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Czech(2013.Aug)

황금빛 라거의 유혹-체코 플젠(Plzen)

봉들레르 2013. 3. 22. 19:41

 

 

1838년 체코 보헤미아 지방 도시 플젠(Plzen)의 시민 광장. 성난 시민의 함성이 광장을 메웠다.

맛없는 맥주에 분통을 터뜨린 시민이 광장으로 몰려나온 것이다. 맥

주가 가득 담긴 6배럴(약 953L)짜리 오크 맥주통 6개가 광장에 등장했고,

시민은 맥주통을 깨부쉈다. 36배럴(약 5720L)의 맥주가 쉭쉭거리는 거품 소리를 내며 광장 바닥을 적셨다.

플젠 관료들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시민양조장 설립에 착수했고, 유럽 각지를 수소문해 맥주 전문가 섭외에 나섰다.

그리고 맥주 역사를 완전히 바꿔놓을 젊은이가 플젠에 발을 디뎠다.

독일 바이에른 출신의 브루 마스터(brew master·양조장) 요제프 그롤(Josef Groll·1813~1887)이 그 주인공이다.

4년의 세월이 흘렀다. 1842년 10월5일, 플젠 시민양조장에선 완전히 새로운 공법의 맥주가 등장했다.

투명한 황금빛, 강한 향과 쌉싸래한 맛을 지닌 최초의 라거 맥주. 바로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의 탄생이었다.

 프라하에서 서쪽으로 90km, 차로 약 1시간을 달려 만난 플젠은 고전적인 아름다움과 회색빛 공장이 공존하는 곳이다.

필스너 우르켈과 체코의 국민 자동차 스코다(Skoda)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플젠을 세로로 질러 흐르는 라부자(Radbuza) 강 옆엔 육중한 성문이 버티고 서 있다.

필스너 우르켈이 탄생한 연도인 ‘1842’가 자랑스럽게 쓰인 이 문이

플젠이 자랑하는 양조장 ‘플젠스키 프라즈드로이(Plzensky Prazdroj)’의 입구다.
양조장 안에 들어서면 또 다른 도시가 펼쳐진다. 19세기 초 설립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공장과 급수탑,

최첨단 시설을 도입한 현대식 공장 건물이 조화롭게 자리 잡고 있다.

중세시대 길처럼 커다란 돌이 깔린 바닥을 밟고 걷다 보면 이 양조장에서 생산하는 맥주를 바삐 실어나르는 트럭을 만날 수 있다.

하루 100만리터(L)씩 생산되는 이곳에서 맥주가 일정한 품질과 맛을 유지하도록 관리하는 장인,

브루 마스터 파벨 프루차(Pavel Prucha) 씨를 만났다. 그는 "필스너 우르켈 맛의 비밀을 알려주겠다"며 발길을 재촉했다.

투명한 황금빛 페일라거(pale lager, 보리와 물, 홉으로 빚은 라이트 맥주) 필스너 우르켈의 특징은 강렬한 풍미에 있다.

알코올 도수로 보면 4.4도, 일반 맥주의 알코올 도수인 4.9~5.0도보다 낮은 편이다.

그러나 쌉싸래하면서도 강렬한 홉(hop)의 향은 맥주 애호가의 입맛을 사로잡을 만하다.

체코의 프리미엄 맥주 시장 90% 이상의 점유율을 자랑하는 국민 맥주의 매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맥주의 풍미를 결정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원료다.

필스너 우르켈이란 이름 자체가 ‘필스너 라거의 원재료(보헤미아 두줄보리, 자츠 효모, 플젠 연수)를 사용해

플젠에서 만들어 낸 맥주’를 뜻할 만큼 원료가 중요하다.


필스너 우르켈은 보헤미아 지방에서만 나는 두줄보리를 사용해 투명한 황금빛을 낸다.

맥주 양조에 사용하는 물은 플젠 지하를 흐르는 연수(軟水, soft water)다.

질산(NO3) 성분이 없어 페일라거 제조에는 최적의 조건이다.

또 한 가지는 자츠(Saaz) 지역에서 나는 홉이다.

