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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배낭여행중 발생하는 상황에 대한 대처 1

봉들레르 2010. 1. 5. 09:24

단체여행과 달리 배낭여행을 다니다 보면 가끔씩 반갑지 않은 크고 작은 일들을 겪게 된다. 그러한 일들을 겪었을 때 짜증 나거나, 화 나거나, 당황하거나 때로는 위기상황이 될 수도 있다. 많은 경우 신속한 판단과 대처가 필요한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현지에서의 발생가능한 일들을 미리 체크하고 현장에서 이러한 일들을 접했을 때 신속하고 정확한 대처에 도움이 되도록 정보를 습득해 두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현지 대사관과 영사관 연락처를 확인해 언제 어느 때라도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메모해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은 상황에 대비하는 가장 기본이 된다.

 

1. 소매치기

나의 첫 해외여행은 1998년 마다가스카르 방문이었다. 사실 이 여행은 배낭여행도 아니었고 한 친구의 초대를 받은 형님을 따라 나선 여행이었다. 수도인 안타나나리보 도착 첫날 숙소에 짐을 놓고 단촐한 가방을 새로 꾸려 시내 복판으로 나가 보았다. 나가자마자 세 명의 소년이 배가 고프다며 구걸을 했다. 도착한지 얼마되지 않고 이제 막 환전을 한지라 당시 내겐 잔돈이 없었다. 가장 큰 단위의 지폐만 갖고 있어서 그들에게 선의를 베풀 상황은 아니었다. 집요할 것 같던 그들이 귀찮아하던 내게서 쉽게 떨어져 나가자 나는 부쩍 의심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가방은 이미 열려 있고 지갑은 없어졌다. 그들도 어느 골목으로 사라졌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세 명의 소년은 조직적으로 내게 들러붙어 한 명은 어깨에 매고 있던 가방으로부터 나의 집중을 분산시켰고 그 중 또 한 명은 나의 시계에 제한을 주었고 나머지 한 명은 그 사이 지갑을 빼간 것이었다. 첫 해외여행 첫날 이러한 일을 겪으면 기분이 좋을리 만무하다. 다행이 돈은 여기저기 분산해 보관한데다 지갑 안에는 5만원 상당의 돈 외에는 없었고 여권이나 중요한 문서는 따로 몸에 지니고 있어 금전적 손해만 보았을 뿐 무언가 없어져서 당황한 일은 없었다. 이런 경우는 그들을 쫓아내려 하기 보다는 먼저 도망치듯 피하는 것이 상책이고 만일 내가 그랬듯이 눈뜨고도 당했다면 여행을 망치지 않기 위해 신속히 일을 수습하고 잊어버리는 것이 차선책이다. 돈을 여기저기에 분산 보관하고 누군가 버스 안에서 가방을 뒤지거나 주머니를 뒤질 수 있다는 가정하에 지갑에는 그 날 쓸 돈만 넣고 다니되 뒷주머니 보다는 앞주머니에 넣고 배낭 속에 보관하는 돈은 나만의 은밀한 장소나 남이 생각도 못하게 내의나 수건 안에 말아 넣는 것이 좋다. 일부는 상의 안주머니에 넣는 등의 신경만 쓰면 주머니의 안전도는 무척 높아진다. 

 (엘리펀트섬의 춤추는 시바)

 

인도 아우랑가바드의 시장길을 걷던 도중 겪었던 일이다. 세 명의 불량 소년을 만났는데 그 중 한 명은 자전거를 끌고 나를 따라 다녔고 나머니 두 명은 나를 따라 걸으며 자신들은 한국인들을 좋아한다며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손아귀에는 팔려는 물건도 없었고 무언가 내게 상행위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직감했다. 나는 이미 마다가스카르에서의 경험이 있어 바짝 경계를 했다. 나는 매고 있던 가방끈을 반대편 목 너머에 걸어 경계심을 표하고 가방에 손을 대고 긴장했다. 여차하면 가방을 잡아채 달아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소년들은 가방을 열고 있었다. 가방을 열려는 시도가 들통났음에도 그들은 태연했다. 내게서 뭔가 얻지 않으면 가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그들은 내게 일행이 있음을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앞서가던 일행을 큰 소리로 불러 세웠다. 그러자 일행 뿐 아니라 모든 시장 대로를 오가던 모든 시선들이 내게 집중되었다. 나는 일행들을 불러 당장 오라고 소리쳤다. 그들은 그제서야 내게서 떠나갔다. 그 때 느낀 것은 혼자 길을 가다가 이런 류의 사람들을 만나면 주변의 시선을 끌고 아무나 붙잡고 아는척을 하면 안전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론 이러한 경험을 해 본 적이 없지만 나름 여행중 겪는 이러한 상황에의 행동지침은 얻은 셈이었다.

