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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 묵은 이슬람 수니-시아파간 갈등

봉들레르 2016. 1. 4. 10:49

 

사우디아라비아의 소수 시아파가 주로 거주하고 있는 사우디 동부 타루트에서 사우디가 체포하고 있는

 시아파 성직자 님르 알-님르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가 펼쳐지고 있다.

사우디는 2일 님르 알-님르를 포함해 47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고 발표,

 

이슬람 수니파의 종주국인 사우디가 시아파 지도자 셰이크 님르 바크르 알님르 등

시아파 4명이 포함된 테러 혐의자 47명을 집단 처형한 뒤 테헤란 주재 사우디 대사관이 성난 이란인들의 공격을 받는 등

수니파와 시아파 간 종파 갈등이 재점화하고 있다.

급기야 사우디와 이란은 외교관계를 단절하는 극단의 상황에 처했으며, 중동 수니파 국가들은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 구하기에 나섰다.

1400여년된 수니파와 시아파간 갈등이 재연되고 있는 셈이다.

중동을 피바다로 몰고 있는 수니파와 시아파 간 갈등은 약 140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니-시아파 간 갈등은 632년 이슬람교 창시자인 모하마드가 사망한 뒤 누가 후계자가 될 것이냐를 둘러싸고 시작됐다.
한편에서는 모하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 등 직계 혈통을 후계자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지도자 회의에서 적합한 인물을 후계자인 칼리프로 선출하자고 맞섰다.
전자는 ‘알리의 추종자들’이라는 뜻인 ‘시아트 알리’, 또는 줄여서 ‘시아’라고 불렸으며 이들이 현재 시아파의 뿌리다.

후자는 무슬림 공동체(움마)의 순나(관행)를 따르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수니’를 자처해 현재 수니파의 근원이 됐다.
초기에는 회의에서 뽑힌 칼리프가 모하마드의 뒤를 이었다.

아부 바크르-오마르-오스만-알리 등 선출된 4명의 칼리프가 다스린 시대를 ‘정통 칼리프 시대’(632~661년)라고 부른다.
하지만 모하마드가 남긴 유일한 혈육으로 4대 칼리프에 올랐던 알리가 661년 암살되면서 양쪽의 본격적인 분열이 시작됐다.

이후 5대 칼리프 자리에 오른 우스만의 사촌 무아위야가 추대 전통을 거부하고

자식에게 칼리프 자리를 세습할 것을 선언하면서 분열이 본격화됐다.

이 때 무아위야의 지지자들은 '순나'(아랍어 sunnah·관행)에서 비롯된 '수니파'로 불리면서 다수를 차지했다.

680년에는 알리의 차남 후세인이 반란을 일으켰지만 수니파의 견제로 참혹하게 살해당했고

이 소식이 이라크, 이란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종파가 생겨나 발전했다.

이 종파가 세속적 권력 세습에 반대하고 정통 칼리프제를 따르는 알리의 추종세력 '시아파'다.

수니파와 시아파의 또 다른 차이점은 '지도자'를 뜻하는 '이맘'에 대한 다른 해석이다.

수니파에서 이맘은 코란을 독경하고 예배를 인도하는 정도의 사람을 가리키지만

시아파에서 이맘은 알리와 후세인의 후계자이며 코란을 통해 신도들을 빛과 은총으로 이끄는 사람을 뜻한다.

이같은 역사적 배경 때문에 수니파와 시아파는 똑같이 쿠란을 경전으로 삼으면서도

구체적인 교리와 종교의식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전체 이슬람교도 가운데 수니파(85%)가 다수이고 시아파(15%)는 수적으로 열세지만 국가별로 차이가 있다.
수니파는 사우디와 시리아ㆍ이집트ㆍ예멘ㆍ레바논ㆍ파키스탄ㆍ아프가니스탄 등 대부분 이슬람국가에서 다수 종파지만

이란ㆍ이라크ㆍ바레인 등에서는 시아파가 주류인 국가로 분류된다.

양측의 알력과 경쟁관계는 그 시초에서부터 지금까지 폭력적 충돌로 이어지는 경우가 잦았다.
다수인 종파가 소수를 탄압하고 소수 종파는 과격하게 저항하는 형태가 대부분이지만,

이라크 처럼 시아파가 다수 종파임에도 소수 수니파가 줄곧 정권을 잡으면서 시아파가 박해받은 사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