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Peru(2014 Dec)

5-9 마추피추 속살보기

봉들레르 2015. 1. 24. 03:01

 

 

 

 

 

 

 

 

 

잉카인들은 돌을 다루는 데에 있어서는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들은 수십 톤에 달하는 돌을 안데스 바위산에서 잘라내 이 산 꼭대기로 날라 신전과 집을 지었는데,

시멘트와 같은 경화제도 없던 16세기에 오로지 돌과 흙으로만 쌓아 올린 벽들은 면도날도 드나들 틈 없이 정교하다.

양손으로 힘껏 밀어봐도 꿈쩍도 하지 않는 벽을 구성하는 가장 큰 돌은

높이가 8m에 달한다고 하니 그 경이로움은 눈 앞에 두고도 믿지 못할 지경이다

Old city gate 

안으로 들어가서 뒤돌아보면

윗부분에 고리와 중간부분 양쪽에 두개의 홈이 있다.

중간 홈안에는 둥근 기둥이 있어서

아마도 문을 지지하기위한 홈으로 여겨진다.

농지와 경계선(Dry Moat)

화살표 방향이 태양의 신전이다.

태양신전

둥그런 반원형의 건물은 부드럽게 경사가 지고 약간 둥근 외벽은 쿠스코의 태양사원과 닮아있다.

활처럼 자연스럽게 굽은 외벽은 또 하나의 외벽으로 이어져 있다.

특별히 고운 화강암 마름돌만을 골라 매우 정성들여 맞춘 벽은 최고 장인의 작품이다

 물 흐르는 듯한 선, 균형 잡힌 배열, 가로줄의 점진적인 변화가 서로 결합되어

유럽의 그 어떤 대리석 사원보다 훨씬 부드럽고 자연미가 넘치는 미를 함축하고 있다.

모르타르를 쓰지 않은 덕분에 마름돌 사이에 보기 흉한 부분이 하나도 없다.

돌들이 마치 서로 맞물리기 위해 자란 것처럼 물림이 빈틈없이 정교하다.

웅장한 로마의 건축물, 아름다운 인도의 타지마할, 불가사의한 피라미드 등과는 구별되는 세계최고의 석조 건축물임에 틀림없다.

 세계의 어는 문명에서도 이렇게 거대한 바위들을 그토록 완벽하게 조립한 것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큰 바위들을 바퀴나 도르래도 없이 어떻게 옮기고 들어 올렸는지 수수께끼다

태양신전

마추피추를 건설한 엣 잉카 문명은 태양을 숭배하던 민족이 이었다. 그들은 그 옛날 부터 태양력을 사용하고있었다.

마추피추에서 가장 신성시되고 중요한 곳은 바로 이 태양의 신전이다.

생김새는 잉카 최후의 왕국, 쿠스코에 있는 태양의 신전과 흡사하다.

능묘위에는 태양의 신전이 있는데 이 곳은 완벽하게 연마해 놓은 자연석의 큰 바위 위에 세워진 반원형의 구조물이다.

입구 아래쪽에는 둥근 구멍이 몇 개 나있으며 돌 안을 빙글빙글 돌아서 안쪽으로 빠진다.

빙엄은 이것을 ‘독사의 통로’라고 불렀다. 구멍은 돌 속에서 날카롭게 굴절하여 반대쪽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은 넣을 수가 없단다. 돌이 막힐 수도 있으므로 금지되어 있다.

                   

그 안에는 2개의 창문이 있는데 각 구석에 하나씩 총4개의 구멍이 있는데.

하나는 동쪽을 또 하나는 남동쪽을 향해 있다.

이 건물의 지하에는 여러개의 제단이 만들어져 있고 미이라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이곳을 왕의 무덤이라고 한다.  

이 구조물은 안쪽과 바깥쪽으로 가볍게 굽어진 탑이다.

 

 

 

태양의 사원 뒤편에 있는 왕가의 무덤 입구. 겉에서 보기에는 좁아보이지만 내부에는 꽤 넓은 반원형 공간이 있다.