 

2. 여행객 우롱

이집트만큼 관광객에 대한 현지인의 우롱과 속임수에 긴장을 필요로 하는 곳도 달리 보지 못했다. 단체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모르되 배낭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이집트인들이 얼마만큼 상도덕과 담벼락을 쌓고 거래를 하는지를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이집트에서는 어디에서 누구와 어떤 거래를 하든지 여행객으로부터 부당한 이득을 얻으려 벼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가야 한다. 이집트에서 배낭여행을 다니며 상도덕이 문란한 이집션 상인들을 접하며 다니다 보면 발생 가능한 부당한 상황과 그에 대한 대처법은 여기서 다 익히게 된다.

 

박물관이나 유적지에서 표를 구입할 때 잔돈이 없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입장객이 잔돈을 포기하고 그냥 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것이 모이고 모이면 그들에겐 큰 돈이 된다. 사람이 많을때는 사실 잔돈거래가 워낙 활발하고 이것이 눈에 띠기 때문에 이 방법 써먹지도 못한다. 그러나 입장객이 많아 입장권 구입이 활발한 곳은 국립박물관, 기자의 피라미드, 아부심벨 등 쁀이었고 이들 가장 유명한 곳들을 제외하면 다른 유적지들은 좀 뜸한 편이고 외진 곳에 있는 유적지라면 가물에 콩나듯 입장객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의 수법은 이런 곳에서 악용된다. 처음 한 두번은 나도 넘어가 줬다. 사실 이집트 여행을 15일만 다녀도 1인당 입장료가 20만원을 상회한다. 이 것이 흔히 쓰는 수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나도 수를 쓰기 시작했다. 입장권 뒷면에 잔돈 얼마를 덜줬는지 표기하고 사인해 줄 것을 요구했다. 나오면서 이 것을 다시 내밀고 잔돈을 요구한다. 그래도 없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다음 입장객이 와서 잔돈이 생길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면 그들도 질려서 잔돈을 내놓는다. 이러한 경우는 이집트에선 그래도 애교로 통한다.

 

(룩소르에서 아스완으로 이동하던 완행 기차 안에서 내다 본 풍경) 

 

