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Peru(2014 Dec)

5-7 구름에 쌓여가는 마추피추

봉들레르 2015. 1. 23. 01:46

마추픽추(늙은 산이란 뜻)는 잉카제국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누가 그 높은 산위에 어떻게 건설 했는지, 언제 망했는지 아직도 자세히 알 수 없다.

찬란한 문화유적은 남겼지만 문자의 기록이 없으므로 의문투성이다.

해발 2400m고지의 성채도시 마추픽추는 궁전 신전 광장 주거지구 관개용수로 등 정확한 도시계획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좁은 돌길 돌계단으로 각 구역을 연결하였고 경사면에는 계단식 경작지가 만들어져있다.

그 높은 곳에 지금도 맑은 식수가 펑펑 쏟아져 나오고 그물은 가뭄도 없이 항상 일정하며

주변에 계단식 밭에서 농작물을 경작하였을 것으로 짐작되는 장소가 상당히 많고

약 1천여 명의 인구가 자급자족하며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1911년 미국인 빙험에 의해 첫 발견되기까지는 수 세기 동안 역사 속에 잠들어있었다.

15-16세기 초까지 남미 중앙 안데스지방(페루,불리비아)을 지배 하고 있던 잉카제국이 1532년 스페인의 프란시코 피사로에게 정복당한다.

남미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소유하고 있는 브라질은 포르투갈이 점령했고

그 외의 남미거의 전역은 스페인의 식민지로 점령당하여 멕시코주변의 마야 문명, 아즈텍문명, 남미의 잉카 문명 등이 모조리 사라지고

가톨릭으로 대체 되어 3백여 년간 식민지로 살다가 2백여년 전 독립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남미에서는 스페인어와 가톨릭이 모든 나라를 지배하는 문화로 현대를 살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잉카인들은 “게으르지 마라.” “도적질 하지 마라.” “거짓말 하지 마라.” 는 3가지 계율을 엄히 지키며 살았고

만약 어길 경우 생매장을 시키는 등 엄히 다스렸다고 하는데 지금도 그런 계율을 지키며 사는 시골이 있다고 한다. .
아즈텍, 마야, 잉카文明들이 찬란한 꽃을 피우고 살았다는 흔적은 지금 우리 앞에 확실히 보여주고 있으나 문자가 없었고

기록이 신통치 않아 알 수 없는 미스터리뿐이다.
마추픽추는 1911년 7월 24일 미국의 젊은 역사학자 하이럼 빙험에 의해 첫 발견되었을 때

현장에는 137구의 시신( 109구는 여자, 7구의 남자미라, 21구의 여아시신)이 있었다고 한다.

빙험은 어떻게 하여 마추픽추를 찾게 되었는가?

1532년에 피란시스코 피사로에게 점령당하여 스페인의 식민지로 전락한 잉카제국은

그 후 망코의 반란으로 스페인에 저항하였으나, 1571년에 진압되고 만다.

그런데 그 망코가 저항했던 최후의 본거지 빌카밤바 요새가 어딘가를 찾고 다니던 빙험이

1894년 루이스와 어거스틴에 의해 마추픽추의 존재가 이미 확인된 기록을 근거로 찾아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추픽추가 잉카제국의 저항지도자 망코의 최후의 요새 빌카밤바였는지는 아직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빙험이 발견 하여 지금까지 아무리 살펴보아도 외부의 침입이나 전쟁 저항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마추픽추는 잉카제국이 건설했는가? 그것도 아니다.

 과학자들이 방사선정밀측정결과를 통해 적어도 B.C. 2천년 이상 된 유적 작품이라는 답이 나왔다고 한다.

잉카제국 건설이 15-16세기 인데 결론은 잉카제국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잉카제국의 수도는 쿠스코였다.

해발 3540m의 고지 쿠스코(현재 비행장이 있는 인구 28만의 도시)는 스페인의 피사로에게 점령당하기 까지

그들의 소관에 마추픽추가 들어있었기로 신전이나 제단으로 사용했을 것이다.

태양제를 지냈던 제단이나 휴양지 정도로 사용만 하였을 뿐 건설과는 상관이 없는 것 같다.

마추픽추의 위치는 천혜의 요새로 보인다. 주변의 산들이 2~3천 미터쯤이고 계곡 깊숙이 들어가야 하며

좌우전역을 살필 수 있는 전망대가 있어 적의 침입을 쉽게 알아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첫 발견 시 세세히 살펴보아도 적의 침공이나 싸운 흔적은 전혀 없고 왜 멸망 했는지 기록도 없고

 건설 연대도 잉카제국 지배 시기와는 맞지 않아 1964년부터 관광객이 들어가기 시작은 했지만 아직도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다.

그렇게 오래된 유적이 현대에 와서 관광자원으로 크나큰 가치를 가지게 되었으며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는 등 날마다 관광객은 줄을 잇고 있다.

이 유적이 오랜 세월 동안 남아있는 이유는 모든 건축물이 단단한 돌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신전이나 궁전 같은 곳을 살펴보면 그 큰 돌을 어디서 어떻게 운반했으며 쌓아올린 정교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모퉁이를 돌아서자 기가막힌 풍경이 펼쳐진다.

셔틀버스를 타고 13굽이를 돌아서 올라온 보람이 있다.

구름에 둘러싸인 안데스가 저 아래 있다

산세를 휘감아 도는 우루밤바강

산 밑에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는 공중 도시. 기록을 남기지 않았던 수수께끼의 제국 잉카(1200~1533)의 하늘 신전.

강가에는 마추피추마을이 보이고

유적을 둘러보면서 구름 아래의 내 발 밑으로 펼쳐지는 거대한 안데스 산맥의 웅장함에 또 한번 압도를 당한다.

산 아래에서는 절대 보여질 수 없는 공간이었으니 이곳을 '잃어버린 공중도시' 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또한 아웅다웅하며 별 것 아닌 일로 마음 상하고 웃기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인간이

이런 대자연 앞에서는 얼마나 보잘 것 없는 나약한 존재인지 문득 한없이 내자신이 작아지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들 덕분에 마추픽추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죽기 전  꼭 가봐야 할 세계 불가사의' 중 한 곳으로 해마다 손꼽힌다.

식량저장소 콜카

 

신비로 가는 길목을 지나자 이제는 마추피추의 우측이 한눈에 들어온다.

현재 보이는 곳은 우측이다

화살표의 입구에서 우측을 보고있다.

 

 

비탈길의 경작지

 

 

우측은 나중에 자세히 보기로 하고 더 올라가기로 한다.

구름이 밀려온다.

마음이 급해졌다. 스리랑카에서 고산지대에서 눈앞에 펼쳐진 차밭을 순식간에 구름이 삼켜버려 셔터를 못 눌렸던 생각이 난다.

구름이 밀려와 마추피추를 다 덮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뛰다싶이 계단을 올라갔다.

구름에 살짝 가린 신비로운 마추피추와의 만남은 환상이다.

이런 광경을 보기위해 지구반대편에 리마까지 24시간

리마에서 쿠스코까지 비행기로 1시간 반, 쿠스코에서 우루밤바 버스로 2시간, 우루밤바에서 오얀타이탐보까지 버스로 40분,

오얀타이탐보역에서 마추피추역까지 1시간 반, 마추피추역에서 셔틀버스로 마추피추입구까지 30분  총 6시간

전체로 치면 30시간 이동을 하여 마추피추를 보게 된 거다.

밀려오던 구름이 마추피추의 최고봉

중앙부근

 

 

구름때문에 신비감은 더해 간다.

 

 

오늘 마추피추를 보는 것만으로도 페루여행은 여한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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