암석에 비스듬히 반쯤 막힌 삼각형의 석실의 중앙에  돌기물이 묘석처럼 나와 있다

커다란 바위 뒤쪽에 위치한 왕가의 무덤은,

잘 다듬어진 좁은 입구와는 다르게 내부는 반원형에 가까운 꽤 큰 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이는 다른 유적지에서는 볼 수 없는 공간개념이라고 한다

벽에 있는 움푹 곳에 미라를 모셨고, 2단의 커다란 제단에는 공물을 놓아둔 것으로 추측한다.

하이럼 빙엄(1911년발굴)이 최초의 발견자라고 하지만 이돌에  새겨진 문장으로 보아 먼저 다녀간 사람이 있었다는 설도 있다.

창을 통해서 비추어지는 풍경으로 계절의 변화를 읽었으리라

 

물거울

마추픽추 유적의 인기 관람코스인 ‘왕녀들의 목욕터’. 뒤편으로 계단식 경작지가 보인다.

콘도르의 신전과 감옥

콘도르(Kondor)는 잉카 문명에서 부활을 상징하는 새이다.

마치 불사 조 처럼 세월의 흐름 속에서 부활하여 자신을 믿는 자들을 불멸의 세계로 데려간다는 콘도르 신앙이 있었다.

마추피추에는 콘도르의 모양을 본따 만든 콘도르의 신전이 있고, 그 밑에 지하에는 감옥으로 사용하였다.

신전 앞에는 콘도르의 부리 모양을 따서 새긴 부조가 있다.

신전 지하에 있는 감옥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콘도르의 날개모양을 형상화하여 조각이 되어 있다.

어둡고 눅눅한 이 지하에서 죄수들은 죄에 따라 독거미에 의해 죽기도 하고 돌 의자를 이용해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였다

 

콘도르 새의 모양

이 돌 의자는 체벌을 주었던 곳인데, 손을 넣고 틀을 채우면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특히 아마케아(게으름 피우지 말라)의 반역 행위에 대해서는 최대의 형벌이 내려졌는데,

며칠 동안 음식물을 주이 않거나, 물을 주이 않아

 가파른 산에서 게으름을 피워 때를 놓치면 모두가 굶어죽기 때문이다 

왕녀의 궁전

왕녀의 궁전으로 불리는 이 곳은 태양의 신전 옆에 지어진 2층짜리 건물이다.

고급스럽게 지어진 이 건물은 왕녀 혹은 태양신전을 지키는 신분이 높은 사람이 살던 집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해시계처럼 아직까지 정확한 그 당시의 용도는 밝혀지지 않았고, 추측으로 궁전이 아니었을까 짐작하고 있다.

 

Royal group

 

 

 

 

 

 

 

 

 

 

House of the Priest

This house is located on the south side of the Plaza,

and Bingham named it the “House of the Priest” thinking that from there the Supreme Priest

would depart to direct the religious acts that would have had to take place in the plaza.

This building is of less architectural quality, with two doors exiting onto the plaza and a series of niches in the interior.

 

 

 

 

 

계단식 밭

계단처럼 끝없이 펼쳐졌다고 해서 붙여진 계단식 밭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계단식 밭은 마추피추 도시 면적의 절반은 차지하고있다.

계단식 밭은 사나태를 방지하고 적의 침략시 방어역할을 하기위해 만들어 졌다고 알려져 있다.

가파른 밭을 오르려면 아무리 계단식이라도 힘들기 때문에 적 방어용이 될 수 있다고 한다.

3000여개의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니 하루 꼬박걸려 올라가도 오르기 힘들듯한 곳이다.

엄청난 규모의 계단이 층층이 있는데 이 곳은 마추피추나 잉카의 길을 연결하는 곳에

약 5천명에서 만명정도의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 곳에서 층층이 농작물을 경작하고 200종 이상의 작물을 생산했다.
정교하게 돌로 쌓아 올린 잉카의 계단식 밭은 오랜시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고 이렇게 건재하고 있다.

