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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현지 대중교통 즐기기

봉들레르 2010. 1. 5. 09:28

배낭여행을 나가 보면 현지에서 즐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대중교통임을 알 수 있다. 대중교통을 통해 현지인들과 섞여 곳곳을 다니며 그들과 교감하고 우리와 다른 교통시스템을 접하는 것은 현지인들의 삶의 방식을 일부나마 깊숙히 볼수 있는 매우 중요한 통로이며 그 자체만으로도 즐기기에 더없이 좋다. 이 것은 패키지를 통한 여행에서는 절대 느끼거나 체험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배낭여행중 대중교통(여기서는 대중교통에 택시는 제외함)을 현지인들과 함께 이용하다 보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쉬지 않고 발생한다. 몇 몇 가지 사건들은 함께 다녀온 사람들과 그 때를 이야기하며 맥주잔을 기울여 웃을 여유를 주곤 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함께 겪었던 사람들과 함께라면 몇 번을 회자해도 결코 실증나지 않는다. 때로 혼자서 과거를 회상하고 미소짓다 보면 주변에서 이상한 눈으로 보지만 그러면 또 어떠리.

현지에서 이용하는 대중교통에는 단거리 이동수단인 시내버스, 지하철, 전차 등과 장거리 이동수단인 선박, 기차 시외버스나 고속버스 등 가장 일반적인 교통수단 외에도 두바이에서 볼 수 있는 선박택시, 인도의 오토릭샤(오토바이를 개조해 택시처럼 이용되는 탈것)나 태국과 캄보디아의 툭툭(명칭만 다르고 인도의 오토릭샤와 비슷한 형태), 마다가스카르의 뿌스뿌스(인력거), 이집트의 용달택시와 마차같은 도시 특색을 보여주는 특수한 교통수단에 이르기까지 즐겨볼만 한 것은 무궁무진하다. 같은 대중교통이지만 내가 시내 이동에 택시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현지인과의 교감기회가 상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두바이의 수상택시)

 

                                                 (룩소르와 아스완에서는 마차도 이미 대중교통으로 자리를 잡았다)

 

 

배낭여행을 다니면서 이따금은 부득이 현지 패키지를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나도 현지에서 패키지를 이용해 본 적이 몇 번 있다. 카파도키아 남부의 지하도시,  우흐라라 계곡, 카라반서라이 등의 각종 유적들은 각기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 대중교통편이 드물어 운신이 어려운 경우였다. 이 경우는 차라리 패키지를 이용하는 것이 여러 모로 저렴하고 편리하다. 시리아에서는 하마에서 만난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일부러 패키지를 이용한 적도 있다. 또, 이집트의 아부심벨을 보기 위하여는 아스완에 숙소를 두고 장거리를 이동하는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여행사를 통해 가는 방법 외에는 금지되어 있고 갈 방법도 달리 없 때문이다. 이집트에서는 일부 외진 유적지를 갈 때 콘보이라는 경찰호위대의 보호하에 집단 이동을 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인데 다른 곳은 슬쩍 개별로 출발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내가 아는 한 유독 아부심벨만은 그러하다. 그러한 경우가 아니라면 내겐 버스나 지하철이 가장 좋은 수단이다.

 

카이로에서도 많은 여행사가 피라미드 순회관광 패키지를 운영하며 고객을 끌어모으고 이다. 거의 대부분의 배낭여행자들도 현지에서 이 패키지를 이용한다. 보름간의 기간을 두고 여행중이던 나는 이제 여행의 끝자락에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동안 사막여행도 좀 다녀와야겠고 카이로 시내는 아직 보지 못한 곳이 본 곳보다 많았다. 일정상 내겐 피라미드를 볼 수 있는 날이 이 날 하루 뿐이었기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은 초기형태의 피라미드들까지 다 보기 위해 패키지를 이용해야 할지 그냥 대중교통을 통해 다닐지를 결정해야 했다. 초기 현지 패키지를 이용하자니 나의 취향상 여행이 재미없어지고, 스스로 교통편을 찾아 다니며 많은 시간을 들여 다니자니 초기 형태의 피라미드들 많이 놓칠수밖에 없었다. 결국 하나를 보더라도 제대로 보자는 결론에 대중교통편을 선택했다. 대중 교통으로 찾아 다니되 목표는 기자의 3대 피라미드, 샤카라 피라미드 및 멤피스의 람세스 거상까지 보는 것이었다.

