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등산, 트래킹

2017. 01. 24 명상, 광부의 길

봉들레르 2017. 1. 26. 12:01

구름도 쉬어가는 첩첩산골에 구름처럼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인생 막장에야 찾아온다는 탄광은 가방끈도 짧고 특별한 기술도 없는 필부들에게 가장 노릇하기 안성맞춤인 직장이었다.

돈을 캐낸다는 소문을 들은 사내들은 해발 1000m가 넘는 망경대산 7부능선 산꼬라데이(산꼭대기)를 넘어왔다.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 주문2리 옛 탄광촌 모운동 마을이다. 
“여기 시집온 색시들은 처음에 네 번 놀래요.” 

두 살 때 광부 아버지를 따라 모운동에 온 김흥식 이장(58)이 부인 손복용씨를 보며 웃는다.

부모를 떠나 탄광마을에 시집가는 색시들은 구불구불 굽이치는 험한 산길에 놀라며 눈물을 흘린다.

해질 녘에야 망경대산 싸리재에 오른 여인들은 별빛처럼 반짝이는 광부 마을의 야경에 감탄하며 흘리던 눈물을 훔친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뜬 새색시들은 지난 밤 자신이 본 휘황찬란했던 마을이 단지 함석집들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한숨을 짓는다.

이렇게 세 번이나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지아비를 탄광에 배웅했던 아낙들은

마을 집들의 모양새가 모두 똑같아 자기 집을 찾을 수가 없어 망연자실했단다.

“당구장, 사진관, 미장원, 양복점, 병원, 모 없는 게 없었더래요.” 

하늘 아래 제일 높은 모운동 탄광마을은 2000여명의 광부들로 시끌벅적했다.

‘별표’ 연탄을 만들던 옥동광업소가 그들의 직장이었다. ‘옥광회관’이라는 극장이 있었는데,

서울 명동에서 개봉한 영화 필름이 두 번째로 도착할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간조(월급)날이면 마을 공터에는 영월읍보다 큰 장이 열렸다.

산길을 달리는 마이크로버스는 물건을 팔러 오는 상인들로 콩나물시루가 됐다.

여관방들도 모자라 한 방에 여러 명이 새우잠을 잤다.

왕대폿집은 밤새 불이 꺼지지 않았고, 거나하게 취한 사내들은 요정집을 기웃거렸다.

첩첩산골에 요정집이 네 개나 됐다고 한다. 서울 부럽지 않다던 모운동 마을은 1989년 탄광이 문을 닫으며 쇠락의 길을 걸었다.

구름처럼 모여들었던 마을 사람들이 바람처럼 빠져나가 현재 30여가구만 남았다.
폐광된 후에도 마을을 떠나지 않은 김 이장은 7년 전 부인과 함께 동네 분위기를 바꿀 방법을 생각해냈다.

허름한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는 것. 손재주 많은 이장 부인이 밑그림을 그리고 그림 안에 색깔을 적었다.

마을 노인들도 벽화 색칠작업에 참여시키고자 했던 것. 잿빛 폐광촌은 개미와 베짱이,

백설공주와 난쟁이가 뛰노는 동화마을로 탈바꿈했다.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 산꼬라데이에 동화마을이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자 알음알음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렇게 모운동은 다시 사람을 모으고 있다. 

경향신문


 

 

 

 

 

 

낙엽송을 벌목하는 사람들이 돼지머리를 놓고서 고사를 지내고 있다

말투로 보아 조선족일거란 생각을 했다

 

 

 

지금은 페광이 된 옥동납석 광업소

 

 

 

 

 

 

 

 

 

눈이 만들어 난 무늬

 

 

 

 

 

 

까맣게 연탄이 묻어 목욕중에는 아들도 몰라본다는 옥동광업소 목욕탕

 

 

 

 

 

 

 

 

탄광입구가 무너지지않게 받치는 나무기둥을 만들던 곳

 

지금은  폐교가 된 학교

영월 모운동 폐광촌 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서 펜션을 운영하고있다.

 

 

 

 

 

 

 

 

 

 

 

 

 

 

 

 

 

 

 

 

 

 

 

 

 

죽어서도 썩지않는다는 자작나무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