에스나에서 룩소르로 가기 위해 소형 버스를 대절했을 때의 일이다. 에스나의 하토루신전 관람을 마친 뒤 그날로 룩소르로 가기 위해 찾아간 버스터미널에서 찾아낸 룩소르행 미니버스는 이미 초만원 상태로 출발대기중이었고 오는 손님이 더 있으면 얼마든지 더 태울 태세였다. 저마다 배낭 하나씩을 갖고 있었던데다 일행 다섯명 중 두 사람의 여자가 문제였다. 회교국에서는 여인과의 혼전 접촉이 금지되어 있는만큼 외국인 여자한테 추행을 하곤 한다. 게다가 한 명은 청소년이었다. 우리는 택시를 알아보기로 했다. 택시를 찾고 있던 바로 그 때 영어에 유창한 갱년기의 남자가 수작을 붙여왔다. 룩소르까지는 50파운드이며 룩소르입구에서 우리가 사전에 예약한 시내 모 호텔까지는 1인당 25피아스트로로 총 52파운드를 달라는거였다. 나는 귀를 의심했다. 룩소르 입구에서 호텔까지를 굳이 구분해서 부른다면 적잖이 부르려는 수작일텐데 1인당 25피아스트로를 부르는 것이 납득이 가질 않았다. 납득을 못하고 잘못들은거 아닌가 했더니 일행도 같은 얘기로 듣고 있었으니 잘 못 들은 것은 아니었다. 미심쩍어 수첩을 주고 토탈 금액을 적어 보라고 했더니 52파운드를 적었다. 여전히 미심쩍었다. 다른 사람은 100파운드를 부르고 있었다. 결국 오케이를 하고 차에 올라 탔다. 그는 운전수를 대동하고 동승했다. 그런데 이 아저씨는 룩소르에 도착하여 톨게이트를 지나자 '여기까지는 50파운드이고 시내의 원하는 호텔까지는 70파운드'라며 딴소릴 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내 수첩에 자필로 적은 52파운드 이상은 줄 수 없다고 버텼다. 그랬더니 여기서 내리고 50파운드를 내라는거였다. 어이가 없었다. 바깥을 보아하니 택시나 시내버스같은 것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다시 말해 여기서 내리면 아주 아주 골때리는 상황에 직면할 수 밖에 없는데 그는 그걸 악용하는 것 같았다. 약속된 서비스를 이행하기 전까지는 돈을 줄 수 없고 원하는 곳에 도착하더라도 정해진 돈 외에는 한 푼도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나는 우선 가자고 했다. 그랬더니 70파운드라며 다짐을 받으려고 했다. 나는 일단 알았으니 가자는 말로 얼버무렸다. 물론 호텔까지도 그리 적은 거리는 아니었다. 그는 문득 무슨 생각이 났는지 가다말고 지금 당장 돈을 내라는 거였다. 내가 바보는 아닌 이상 호락호락 돈을 줄 생각은 없었다. '당신을 믿을 수 없으니 호텔에 가서 주겠다'고 버텼다. 하지만 요구하는돈 모두 주겠다는 말은 분명히 안했다. 이 뻔뻔한 아저씨를 카메라로 찍었더니 뭐가 캥겼던지 사진을 왜 찍느냐고 묻는다. 그냥 차안을 찍었다고 둘러댔다. 뛰는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 이놈아. 나는 호텔 앞에서 모두가 내린 뒤 나도 내려 52파운드를 주었다. 그는 길길이 날뛰며 70파운드를 내라며 경찰서로 가잔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 곳으로 갈 이유는 없었다. 이런 경우 대부분 가재는 게편이어서 경찰과 협잡이 되어 부단니득을 나눠먹으려 한다는 것은 기본이다. '당신은 나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고 운전기사더러 경찰을 데려오도록 시키라'고 말하고는 꼼짝도 안하고 버텼다. 근처의 다른 사람들이 몰려들어 무슨 일이냐고 물었는지 이 아저씨 흥분해서 아랍어로 떠벌렸다. 몰려든 사람들은 내게 뭐라고 한마디씩 했다. 갑자기 조직적으로 자기네 사람에 대한 역성을 든다. 젊은 친구 하나가 내가 바보인 줄 알았는지 휴대폰을 내보이며 경찰에 전화하랴고 묻는다. 나를 물렁하게 봐도 분수가 있지. 여행을 여기저기 다니면서 느낀 것은 개발도상국일수록 외국인에게서 뭔가 뽑아내려 하고 이런 경우가 생기면 그들은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나는 뻔한 수작에 고맙다며 경찰을 불러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시익 웃더니 한 발 물러선다. 지나가던 행인이 무슨일인지 묻는다. 이 아저씬 또 뭐라고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8파운드를 팁으로 하고 총액 60파운드를 주며 받으려면 받고 말려면 관두라고 버텼다. 그걸 받더니 10파운드를 더 내란다. 이런 경우 돈을 도로 가져가려 하면 십중팔구는 쥐고있던 돈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뿌리친다. 그러면 그 돈 이상은 챙길 수 없다고 판단하는지 이내 가버린다. 아니나 다를까 그도 그나마 60파운드를 받아 챙기며 투덜거렸다. 8파운드에 불과한 부당이득이 불만스러웠던 모양이었다. 이런 경우 절대 져주지 말라는 조언을 하고싶다.