카이로의 숙소에서 일찌감치 아침을 먹은뒤 대중교통을 이용해 찾아간 기자의 3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모두보고 후문을 나선 것은 오후 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우리는 피라미드의 중기 형태로 계단식으로 지어진 샤카라 피라미드를 보러 가기 위해 교통편을 알아보았다. 이 곳에선 교통편이 없어 대로가 나올 때까지 아이스크림을 사먹어 가며 한참을 쉬엄쉬엄 걸어서 갔다. 대로변에서 버스를 타고 그리 멀지 않은 마리오테야에서 내려 샤카라로 가는 미니버스로 갈아탔다. 이 버스로 갈 수 있는 곳 샤카라 피라미드 유적지의 근방 어느 한 지점까지는 30분 이상이 소요되었다. 동승자들은 여간해서 외국인들이 타지 않는 이 버스에 동양인들이 올라탄 것이 무척 신기한 눈치들이었다.

 

                                                 (마리오테야를 떠나 샤카라를 향해 가는 시외버스 내부)

 

어느 지점에 도달하니 승객 모두가 버스에서 내렸다. 종점이거나 반환점인 모양이었다. 나와 동승했던 한 이집션은 이 곳에서 내리라고 말해 주고는 버스 기사와 뭐라고 이야기를 나누더니 우리가 원하면 이 버스로 샤카라피라미드 매표소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했다. 정규노선의 버스가 노선으로부터 이탈해 불법 영업을 하겠다는 속셈이었다. 물론 그는 우리와 버스기사의 중간에서 커미션을 챙길 심산이었겠지만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리고는 버스를 갈아타려고 현지인들에게 샤카라 피라미드를 찾아 가는 법을 물어보려 했지만 이 시골 깊숙한 곳에 영어를 하는 사람은 없었고 이들은 피라미드라는 단어가 없는지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현지어로 피라미드가 뭔지 알 수가 있어야 말이지... 근처에서 경찰을 찾아 가는 길을 물었다. 일러준대로 버스를 타고 조금 가다 보니 5분이나 갔을까. 다시 내려 갈아 타란다. 우리는 이 곳에서 인도에서 타 본 적이 있는 오토릭샤 같은 교통수단(오토바이를 개조해 2-4인승으로 개조하고 천으로 지붕을 씌운 탈것)이 몇 대 눈에 띠었다. 이걸 수배하려고 시도해 봤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바가지를 씌우려고 했다. 할 수 없이 다시 버스를 기다렸다. 그 곳에서 조금만 가면 될테고 당시 시간이 오후 3시도 안되었으니 문닫는 문제때문에 못 볼 가능성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어쨋든 조금 기다리니 버스가 또 왔다. 역시 얼마 안가서 또 내리라고 한다. 거기서부턴 걸어가야 한다는거였다. 거기서 30분 정도는 걸어서 들어가야 하며 교통편은 없다고 했다. 우리가 걸었던 이 길은 개별 여행자가 오는 일이 거의 없는 탓에 관광버스 외에는 다니는 차가 아예 없었다. 우리는 쭐레쭐레 걸어서 들어갔다. 입구에 도착할 때 까지 길 좌우에는 야자수가 빼곡히 늘어서 있고 드문드문 농가가 있어 무척 목가적이고 평화로워 보여 한적한 거닐음의 여유를 즐길수 있었다. 그 때 보았던 주변경치와 평화롭고 조용한 시골마을(이따금 관광버스만이 이 곳의 정적을 깨곤 했지만)의 정경을 잊을 수가 없다. 입구에 도착해서 매표소 쪽으로 걸어들어 가는데 멀찍이 모래언덕 너머 샤카라 피라미드가 보였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아니, 원래 있던 문제를 우리가 뒤늦게 알게 된 것이었지만... 매표소도 정문으로부터 걸어서 10분 가까이 소요될 거리에 있었고 매표소로부터 피라미드를 향해 길게 우회하는 도로를 보니 심란한 생각이 들었다. 이 곳에서 피라미드까지는 걸어서 20분 이상은 족히 될 거리로 보였다. 한 경찰이 우리를 도와준답시고 표를 사느라고 대기중인 관광버스 몇 대를 돌아다니며 총을 맨체 우리를 태우고 가라고 꼬시고 다녔다. 완전 시키지도 않은 이 오버친절은 박시시(팁과 동냥의 중간쯤 되는 개념)를 우리에게서 받아내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우리도 바보가 아닌 이상 남의 관광버스에 염치없이 빈대붙어 눈치보며 관광할 생각은 눈꼽만치도 없었다. 우리는 "당신 도움은 필요 없다"고 말하고 표를 사러 갔다. 그 때 시간이 15:00였다. 