다른 맥주보다 유별나게 쌉싸래한 청량감이 바로 이 홉이 내는 풍부한 향에서 나온다.


거대한 구릿빛 탱크에 연수와 맥아를 넣고 끓이는 과정은 요제프 그롤이 고안한 19세기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연수와 맥아를 섞은 ‘매시(Mash)’를 세 번에 걸쳐 섭씨 600도의 높은 온도로 직접 가열한 후

섞으면서 최적의 온도인 섭씨 73도의 매시를 만든다. 절대로 효율적인 방법이 아니지만,

낮은 알코올 도수를 유지하면서도 풍부한 맛을 내는 비법이다

 

양조장에서 직접 만드는 효모(이스트)는 뜨겁게 가열한 원액을 한 김 식히고 나서 넣는다.

원액의 온도가 섭씨 12도를 넘지 않아야 효모가 위로 떠오르지 않고 발효해 투명한 맥주가 나오기 때문.

이것이 발효 맥주인 ‘페일라거’의 원리다. 필스너 우르켈은 섭씨 9도 이하에서 발효하는 옛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특별한 장소로 15년에 걸쳐 만들어진 지하 8m의 인공 동굴 저장고가 있다.

노란빛 사암(sandstone)을 파서 만든 동굴 저장고는

사시사철 섭씨 6도의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 써늘한 바람이 분다.


거대한 오크 맥주통이 줄지어 늘어선 동굴 통로의 끝에 도착하면, 두툼한 옷으로 무장한 직원이

오크통 수도꼭지를 비틀어 따라내는 맥주를 맛볼 수 있다. 효모가 제거되지 않은 ‘생’ 맥주의 맛.

부드러운 거품 아래에서 솟아오르는 기포의 쌉싸래한 청량감이 입 안을 감싼다.

한 잔을 모두 비우면 신선한 맥주에서만 볼 수 있다는 ‘엔젤링’의 흔적이 플라스틱 잔에 겹겹이 남았다.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90㎞ 정도 떨어진 조용한 소도시 플젠은

 매년 8월 말만 되면 뜨겁고 열정적인 도시로 변한다.


플젠에 열정이라는 `마법`을 거는 주인공은 다름 아닌 체코 최대의 맥주축제 `필스너 페스트(Pilsner Fest)다.

매년 8월 말 플젠에서 필스너 페스트가 열리는 순간만큼은 플젠을 넘어 체코 전역을

 `옥토버 페스트`가 열리는 독일 부럽지 않은 곳으로 만들어준다.

체코인들의 맥주 사랑은 일반 사람들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대단하다.

한국인의 식사에 김치와 찌개가 빠지지 않는 것처럼 체코인들의 식사에는 결코 맥주가 빠지지 않는다.

주식으로 먹는 빵과 돼지고기 요리만 봐도 금세 배가 부를 것 같지만

체코인들의 위장은 지치지도 않는지 끊임없이 맥주와 함께한다.
이 같은 체코인들의 맥주 사랑이 그대로 발현되는 것이 필스너 페스트다.

세계 최대 규모의 맥주 축제인 독일 뮌헨의 옥토버 페스트(Octoberfest) 보다는 규모가 작은 것이 필스너 페스트다.

하지만 맥주를 사랑하는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점은 다르지 않았다.

러시아, 슬로바키아 등 동유럽을 넘어 중국, 일본 등 아시아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오는

그야말로 체코를 넘어 세계의 맥주 축제이다.
8월 말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이틀간 우비나 두꺼운 옷 등으로 든든히 무장하고 이곳을 찾은 전 세계 맥주 애호가는

5만1000여 명. 여기에 맥주만 7만8000ℓ에 달한다. 한 사람당 1.5ℓ의 맥주를 마시는 셈이니

1.5ℓ 페트병에 담긴 콜라의 양만 봐도 축제 기간에 소비된 맥주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짐작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필스너 페스트를 찾았다면 할 일은 오직 하나뿐이다.

