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omestic travel/동해안

1-2 불꽃같은 생을 살다 간 허난설헌(許蘭雪軒)

봉들레르 2017. 2. 2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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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의 아버지 허엽은 딸에게 초희란 이름과 난설헌이란 호를 지어줬고,

딸의 뛰어난 문학 재능을 높이 사 어린 시절부터 당대 시인으로 꼽힌 이달에게 개인 수업을 받게 했다.

난설헌의 천재성은 8세 때 쓴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이라는 시에서 엿볼 수 있다.


‘북해 아득하고 아득해

북극성에 젖어드는데

봉새 날개 하늘 치니

그 바람 힘으로 물이 높이 치솟아

구만리 하늘에 구름 드리워

비의 기운이 어둑하다

어영차, 위쪽으로 대들보 올리세.’ 


이렇게 보면 난설헌은 불행할 것이 하나 없다. 그는 ‘강물에 비단옷을 빨 정도’로 부유한 집안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그의 불행은 15세에 안동 김씨 집안의 김성립과 결혼하면서 시작됐다.

번번이 과거에 낙방한 김성립은 난설헌에 대한 열등감에 빠졌고, 기방을 돌아다니며 극심한 바람을 피웠다.

시어머니 송씨의 상상하기 힘든 구박을 받은 난설헌은 자살만이 유일한 탈출구라고 생각했다.

18세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여의었고, 19세 때 딸이 죽고, 20세 때 아들도 죽고, 배 속의 아이도 유산한다.

21세에 그토록 사랑한 오빠 허봉이 귀양을 가고 5년 뒤 금강산에서 오빠마저 객사한다.

난설헌은 오빠를 찾아 금강산을 수없이 헤매다녔으며 결국 27세에 ‘몽유광상산시서’를 남기고 사망한다.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碧海浸瑤海)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靑彎倚彩彎)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 붉게 떨어지니(芙蓉三九朶)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紅隋月霜寒)’ 

난설헌은 생전에 입버릇처럼 세 가지 한(恨)을 말하며 극심한 우울증에 빠졌다.

조선 땅에 태어난 것, 여자로 태어난 것, 멍청한 남편 김성립과 결혼한 것이었다.

이는 ‘다시는 조선 땅에 태어나지 않으리, 다시는 여자로 태어나지 않으리, 나의 모든 작품을 불태우라’는 유언으로 이어진다. 

그의 친동생이자 누나의 작품을 유언대로 불태우지 않고 《난설헌집》으로 엮어 후세에 남긴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은

허난설헌의 시문학을 중국에 널리 알렸을 뿐만 아니라 불에 태워질 뻔한 그의 작품을 오늘날까지 남겨줬기 때문이다.

한국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