 

아스완에서 펠루카(요트)를 대절했을 때의 일이다. 아스완에서는 아부심벨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스완 강건너 귀족의 무덤이나 누비안 마을 그리고 섬들을 둘러 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펠루카 대절이 필수적이었다. 적정가를 알고 있던 나는 바가지 씌우려는 사람들을 피해 90 이집션 파운드에 합의를 이끌어냈다. 합의 내용은 네 군데를 들르는 것이었다. 한 군데를 들르고 나자 펠루카 주인은 "이제 두 군데만 더 들르면 되는거지?" 하며 능청을 떨었다. 분명히 지도를 보여주며 네 군데를 낙서까지 해가며 합의를 해 놓고도 돈을 더 받아내려는 수작이었다. 당연히 처음과는 말이 다르네 하며 말다툼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이 것을 한 마디로 정리했다. "우리와 거래하기 싫은 모양인데 그러면 우리를 아무곳이나 내려 주시오. 단, 돈은 단 한 푼도 줄 수 없소." 완강한 내 태도를 본 그는 수작을 포기했다. 거래가 깨져도 우리는 손해볼 일 없었다. 한 군데를 이미 들렀으니 나머지 세 곳만 들르면 돼고 더 유리한 조건으로 다른 펠루카 주인과 거래가 가능하지만 그는 그 때까지의 노동력이 고스란히 날아갈 판이었다. 그 이후에도 같은 상황을 만날 때마다 같은 방법으로 대처했고 결과는 상대의 신속한 포기로 끝났다.

 

아스완 귀족무덤군 주변의 마을 입구의 화장실을 썼더니 왠 사내가 나타나 이 화장실 내껀데 왜 허락도 없이 사용하느냐며 돈을 요구했다. 자신이 무슨 이집트판 봉이 김선달이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를 외면하고 돌아서서 일행들과 함께 가던 길을 계속 갔다. 그가 따라다니며 돈을 요구하기에 나는 " 이화장실이 당신꺼라는 증거를 대보시오." 했더니 씨익 웃더니 못먹는 감 한 번 찔러 봤다는 듯 물러섰다. 상대의 꼼수를 포기시키는데는 적절한 한마디가 상황을 정리해 주곤 했다.

 

아스완에서는 마차도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통한다. 마차를 이용하려면 목적지를 밝힌 뒤 요금을 협상해야 한다. 역시 물가정보를 갖고 있는 나로선 바가지를 안쓰려고 몇 사람과 이미 가격협상을 시도한 끝에 5파운드에 합의를 봤다. 그는 우리의 가이드 노릇을 하겠다며 수작을 걸어왔다. 일단 이집션이 이렇게 나오면 무조건 거절하거나 무시해야 한다. 가고자 했던 식당에서 내리며 약속했던 5파운드의 돈을 주자 그는 "돈은 나중에 아주 약간만 주면 되고 기다릴테니 식사나 하고 나오라"며 마차를 끌고 휙 가버리려 했다. 우리가 그를 따라잡아 돈을 주고 정리하지 않으면 "당신들 밥먹고 나올 때까지 기다렸는데 날보고 그냥 가라는 말이냐"며 돈을 요구할 것이 뻔했다. 나는 떠나려는 마차에 올라타 낡아빠진 5파운드 지폐를 내주고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식당으로 들어가려던 우리를 붙잡아 세운 그는 50피아스트로(1파운드=100피아스트로)짜리 돈을 내게 주며 "이걸 주면 어떡하느냐"며 듣보잡의 수작을 걸어왔다. 나는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돈을 돌려주려 하자 5파운드를 내 놓으라며 버텼다. 50피아스트로짜리 돈을 받아들고 가면 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안받으려는 그의 옷깃에 돈을 끼워 놓고 식당으로 들어 가려고 했다. 그가 날 붙잡았다. 나는 벌레 보듯 잡힌 팔목을 뿌리친 뒤 아무말 없이 몸짓으로 그를 위협하자 그는 순간 움찔했다. 그러고는 식당으로 들어가 버렸다. 식당은 따라 들어와 봐야 주인에게 쫓겨날 판이니 더 따라 들어오지는 못했다.

