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omestic travel/서해안

2-1 여체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조각공원

봉들레르 2016. 6. 26. 00:42

2016. 06.24(금)

다가포해수욕장의 아침 

 

 

 금구원 야외 조각공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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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다듬고 또 다듬어서 '달과 여인'이 탄생했다.
1993년 작품을 구상해 작업에 착수한 이 작품은 화강석 재료에 4.6m로

앞에서 보면 여인의 아름다움을, 뒤에서 보면 초승달 모양이다.

 

 

김오성 그는 금구원야외조각미술관 관장이자 금구원조각공원천문대장이다.

전북 부안에 있는 그의 조각공원엔 그가 평생 조각해온 작품 150점이 전시돼 있어 조각미술관이다.

또 공원 내 그의 집 2층엔 우리나라 최초로 알려진 개인천문대가 들어서 있어 금구원공원천문대로 이름 붙여졌다.

김오성 관장(66)은 “금구원조각공원은 아버지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곳”이라고 했다.

농민교육자였던 그의 아버지 고 김병렬씨(3·1문화상 수상자)는 농민학교를 세우려 1966년 지금의 조각공원 자리에 농장을 일구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김 관장도 아버지의 농민 문맹 퇴치 사업을 돕고 있었다.

그때 그의 ‘예술병’이 도졌다. 중학생 때 미술 교과서에 실린 위대한 조각가들의 작품을 보고 조각가가 되기로 했던 그는

농부가 돼 아버지를 도울지, 자신의 꿈이었던 조각가가 될지 고민에 빠졌다.

결국 예술가의 길을 걷기로 하고 그동안 깎고 다듬어왔던 점토와 나무, 돌 조각품들을 아버지의 농장에 남겨놓고 그는 상경했다.

그때 농장에 남겨놓고 온 조각들이 훗날 금구원야외조각전시관의 단초가 됐다.

그는 서울로 올라와 조각가들의 조수로 일하며 조각을 배웠다.

흔히들 자조적으로 ‘돌쟁이, 석공’이라고 말하는 돌 조각가의 길은 여간해서 배겨내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그는 “인체 조각으로 유명한 백문기 선생님(1927~, 예술원 회원)과 고 김경승 선생님(1915~92, 전 예술원 회원)을

마음속의 은사로 모시며 그 힘든 일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했다.

상경해 돌을 쪼고 깎으며 산 지 8년, 그는 국전에서 특선을 해 비로소 조각가로 홀로 설 수 있었다.

서울서 작품생활을 하는 틈틈이 그는 자신의 작품을 고향의 농장으로 내려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그 조각들을 아들을 대하듯 농장 곳곳에 정성껏 세워놓았다.

김 관장은 “조각이 하나둘 늘어나다보니 어느 때부턴가 사람들이 금구원농장이란 이름 대신 금구원조각공원이라고 부르더라”고 했다.

그는 2003년 금구원조각미술관이란 이름으로 미술관을 정식 개관했다.

개인 조각공원으로서는 처음. 조각전시관에 전시된 작품은 물론 그가 작업하는 작품은 주로 여성상.

그는 그 이유를 “아무래도 남자보다 여자의 몸이 아름답고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또 어려서부터 하늘을 올려다보길 좋아했다. 조각가로 데뷔한 김 관장이 1986년, 마흔이 넘은 늦은 나이에 첫 개인전을 열었을 때다.

그는 전시회 도록에 “나의 소망은 뒷산에 천문대를 세우고 싶은 것”이라고 썼는데,

개인전을 끝낸 김 관장이 제일 처음 한 일은 망원경을 사들이는 것이었다.

그는 경기 고양시 벽제 골짜기 셋집에서 낮에는 조각을 하고 밤이면 하늘을 관찰했다.

그는 “하늘을 보면 볼수록 더 좋은 망원경을 갖고 싶어 집을 장만하려고 준비해 놓은 돈으로 88년 새 망원경을 사들였다”고 했다.

김 관장은 건강이 나빠져 91년 조각공원으로 변해있는 아버지의 농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의 귀향 이유는 악화된 건강도 건강이지만, 서울에서 볼 수 없는 별들을 밤마다 여한 없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조각공원 안에 있는 자신의 집에 천문대를 짓고 또다시 더 큰 망원경을 들여놓았다.

하지만 “2003년 부안사태 때 핵 폐기장 반대시위에 참가했다 전경의 방패에 찍혀 눈을 다치는 바람에

지금은 열정만큼 천체 관측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조각전시관 옆에 마련된 작업장에서 아직도 돌과 함께 살고 있는 김 관장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대한 정부의 지원시책이

수도권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늘 아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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