문제는 16:00면 모든 관람이 종료되므로 15:30분까지 보고 나와야 한단다. 결론은 30분 내로 보고 나와야 하는데 표를 사서 걸어 들어가는데만 30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피라미드 앞에 도달하자마자 나와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당초 버스에서 내렸을 때 택시를 잡든지 아님 인도에서 본 툭툭이 같이 생긴 교통편으로 아예 수배를 했으면 충분히 보고도 남았다. 여기까지 와서 멀찍이 모래언덕 너머로만 보고 가는건 섭섭하긴 했지만 여기까지 찾아 오면서 시골풍경과 서민들의 삶의 모습을 보며 다닌 것은 피라미드를 보는 것 이상으로 즐거운 체험이었다. 우리는 그냥 가기 섭섭해서 근처의 야외카페를 찾아 홍차와 주스를 마시면서 여기까지 오느라고 지친 몸을 달랬다. 충분한 휴식 후 우리는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섰다. 이 때 본 목가적인 농촌 풍경과 양떼를 능숙하게 몰고 가는 어린 소년의 모습 등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샤카라 피라미드는 내부는 보지 못하고 멀찌감치서만 보았고 멤피스는 아예 가보지 못했다. 사실 멤피스는 단지 목표의 하나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날 일정은 찾아가는 과정들과 호텔로 돌아가는 여유로운 거닐음이 너무나도 느낌이 좋았다. 진짜 재미있는 일은 대로로 거의 나왔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 곳에도 일단의 경찰이 있었다. 한 젊고 덩치 좋은 경찰이 우리에게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우리는 이미 갈길과 교통편을 알고 있다고 대답하고는 고맙단 말을 한 뒤 길을 건너려 했다. 그도 오버친절을 보이기 시작했다. 자기를 따라 오란다. 나는 그럴 필요 없다고 했더니 자기가 앞서 길을 건넜다. 여기서 버스를 타란다. 고맙다고 했더니 어디서 왔느냐는둥, 구경 잘 했느냐는 둥 미심쩍은 오버친절이 계속되었다. 이집션들의 근성을 익히 알고 있던 나는 가급적 그를 외면하려고 했다. 그는 내게 "버스 요금이 얼마인지 아는가"를 물었다. 안다고 했더니 1인당 2파운드라고 했다. 1파운드인거 이미 알고 있다고 했더니 그가 2파운드라고  우기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가 알든 모르든 목적하는 바가 있어 계속 우긴 것이었다. 그제서야 그가 노리는게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수 있었다. 조금 있자니 미니 버스가 한 대 왔다. 행선지 표시가 없는 미니버스이니 기사에게 물어봐야 했다. 버스가 서기도 전에 경찰은 우리가 알아보기도 전에 내게 '이 버스를 타라'고 했다. 그를 외면한 채 우리가 버스에 올라 타자 그 경찰은 운전석 창가로 돌아 운전기사에게 아라빅으로 뭐라고 뭔가 수작을 걸었다. 운전 기사는 얘기를 다 듣고는 경찰에게 2파운드를 내줬다. 웃음이 나왔다. 안봐도 비디오다. '야! 지금 막 버스에 올라탄 어리버리한 동양인들한테 버스비가 1인당 2파운드라고 내가  사기를 쳐 놨거던. 쟤네들한테서 부수입 5파운드를 올릴 수 있도록 조치해 놓았으니 나한텐 2파운드만 내 놔라.' 했을테지. 마리오테야에 도착한 우리 일행이 버스에서 모두 내리고 난 뒤에야 나도 내리면서 운전기사에게 5파운드를 주었다. 짐작했던대로 1인당 2파운드가 요금이니 5파운드를 더내라고 했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라 버스 문을 지그시 닫고 외면해버렸다. 그는 뭔가 아라빅으로 떠들며 우릴 붙잡으려고 했다. 우린 버스 진행방향하고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걸었다.  혼잡한 거리에서 차를 끌고 우릴 따라 올수 도 없는데다 우리가 반대 방향으로 안면 몰수하고 걸으니 제가 어쩌랴. 그는 생돈 2파운드만 날렸지만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도 없었을터다. 그 경찰은 우리가 요금을 정확하게 알고 있으니 속아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을테지만 그는 자신의 목적만 달성하면 될 터였고 결국 사기는 운전기사 혼자 당한 것이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인도에서 경험했던 여러 차례의 기차여행중에 있었던 에피소드들 중에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많다. 