 

역시 이집트 아스완에서 있었던 일이다. 우리는 여행사 몇 군데를 다니며 아부심벨 관광 패키지를 알아보았다. 아부심벨은 콘보이(여행객 보호를 위해 조직된 일종의 호위대)와 함께 새벽 3시에 단 한번 떠나도록 제도화 되어 있고 개별출발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여행사마다 요금이 천차만별이어서 좀 더 좋은 가격으로 아부심벨을 가보고자 여기저기 여행사마다 알아보고 다니던 중 오후 세시가 되어 모두 문을 닫는 통에 황당한 상황에 직면했다. 이집트에서는 일을 마치는 시간이 우리보다 훨씬 이른 시간이었던 모양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어느 여행사건 가격이 얼마건 문을 아직 닫지 않은 여행사만 나와주면 무조건 아부심벨 패키지를 구입할 참이었다. 아스완에서의 일정은 아부심벨이 마지막이었다. 하루에 한 번 새벽에만 떠나는 아부심벨 패키지를 당장 구입하지 못하면 금쪽같은 하루를 할 일 없이 더 머물러야 하고 그에 따라 다음 스케줄까지도 줄줄이 밀려 결국 마지막 일정을 포기해야 하니 애가 탔다. 한 여행사에 사람이 혹시 있는지 알아보려던중 바로 옆 카펫가게 주인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혹시 바로 옆가게 사람이니 여행사 사장과 연락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사연을 이야기했다. 카펫가게 주인은 내가 차량이 있으니 1인당 얼마씩을 내면 차량 운행을 하겠단다. 그가 제시한 가격은 매우 싼편이었다. 나는 카펫가게 주인에게 최소의 계약금을 주고 나머지는 다음날 프로그램이 종료된 뒤에 주겠다고 했지만 카펫가게 주인은 완강하게 50%를 요구했다. 사실 우리는 15일밖에 되지 않는 여행 중 하루가 날아가느냐 마느냐 하는 중요한 문제를 안고 있어 이걸 꼭 성사시키고 싶었다. 애당초 여행사들이 이미 문닫은 시간에 여행사 안을 들여다 보며 우리끼리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사연까지 듣고 나서 그는 우리가 내일 꼭 아부심벨에 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꿰고 있으니 배짱으로 나온 것인데 좌우간 그의 말속엔 석연치 않은 냄새로 가득했다. 나는 이집션을 믿을 수 없어 50%를 줄테니 영수증을 써달라고 다시 요구했다. 그러자 그는 '그걸 왜 써달라고 요구하느냐. 나를 믿지 못하면 거래는 없다.'며 웃었다. '나는 당신을 알지 못하는데 돈을 받았다는 증명도 안해주면 어떻게 신용하느냐"고 물었다. 이집트 여행을 다니면서 경험한 일들로 인해 이집션들은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내게 그는 "이집션은 신용으로 거래한다. 이집션을 믿지 못하면 어떻게 거래를 하느냐"는 말을 했다. 그야말로 내겐 웃기는 소리였다. 그와 실갱이를 하던 중 반갑고 놀라운 일이 생겼다. 우리가 카펫가게 주인과 실갱이를 하는 동안 바로 옆 여행사에 불이 켜져 있고 그 안에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여행사에 들어가 가격부터 알아보았다. 이제까지 다녀보며 알아본 중 가장 비쌌다. 하지만 비싸더라도 안전하게 계약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솔직히 나는 아직도 그가 돈만 받고 새벽에는 나타나지도 않고 나를 봐도 아는척도 안할 속셈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여행사를 나와 카펫 가게에 모여있는 우리 일행에게 의견을 물었다. 카펫 가게 주인은 가격을 알아보고 나온 나를 쉰눈으로 보며 웃었다. 우리는 여행사로 들어가 조건을 다시 확인한 뒤 계약하기로 했다. 나는 카펫가게 주인에게 "여행사와 계약할거니까 그리 알라"고 통보했다. 그가 우리에게 실제 거래를 하려 했든 아님 사기를 치려 했든 우리 할 도리는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자 갑자기 눈이 휘둥그래진 그는 '내 동생을 시켜 영수증을 써줄테니 잠깐만 기다리라'며 태도가 급변했다. 나는 "지금 계약중이고 나의 대답을 기다릴 것 같아서 통보해 주는 것 뿐"이라고 했다. 그는 닭쫓던 뭐모냥 아쉬워했다. 계약하면서 알게된 사실이지만 아부심벨 방문자는 콘보이에 통보되어야 하고 명단 통보는 여행사에서만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여행사를 운영하지도 않으면서 뭘 어떻게 하려는 것이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알 수아 없었다. 분명한 것은 비싸더라도 여행사에서 패키지를 구입한 것은 백번 잘했다는 생각이 지금도 든다.

