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Uzbekistan(2014 Aug)

6-10 파란 도시 사마르칸트는너무 더워

봉들레르 2014. 8. 29. 08:31

 

무덤들을 실컷 보고 식당으로 이동

 

우선 시원한 맥주

 

 

오나가나 양코치

 

너무 더워서 호텔로 돌아와 휴식하기로 했다.

호텔 수영장

 

 

호텔에서 쉬고서는 다시 출동

뽕나무 가로수 길

사마르칸드의 중심가는 레기스탄 거리다.

아미르 티무르의 동상이 있는 레기스탄 거리를 서쪽에서 출발해서 동쪽으로 가다보면

티무르의 무덤인 구르 에미르가 있고 레기스탄 광장이 나온다.

여기를 지나서 타슈켄트 거리로 들어서서 걷다보면 비비하님 성원과 바자르가 있고

샤흐이진다 라고 부르는 대영묘, 아프라시압 언덕으로 통하는 길이 연결된다.

아미르 티무르 동상

앉아 있는 아미르 티무르

 

 

 

 

레기스탄 거리에 있는 아미르 티무르동상

거리에는 사마르칸트 대학도 있다.

 

 

 

아미르 티무르

  

우즈베키스탄에는 총 3개의 아미르 티무르 동상이 있다.

하나는 말을 타고 있는 동상은 수도 타슈켄트에 있고,

 서있는 동상은 아미르 티무르의 고향 샤흐리사브즈 오크 사로이에 .

그리고 앉아있는 하나가 티무르제국의 수도였던 바로 이곳 사마르칸트에 있다.

 

잔혹한 정복자 티무르

 

티무르는 이라는 뜻이다. 칭기즈칸의 본명 테무친도 단단한 쇠라는 의미다.

결국 칭기즈칸의 이름을 본 뜬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티무르는 자신을 칭기즈칸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트란속사니아(지금의 우즈베키스탄)에서 작은 부족의 족장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이 지역은 몽골이 세운 차가타이한국(칭기즈칸이 네 왕자에게 분봉한 사한국 중 하나)의 지배 아래 있었다.

당시 차가타이한국은 정치적으로 분열돼 있었고 이 지역의 유목민족들 역시 서로 반목하며 갈등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영웅이 출현할 환경이 조성돼 있었던 셈이다.

티무르는 이 난세에 용병, 강도, 약탈자로서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바꾸며 유목민 부대의 전술과 생리를 바닥에서부터 터득해 나갔다.

 

그는 살벌하고도 잔혹한 현실주의자였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기만, 모략, 배신, 암살, 학살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트란속사니아의 통치자인 아미르 카즈칸이 1357년 사망하자 카슈카르의 칸 투글루 테뮈르가 트란속사니아를 침략(1361)했다.

그러자 티무르는 즉각 테뮈르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그의 신하로 들어갔다.

티무르의 능력을 알아본 테뮈르는 자신의 아들 일리아스 호자를 트란속사니아의 새 총독으로 임명하고 티무르를 호자의 대신으로 중용했다.

그러나 얼마 후 티무르는 호자를 배신하고 트란속사니아의 정복전에 착수했다.

이때 그의 협력자가 아미르 카즈칸의 손자이자 처남인 후사인이었다.

티무르는 후사인과 손잡고 1366년 호자로부터 트란속사니아 정권 탈취에 성공한다.

이어 티무르는 트란속사니아를 손에 넣기 위해 의형제까지 맺었던 후사인을 급습해 암살하고 자신이 유일한 주권자로 등극한다.

심지어 후사인의 부인이었던 사라이를 아내로 취한 그는 사라이는 칭기즈칸의 후예이므로 자신은 칭기즈칸의 사위가 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