인도의 기차는 내가 갔을 때만 해도 도착시간과 출발시간을 절대로 지키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떠한 안내 방송이나 안내판도 없어 기차타기가 가장 어렵고 불편하기로 악명이 높다. 한 두 시간 기다리는건 애교로 통하고 세시간을 넘게도 기다려 봤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항상 연착이고 언제도착할 지 알 수 없다. 누가 어느 기차를 타든 제시간에는 못타고 제시간에는 절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다는 것만큼은 틀림없다. 방송이 없다고 넣놓고 있다 보면 기차는 도둑처럼 들어왔다가 승객과 짐을 실은채 나만 왕따시키고 어느새 휙 가버린다. 이러면 정줄놓이다. 희안하게도 인도인들은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척 하는 경우가 많아 누군가에게 무언가 물어보고 아는척 한걸 믿었다간 속이 뒤집어지는 후회를 할 수도 있다. 믿을건 자신밖에 없다. 오죽하면 배낭여행 선수들이 마지막으로 가는 곳이 인도라는 말이 나올까. 어마어마한 인도대륙 내에서 기차를 이용한 도시간 이동은 대부분 침대칸에서 자면서 가는 것이다. 내가 만난 두 명의 여학생 배낭여행객들은 기차를 놓쳤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이 상황은 생각보다 좀 심각하다. 이 때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다. 역에서 나가지 말고 당일 목적지행 기차가 더 있는지 모르겠지만 기차를 기다렸다가 다음 기차를 타고 가는 것. 여행자들이 이용하는 이 열차칸은 영화에서 보는 각방의 침대칸이 아니고 객차내 좌석 전체가 침대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통로도 한 사람 간신히 지나갈 정도라 좌석이 없으면 엉덩이는 고사하고 발바닥 붙이고 서 있을 곳도 없다. 통로에 있다 보면 화장실 가거나 바람쐬러 나가는 선망의 대상들에게 밤새도록 잠 못자고 길을 비켜 줘야 한다. 통로가 아니라면 삼삼오오 칠칠팔팔 옹기종기 차간 연결공간에 모여 새우잠을 자는 무임승차자들과 함께 가야 한다. 특히 북부의 인도는 말할 것도 없고 중부 인도의 겨울도 제법 추워서 차간 공간으로 엄습해 들어오는 거센 바람에 대항해 체온을 유지하는 방법은 병아리들이 그러듯이 서로 포개고 자면서 가는 것이다. 자그마치 10시간 안팎을 말이다. 문제는 이들 무임승차자 대부분이 풍기는 냄새만으로도 잠못 이룰 노숙자들이거나 하층민들이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종교상, 사회관습상 여자를 가까이할 수 없는 힌두교도와 회교도들만이 즐비한 이 땅에서 여학생들이 여기에 섞여서 잔다? 어딜가나 뻔뻔하게 적응 잘하는 남자인 나도 끔찍하다. 나머지 다른 방법은 플랫폼을 벗어나 밖으로 나가 언제 자리가 생길지 모르는 좌석을 얻기 위해 여행사나 기차역을 쉬지 않고 들락거려야 하는데 표가 언제 생길지 장담할 수 없다. 재수 없으면 그 도시에서 다음 도시로 넘어가기 위해 며칠을 무위도식하며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실제로 오르차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두 명의 남학생 배낭여행객들은 기차표를 구하지 못해 3일째 숙박비와 밥값을 축내가며 지겹게 연속되는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물론 하는 일이라곤 무위도식 뿐인데 없는 없는 돈을 절약해야 하니 배불리도 못먹는다. 그들을 만난 그 날도 보장은 없지만 기차역으로 한 번 나가 봐야겠단다. 돈 좀 있는 여행객들 같으면 시간이 아까와서라도 택시를 대절할테지만 돈없는 학생 신분이니 엄두도 내지 못할 상황임은 뻔하다. 히치하이크는 생각도 못하고 있는듯했다. 현지에서 이런 일들을 보지 못하고 온다면 진정 그 나라를 다녀왔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바라나시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들)

