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Uzbekistan(2014 Aug)

6-12 루하밧 묘, 울루그벡 천문대

봉들레르 2014. 8. 29. 21:49

 

 

루하밧 묘 (Мавзолей Рухабад)

아프라샵 호텔과 구르에미르 사이에 위치해 있는 티무르 스승의 묘이다.

맞은편의 구르에미르와 비교하면 너무 초라할 정도로 화려함이 없이 단순하다.

묘의 내부 또한 거의 관리가 되지 않아 허술하다.

하지만 어떤이들은 화려하지 않기 때문에 구르에미르 보다 더 자연스럽고 정감이 간다는 사람들도 있다.

가끔 무슬림들이 와서 기도를 드리고 가기도 한다.

티무르의 스승인 세이흐 부르하네딘 사가르지(Sheikh Burkhan ad-Din Sagardji)과 가족들의 묘.

"Rukhabad"는 "House of the Spirit"이라는 의미

사마르칸트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안에서 사진을 찍을려면 돈을 내야한다.

그러나 밖에서 찍어도 얼마든지 찍을 수 있다.

 

 

 

 

 

 

 

 

묘를 나오는 길에 어린애들의 사진을 폴라로이드로 찍어서 주니 너무 좋아한다.

미니버스를 타고 시내 외곽에 있는 천문대로 간다.

 

 

 

 

계단을 올라 작은 언덕에 오르면 오른쪽에 박물관이 있고, 정면에 거대한 천문대 터가 있다.

박물관에는 당시의 관측기구와 울르그벡의 업적과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오늘날의 정밀기기로 계산되어진 항성시 1년은 망원경도 없던 시절에 그가 관측한 시간과 오차가 채 1분도 되지 않는다니 놀라울 뿐이다.

언덕을 내려와 앞쪽으로 나오니 광장에 행성들 궤도가 그려진 가운데 그가 외로이 서 있다. 앞서가는 천재는 늘 고독한가 보다.

 

울루그벡 천문대의 터 (Обсерватория Улугбека)

아미르 티무르의 손자로 사마르칸트의 황금기를 지배했던 위대한 왕이자 학자였던 울루그벡의 천문대이다.

아프라샵 언덕에서 북동쪽으로 약 1km정도 가면 울루그벡의 동상이 보인다.

그 뒤 언덕에 천문대의 터와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현재는 천문대의 기초만 남아있는데,

이전에는 높이가 40m에 이르는 거대한 천문대였다고 한다.

박물관에 들어가면 그때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사진과 미니어쳐가 있으며, 그 시대의 천문관측기기가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서의 관측을 바탕으로 울룩벡은 항성시 1년간을 3656시간 108초로 추측했다.

이는 오늘날의 정밀기기로 계산되어진 3656시간 99.6초에서 오차는 1분도 채 되지 않는다.

망원경도 없는 당시의 기술로 어떻게 이렇게도 정확한 수치가 나올 수 있었을까 놀랄 따름이다.

1,018개 별의 궤적을 기록했던 그의 천문표는 후에 콘스탄치노프에게 도망친 제자에 의해

출판되어 울루그벡의 이름을 널리 세계에 알려졌다.

그의 명성은 역사 속에서 전설로만 전해져오다가 1908년 러시아의 한 고고학자에 의해

땅에 묻혀있던 천문대의 터가 발굴되면서 그 존재가 확실해졌다.

 

 

지대가 약간만 높아도 시내가 잘 보인다.

 

 

공동묘지 쪽

정면으로 보이는 것이 박물관

 

http://www.ulugbekobservatory.parusinfo.com/en/index.htm

 

 

 

 

 

 

나의 실크로드는 사마르칸트까지 이어진다.

 

우즈베키스탄을 국빈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벡 대통령과 함께

울루그벡 천문대를 방문해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별을 관측하던 곳으로

울루그벡은 아미르 티무르 왕의 손자로 훌륭한 천문학자, 수학자, 철학자였다.

그는 레기스탄의 울루그벡 신학교와 천문학으로만 유명한 것이 아니라 천문학교도 만들었다.

울루그벡이 세운 천문학교에서는 당대 유명한 학자들이 후학을 양성했다. 그 중에는

당시 사람들이 플라톤에 버금간다고 칭송했던 울루그벡의 스승 가즈-자데루미와 유명한 수학자 지야시딘
잠쉬드카쉬를 비롯하여 울루그벡의 제자이며 프톨레마이오스라고 칭송받았던 알리-구스지도 학생들을 가르쳤다.

1018개의 별자리표
울루그벡은 1419년 즈음부터 천문학 연구를 시작하여 죽기 전까지 연구를 계속했다. 천문대의 건설에 대한

정확한 자료가 없지만 당시 주고받은 서신을 통해 연구를 시작한 1419년부터 착공하여 1428~29년 사이에 천문대가 세워졌다고 추측하고있다.

울루그벡은 지도자의 신분으로 뛰어난 학자들을 모으고 연구팀을 조직하여 관측활동을 이끌었다.

그리하여 이룩한 업적 중 가장 뛰어난 것이 1437년에 완성한 별자리표 <지즈지 자디디 구라고니>이다

이 별자리표에는 수성, 금성, 화성,목성, 토성, 달을 비롯한 1018개의 별의 위치가 기록되어 있다.

또한 울루그벡은 러시아, 이란, 아르메니아, 이라크, 스페인 들의 지역 683여개의 도시의 위치를 기록했다.

프랑스 천문학자 라플라스가 말하기를 '울루그벡은 사마르칸트에서 별자리표를 만들었다.

이것은 티코브라해(덴마크의 천문학자로 망원경이 발견되기 이전 가장 훌륭한 것으로 인정) 이전의 별자리표 중 가장 뛰어난 것이다.'

라고 하였는데 이 말이 울루그벡의 별자리표의 가치를 증명해준다.

사라진 천문대의 발굴
울루그벡의 사망이후 뒤이은 연구자가 없어 무관심으로 방치되어 천문대의 존재는 희미해졌다.
20세기 초에 들어서자 천문대는 흔적은커녕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게 되었다.

1908년에야 예전 토지문서의 흔적을 발견하여 그것을 실마리로 삼아 고고학자 비아트킨이 천문대 페허를발굴했다.

고고학적인 조사를 끝내고 1914년에 지금 보이는 땅위의 긴 지붕과 입구를 만들었다.
후에 학자의 업적을 기려 천문대 발굴지 근처에 비아트킨의 묘를 세웠다.

천문대의 발굴은 중앙아시아 14-15세기 건칙과 학문이 매우 발달했다는 눈에 띄는 증거 중 하나이다.

학자들은 이 지역에서 발굴된 건축물 중 이 천문대가 15세기 중 가장 뛰어난 건축물이라고 말한다.

천문대를 건설하기에 가장 알맞은 조건을 가진 구학(현재는 추반아타)이라는 언덕 위에 세워졌다

 

뒷쪽

뒷쪽에서 본 내부

저녁을 먹고 메론에 소주를 부어 메론소주를 만들어 마시니 맛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