년 북위 시대에 사원 건물의 3분의 2는 절벽 안쪽에, 나머지 3분의 1은 절벽 밖으로 튀어 나오도록 지은 것이다.

금방이라도 이 오래된 건물이 절벽에서 와장창 떨어져 내릴 것 같은 인상을 풍기나 매우 과학적으로 설계됐다.

절벽과 바위에 구멍을 내고 대들보를 연결해 하중이 골고루 분배되도록 축조해서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2010년 미국 ‘타임즈’에서 세계 9대 아슬아슬한 건축물을 선정해 발표했을 때 현공사가 당당히 4위를 차지했다.
지금도 관광객이 직접 절벽 사원에 올라 가서 40여 칸에 달하는 사원 내부를 관람할 수 있다.

삐거덕 소리가 나는 사원에 올라 발밑을 바라보면 아찔해서 오금이 저린다.

마치 가느다란 나무 기둥 몇 개가 건물의 하중을 견디는 모습이다.

이 나무 기둥은 사원이 처음 지어진 당시에는 없었는데 건물이 무너질까 우려하는 이들의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눈에 보이는 ‘장식 기둥’으로 설치한 것이다.
사원에 남아 있는 불상 80여 존은 상태가 썩 좋지 않다. 그래도 눈여겨볼 만하다.

특이하게 유교, 불교, 도교 세 가지 종교가 한곳에 공존하는 것을 볼수 있다.

사원 밑에 735년 현공사에 올랐던 시선(诗仙) 이백(李白)이 ‘장관(壯觀)’이라고 쓴 두 글자도 눈여겨 보자.

사원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 이백이 장할 장(壯)자의 선비 사(士) 자에다

점 하나를 더 찍어서 경이로운 느낌을 표현했다. 이백이 쓴 원본은 다퉁의 화엄사에서 보관 중이다

 

 

 

공중에 매달려 있는 절’이라는 뜻에 현공사(懸空寺)는 중국 산시(山西)성 훈위안(渾源)현으로부터

남쪽 5킬로 떨어진 북악항산(北岳恒山) 용구서봉(龍口西峰) 절벽에 위치해 있다.

중국 북위시대 후기에 요연(了然) 스님이 창건한 이후 금, 원, 명, 청대를 거쳤다.

현공사는 3층 구조에 총 40개의 방이 있으며 지붕 위에는 거대한 암석, 아래에는 깊은 골짜기가 있어

보기엔 매우 위험해 보이지만 무려 1400년 이상 안정적으로 보존돼 왔다.

긴 역사 중에  여러차례 지진을 경험했지만 여전히 견고함을 자랑해 실로 건축 역사상 기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현공사의 건축 구조는 매우 정교해 가로세로로 짜여진 나무 기둥들로 이루어져 있다.

횡단 목재는 현지 특산품인 철삼나무를 가공해 만든 ‘철편담(鐵扁担)’이라는 사각 목재다.

이 ‘철편담’ 27개를 암벽 깊이 찔러 넣어 건물을 지탱하고 있다. ‘철편담’은 오동나무 종자에서 채취한 기름인 동유(桐油)에 담가 만든 것으로 쉽게 썩지 않는다.


한편, 세로 기둥은 주로 건물을 지지하기보다 건물 전체 균형을 유지하도록 세심하게 계산되어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일부 나무 기둥은 전혀 무게를 지탱하지 않는다.

또 절이 허공에 떠 습기가 적고 흰개미 등 목재를 손상시키는 벌레가 칩습하기 어렵다.

상부 절벽에 가로막혀 비에 잘 젖지 않으며 매서운 북서풍을 차단하기도 한다.


이 같은 극히 기이하고 절묘한 배치는 현대 과학으로도 생각해내기 어렵다.

멀리서 본 현공사는 마치 말꼬리처럼 보여 ‘공중에 매달려 있는 3개의 말꼬리’라고도 불려진다.


이 절은 거주자에 대해서도 일정한 조건이 있다. 다시 말해 겁이 많은 사람은 살 수 없다.

40개의 방은 각 층이 나선 모양 계단으로 연결돼 있어 앞에서 오르는 사람은

마치 뒤에 오르는 사람의 머리를 밟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또, 절 중앙에서 양측으로 통하는 벼랑길이 있는데 목조 통로이기 때문에 건널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가 난다.

또 판과 판의 틈새로 깊은 골짜기가 보이므로 왠만한 담력으로는 이곳에서 생활할 수 없다.


당시 요연 스님은 왜 이 같은 절벽에 절을 세웠을까?

현대 건축가라면 자연 환경변화로 암석이 풍화되거나 산사태 등 위기에 처할 수 있는 곳에는

절대 건물을 짓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옛 승려들은 이와 같이는 이해하지 않았다.

진정하게 수행했던 승려들은 부처는 부처를 믿는 사람을 지키고 산은 산신(山神)이 관리한다고 믿었다. 또 불가에 따르면 모든 생명은 각자의 명(命)이 있으니 위험이 있어도 운명에 따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 현공사는 1400년 간 승려들의 깊은 믿음을 증명해 왔다.

만약 그러한 믿음이 없었더라면 이 같이 깎아지른 절벽 위에 사찰을 짓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