 

농업구역 테라스의 지반구조

석벽에 배수구멍을 만들어 물이 토양을 쓸어내리기 전에 90%는 땅밑으로 흡수되게 만들었다.

 

 

Sacred plaza

신전들로 둘러싸이고 도시 지역의 서쪽부분 중앙에 위치한 성스런 광장은 마추피추의 아주 중요한 장소들 중 하나이다.

여기에서 둘러싸인 모든 건축물들이 의식적 성격을 가진 것에 어울리게 예절과 중앙 의식들을 행하였을 것이다.

이 광장의 왼쪽에는 세 창의 신전이 있고 중앙에는 제사장 집, 그 앞쪽 중앙에는 주 신전이 있다 .

이 신전의 오른쪽에는 달 신전의 기초가 있고 여길 약간 지나 오른쪽 즉 주 신전 뒤에는 제단 장식을 위한 큰 방이 있다

돌을 잡기좋게 만든 모양

주신전은 세 창의 신전과 같게도 이 건축물은 단지 세 벽만 있고, 광장쪽으로는 벽이 없다.

측면의 벽에는 다섯 개의 옷장과 같은 감실을 볼 수 있고, 중앙 벽에는 일곱 개가 있다.

이 모든 잘 다듬어진 돌들이다. 이 중앙 벽 앞 아래에는 아주 큰 바위가 있어, 책상이나 주 제단의 형상으로 보여진다.

곧 무너질 것만 같다.

THE PRINCIPAL TEMPLE
Next up is the Principal Temple, a three-sided edifice with huge and cleverly constructed foundations.

Called the Principal Temple because of its size, it has a mini-temple adjoining which Bingham named the Sacristy

as it seemed a likely place for a priest to have collected himself before worship.

At the western end of the temple is a kite-shaped stone embedded in the ground pointing south

and said to symbolise the Southern Cross. Look out for the 32-angled stone in the door jamb on the left.

 

 

THE TEMPLE OF THREE WINDOWS
  
Now we come to the royal sector where Pachacuteq may have stayed alongside other members of the nobility.

The buildings in this district are particularly large with massive rock lintels weighing

as much as three tons, characteristic of imperial Inca architecture.

The Temple of Three Windows, together with the Principal Temple and the Intihuatana, make up what Bingham called the Sacred Plaza.

He believed that the three windows framing the distant mountains - previously five in total - represented

 the three mythological caves from which the Ayar brothers, children of the sun,

stepped into the world. Shards of smashed pottery were found beneath the temple perhaps indicating that pots would have been ritually broken here.

광장의 동쪽에 위치한 단 세 얼굴(벽)의 이 건축물은, 그의 생김세로 볼때, 시선을 동쪽으로 향하여 있어 세 창의 신비스러움을 보여준다.

 이 모든 구조물은 아주 잘 잘려진 돌로 이루어졌고 회반죽이 필요없이 완벽하게 쌓았다

.이 건물의 바깥쪽 그러니까 창들 아래는 많은 도기 조각들이 발견되어

아마도 종교적인 의식들중에 빤차마마(Panchamama: Madre tierra; 땅의 어머니)에게 바쳐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신전의 벽들을 보면 역시 커다란 크기의 돌을 사용했는데, 이 도시에서 아주 드물게 사용된 것이다.

 

공주의  방

 채석장(Quarry)

돌을 자를 때 구멍을 일 열로 뚫고 그 안에 나무를 막고 물을 부으면 나무가 불어 돌이 갈라진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

 건축에 필요한 화강암들은 마추픽추 상단의 채석장에서 가져다 썼다.

무엇보다 거대한 바위를 레고 블록처럼 정교하게 조탁한 솜씨가 놀랍다.

강에서 가져온 단단한 철광석으로 화강암을 다듬은 뒤 수없이 들었다 놓기를 반복해 빈틈없이 짜 맞췄다.
잉카인의 신기에 가까운 돌 다루는 솜씨와 잉카에 정복돼 노예가 된 부족들의 피와 땀이 더해진 결과다.