맥주에 흠뻑 취해 밤이 깊어질 때까지 그 기분에 취해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면 된다

플젠스키 프라즈드로이(Plzensky Prazdroj) 길을 따라 쭉 설치된 생맥주 부스가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부스 근처에 갈 때마다 알싸름하게 전해지는 맥주의 향기가 코를 자극하고

 `카` 하며 곳곳에서 들리는 맥주 넘기는 소리가 절로 지갑을 열게 만든다.

     
이곳에서는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 감브리너스(Gambrinus),

라데가스트(Radegast), 코젤(Kozel)에서 생산하는 맥주를 맛볼 수 있다.

사람들은 한 손에 성인 팔뚝만 한 플라스틱잔, 유리잔 등에 담긴 맥주를 들고 양조장 곳곳을 누빈다.

가격은 500㏄ 맥주 한 잔이 35코루나(체코 화폐 단위)에서 50코루나로 우리 돈으로 2000~3000원 정도다.

그 옆으론 각종 먹을거리 노점에서 기다란 막대에 둘둘 말아

숯불로 구워내는 체코 전통 도넛인 ‘트르들로’,

 빵 반죽을 기름에 튀겨내 소스를 주는 체코식 피자 ‘랑고스’,

 

맥주와 찰떡궁합인 각종 소시지와 돼지고기 요리 냄새가 진동한다.

 체코 음식뿐 아니라 터키식 케밥, 중국식 볶음 국수도 인기를 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단순히 맥주를 마시고 취하는 일뿐이라면 굳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플젠을 찾을 이유가 없다.
맥주 애호가들이 이곳을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따로 있다.

축제 기간에 효모가 살아있는 상태 그대로 맥주의 맛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효모야말로 필스너 우르켈이 체코를 넘어 전 세계로부터 사랑을 받는 비결이다.
효모를 제거한 맥주가 부드러운 목넘김과 다소 달콤한 맛을 강조한다면

효모가 그대로 보존된 맥주는 좀 더 진한 맛으로 미각을 즐겁게 해준다.

맥주 본연의 맛을 즐기기 위해 필스너 페스트를 찾는 것이다.


이곳에서 맥주를 즐길 때 유념해야 할 부분은 맥주를 따라줄 때 거품이 많다고 불평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체코 사람들은 생맥주에 적당한 거품이 없으면 항의를 한다고 한다.
체코 맥주의 상징이자 자존심과도 같은 하얀 거품은 입천장과 식도를 타고 넘어가며 마시는 이를 금세 한 모금을 더 들이켜게 만든다.

이와 함께 맥주 거품은 맥주 표면이 직접 공기에 닿아 산화되지 않도록 돕는 역할을 하니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체코인들의 이 같은 맥주 사랑의 중심에는 1842년 10월 탄생한 필스너 우르켈이 있다.

라거(Lager) 맥주의 효시로 알려진 필스너 우르켈은

이전까지 생산되던 에일(Ale) 맥주를 대신해 세계 맥주의 판도를 바꿔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짙은 색의 에일 맥주 대신 투명한 황금색과 가벼운 맛이 특징인 라거 맥주는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맥주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필스너 우르켈의 라거 맥주가 탄생하지 않았다면 지금 마시는 맥주가 어떤 맛인지 쉽게 장담할 수 없는 셈이다.

  
맥주 문화의 `성지(聖地)`답게 필스너 우르켈은 또 하나의 `맥주 혁명`을 이끌어냈다.

바로 불투명한 나무컵 대신 지금처럼 유리잔으로 마시는 방법이 생겨난 것이다.

 유리잔 맥주는 라거의 황금빛에 반한 플젠 시민들이 맥주 색깔을 더욱 잘 감상하면서

미각뿐만 아니라 시각 또한 만족시키기 위해 탄생했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야외 무대에 설치된 밴드 공연과 각양각색의 불꽃놀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록 밴드의 음악과 화려한 불꽃을 즐기다 보면 자정이 훌쩍 넘는다.

각종 게임 부스가 마련된 가운데 가장 화제를 모은 코너는 필스너 우르켈을 마시기에 최적의 조건에 맞춰

맥주를 따라내는지 겨루는 ‘마스터 바텐더(master bartender)’ 경연대회다

플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