 

인도에서는 외국인들을 신기하게 본다. 식민지를 겪어 시큰둥한 백인들보다는 동양인들에 대한 호기심이 더 강하다. 대중교통을 타고 어딘가를 가다 보면 누군가 반드시 말을 걸어온다. 이상하게 생각할 것도 없다. 그들은 단지 외국인과의 대화를 원할 뿐이다. 버스 안에서도 기차 안에서도 앉아있다 보면 대화상대가 생긴다. 장거리 열차여행을 하던 사람들 중 사촌형제들과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우리를 위해 민요도 직접 불러주었고, 심지어는 황송하게도 짜이(밀크를 넣고 끓인 홍차)까지도 우리에게 대접을 했다. 그들 일행중에는 초등학교에나 갖 입학했을법한 어린 소년도 한 명 있었는데 이 소년은 우리 일행중 한 명이었던 경은이를 쳐다도 못보고 부끄러워 하는 모습을 보고 모두가 웃으며 놀려대던 기억도 생생하다.

 

시리아 홈즈에서 십자군의 성채인 크락 데 슈발리에를 보고 알레포로 이동하기 위해 홈즈로 다시 돌아가던 때의 일이다. 내가 크락 데 슈발리에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세시경이었고 홈즈로 돌아가는 막차는 오후 4시였으니 내게 주어진 시간은 1시간 정도였다. 성채를 빠짐없이 둘러 본 나는 늦지 않게 성을 나와 막차인 4시차에 올라탈 수 있었다. 문제는 나 외엔 아무도 이 차를 타려는 사람이 없었다. 버스 안에서 20분정도 기다렸지만 홈즈로 가려는 마을 주민도, 성을 보고 나서 홈즈로 돌아 가려는 여행자도 없었다. 하긴 올 때도 나 외엔 모두가 현지인들이었고 여행자는 없었다. 운전기사가 내게 말했다. '더 이상 올 사람도 없고 하니 나는 이 곳에서 집이 멀지도 않은 관계로 홈즈까지 갈 이유도 없다. 당신이 원한다면 500SP만 받고 홈즈에 데려다 주겠다'나. 다른 방법을 취할 망정 이런데 넘어갈 내 고집이 아니질 않던가. 나는 거절하고 차에서 내렸다. 운전기사는 차를 끌고 따라 다니며 어떻게 가려느냐고 묻는다. '당신 알바 아니니 당신 길이나 가라'고 했더니 '여기서 고속도로로 걸어 나가는 것만 해도 엄청 시간이 걸릴 것이고 택시도 없다. 설사 택시가 있어도 돈은 엄청 깨진다. 500sp만 받을테니 올라타라' 고 계속 나를 꼬시려고 노력했다. 나는 내키지 않는 거래에서 상대의 요구를 모두 들어줘 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히치하이크라도 시도해 볼 생각이었다. 내 계획에서 벗어나긴 하겠지만 정 안되면 남들이 묵지 않는 이 시골 촌구석에 민박같은걸 해보는 것도 굉장한 좋은 체험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최고의 방법은 당장 홈즈로 가서 알레포행 버스를 타는 것이다. 희안하게도 항상 운이 따라 주는지 여행중 수시로 겪는 거래에서 내가 고집을 피워 실패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이 번에도 왠지 내 고집이 통할 것 같았다. 날은 점점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차를 끌고 그냥 빈 차로 가자니 넘 억울한 생각이 들었는지 뒤에서 시동건채 길길거리던 세르비스(세르비스는 중동지역 교통편의 하나인데 나라마다 개념이 조금씩 다르지만 합승차량의 개념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운전자는 '내가 가는 코스까지만 데려다 줄테니 300sp만 내라며 타란다. 일단 탔다. 나를 내려 주겠다는 그 곳에서 홈즈가 가까운지를 물었다. 그 곳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20분정도는 가야 한단다. 내가 미쳤냐 반정도 가서 300파운드나 내라고 이 잡놈아. 내릴테니 세워달라고 했다. 그는 내려줄 생각은 안하고 계속 나를 꼬셨다. 바로 그 때 누군가 현지인 한명이 이 버스를 세우더니 당장 홈즈로 가야겠단다. 상황이 급반전되었다. 250씩 내고 홈즈 가라즈까지 가기로 했다. 이게 왠 쾌냐. 내 이럴줄 알았다니깐. 키득키득.