파차쿠티가 죽은 뒤 황제의 환생을 믿고 마추픽추 조성 노역에 시달리던 잉카인과 노예들은

 스페인 군대가 파차쿠티의 미라를 불태우자 마침내 감옥 같던 마추픽추를 앞다퉈 떠났다고 한다.

 

 

멀리 보이는 양수발전소

 

 

 

 

 마추픽추 뒤로 자리잡은 와이나픽추 봉우리의 능선이 누워있는 잉카인의 초상을 닮았다

 오늘처럼 파란 하늘 대신 낮은 구름이 깔릴 때면 더더욱 그렇다. 우똑 솟은 와이나픽추는 콧대를 나타내고,

오른쪽으로 길게 자리잡은 완만한 봉우리는 너른 이마와도 같다.

 한 맺힌 생애를 살아야 했던 그들의 넋을 위로해 줄 것은 적당한 햇살과

가끔씩 찾아오는 알파카, 그리고 산들거리는 바람뿐이다.

 

THE SACRED ROCK
 This giant flat stone takes on the same shape as the mountain Putucusi that looms behind it.

The small square in front of it may have been where poetry and music recitals took place.

 

 

 

 

 

주광장(Main square)은 여러형태의 건축물로 둘러싸여 있다.

Residential district from Intihuatana.

Houses of the residential area from the central plaza

 

 

 

와이나픽추의 성스러운 봉우리와 닮은 인티와타나 피라미드

인티와타나 피라미드는 이름처럼 피라미드를 닮았다.

인티와타나 피라미드

1.8m의 높이로 잘 다듬어져 있는 이 돌기둥은 마추피추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있으며, 

 

인티와타나

 그 생김새를 통해 후대에 추측하기로는 해시계로 알려져 있다.

인티와타나라는 이름은 해시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큰 돌을 깍아서 만들었다.

인티와나타 신전으로 더 가까이 가면 이 능선의 돌출된 부분이 나오는데 이 것이 해시계이다.

 동지 때 줄을 달아 태양을 묶으려 했던 인티와타나라는 돌이었다.

잉카인들은 천체의 궤도가 바뀌면 커다란 재앙이 생긴다는 믿음에 따라, 태양을 돌에 매달아 놓은 의식을 치렀다.

잉카인들은 태양이 두 개의 ‘의자’를 갖고 있다고 믿었다. 북쪽의 주의자와 남쪽의 보조의자가 그것이다.

태양이 남쪽 의자에 자리 잡을 때인 하지가 한 해의 시작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잉카인들은 인티와타나에 이마를 대면 영혼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열린다고 믿었다.

                  

해시계라는 근거는 네모진 돌기둥의 모를 잇는 대각선을 태양이 동지에 통과한다는 것으로 정확한 근거는 없다.

네 방향으로 돌에 표시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 4방을 표시하던 기구라는 추측도 있다.

아직까지 어떠한 문서로 전확하게 용도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태양을 숭배하던 잉카 문명에서 사용하던 해시계가 가장 유력한 설로 꼽히고 있다.

이 곳은 마추피추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있기때문에 아래로 보이는 전망이 굉장히 아름답다

테라스

왼쪽에 chamber of ornaments

 

 

 

 

Houses of the residential area from the central plaza

 

 

 

 

 

 

 

 

 

잉카는 오래전부터 이 사이펀siphon의 원리(굽어진 유리관을 한 쪽 입구를 물속에 넣고

다른 쪽의 입구를 빨아 일단 용기 위를 넘게 하면 나중에는 저절로 물이 흘러내리게 하는 원리)를 알고 있었다.

물을 퍼 올리는 이 원리를 이용해 돌에 고랑을 파내고 지하용 수로를 만들거나,

나무를 도려내어 관을 만드는 기술을 그들은 이미 터득하고 있었다

Fountain with Three Steps

 

http://www.machupicchuperu.info/machu_picchu_peru_guided_tour.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