 

                                                      (크락 데 슈발리에 앞에서 승객을 기다리는 홈즈행 세르비스) 

 

그런데 막상 급해서 250파운드를 내고 타겠다며 올라탄 이 아찌 막상 돈내려니 억울했던가 보다. 영어도 못하는 놈이 내게 아라빅으로 뭐라고 뭐라고 떠든다. 뭔소리냐고 기사에게 물었더니 내가 300파운드를 내고 제가 200파운드만 내면 안되겠냔다. 그야말로 팔일동안 삶은 호박에 이빨도 들어가지 않을 조낸 쉰소리다. 나는 못들은척 했다. 담배 절은 냄새를 풍기며 자꾸 치근덕거리는걸 모른척했다. 보아하니 넌 돈도 좀 있는 사람이니 조금 더내는게 좋지 않겠느냔 소리만 계속 하는 것 같다. 못들은 척 계속 왜면했더니 그냥 포기한다. 처음부터 250파운드를 낼생각은 없었고 일단 올라탄 뒤 수작을 걸을 참이었던 것 자체가 괘씸하고 밉살맞았다. 나중에 내릴 때쯤 되니 운전기사에게 200파운드만 내겠다고 떼를 쓰는 모양이다. 운전기사하고 싸움이 붙었다. 모른척했다. 둘 다 조낸 끈질기다. 흠좀무. 나중엔 내가 지겨워서 "걍 200만 받으시죠. 나머진 내가 내리다." 했더니 이건 경우가 아니라며 그럴 필요 없다며 기사는 계속 그 승객과 싸웠다. 결국 인심은 인심대로 잃은 얌체승객 KO패. 잘가라 이 멍충아. 기사는 약속대로 나를 가라즈(터미널)까지 데려다 주고 돌아갔다. 가라즈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곧바로 알레포로 가는 버스표부터 샀고 그 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 일 역시 두고두고 웃음나오는 사건이다.

 

여행중에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 하나 하나가 소중하게 남게 마련이다. 여행중에 방문한 곳의 유적과 문화도 중요하지만 현지인과의 만남 역시 그 이상으로 비중이 크다. 대중교통은 현지에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중요한 방편 중 하나이다. 버스 안에서 거지와 대화 아닌 대화도 나눠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경험이 어떤건지 모른다. 지하철 안에서 살짝 맛 간 아저씨가 일으키는 작은 소동을 직접 체험해 보지 않고는 역시 그 재미를 알 수 없다. 회교권에서의 지하철 여성칸이나 버스 안의 여성구역도 미처 알지 못해 들어갔다가 생기는 에피소드도 재미가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황당한 일들도 겪곤 한다. 당시엔 황당한 경험이었지만 산토리니의 택시는 예약하지않으면 이용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미코노스로 떠나기 위한 선박 출항시간이 임박해서야 알았고 결국 배를 놓치는 실수도 경험했다. 이러한 악몽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현지 조사를 좀 더 철저하게 할 필요가 있다. 당시엔 악몽이었지만 이러한 악몽도 대중교통 이용은 두고두고 추억거리가 될 수 있다. 무한한 재미를 주는 현지의 대중교통. 택시(택시도 대중교통이지만 ^^;)나 현지투어도 좋지만 현지의 대중교통은 최대한 즐겨보길 권한다.

출처 : 코렐리 일기장
글쓴이 : 코렐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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