 

암스테르담에서 겪었던 일이다.

스키폴 공항에 도착해 입국허가를 받은 뒤 매점에서 전화카드를 구입하기 위해 청사내 매점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40대 초반정도의 여자에게 전화카드가 있는지를 물었더니 이 곳에 줄을 서라며 안내하는 그녀에게서는 은근히 찬바람이 일렁였다. 사람들이 길게 두 줄로 서서 물건들을 구입하고 있었고 그녀가 손님들을 응대하다 말고 자리를 잠깐 비우고 있던 중에 막 들어선 내 눈에 띤 그녀에게 문의를 했던 것인데 나는 본의 아니게 염치도 없이 줄도 안서고 일을 보려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어쨋든 다시 줄을 서서 직원에게 전화카드를 달라고 했다. 20대 중반정도로 보이는 그녀는 내 보기에 피부색과 생김새로 보아 이 곳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취업 비자로 들어와 있는건지 아님 이주민인지 알길은 없다. 그런데 7유로를 내고 받은 카드가 종이로 되어 있고 길쭉했다. 나는 이게 전화카드가 맞는지 되물었고 그녀는 맞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카드를 들고 나와 전화기에 카드를 넣어 봤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나는 매점으로 되돌아가 이게 전화카드가 맞는지 다시 물었더니 이건 전화카드가 아니고 버스카드란다. 어이가 없었던 나는 전화카드로 바꾸어 달라고 했다. 그녀는 주인으로 보이는 바로 그 까칠한 인상의 40대 여인네에게 뭔가를 물었다. 이 카드는 판매할 때 날짜를 찍어 파는 관계로 이걸 물러줬다가 다시 팔지 못하면 그들에겐 손실이었다. 까칠녀가 날더러 들으라는듯이 직원에게 큰 단위의 전화카드로 바꿔 주라는 것이었다. 직원은 10유로짜리 전화카드를 내주며 돈을 더 내라고 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난 전화 한통만 하면 되니 큰 단위의 카드는 필요없다. 가장 작은 단위의 카드를 달라'고 했다. 까칠녀는 이번엔 작은 단위가 없다고 잡아뗐다. 큰단위로 내주라는 말은 작은 단위도 있다는 말이 아니었던가. 그녀는 내가 원하는대로 해 줄 용의도 없었고 환불해주려고도 하지 않았다. 내가 어이 없어 쳐다 보자 까칠녀는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이 사람들 당신때문에 시간 뺏기고 있는데 어떡할건지 빨리 결정하라"란다. 더 이상 그녀와 실갱이하고 싶지 않아졌다. 나는 돈을 더 내고 전화카드로 바꿔 나오면서 "내가 전화카드를 찾았는지를 진작부터 알고 있었으면서(첨에 들어오자마자 까칠녀에게 전화카드 문의를 했었으니 모를 턱이 없다) 자신들의 실수를 남에게 뒤집어 씌우는 당신은 정말 비겁하고 나쁜 여자라며 한마디 하고 나왔다. 괘씸한 생각에 매점을 나와서 안을 향해 그녀를 카메라에 담았다. 손님들을 응대하던 그녀는 날보고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외면했다. 그녀가 쫓아 나왔다. 카메라를 당장 내놓으란다. 뒤가 켕기는게 있으니 내가 찍은 사진이 신경이 쓰였을 터였다. 나는 당연히 거부했다. 나와 한동안 실갱이를 하던 그녀는 내 카메라를 잡아 채려다 안되니 랜즈를 손바닥으로 있는 힘껏 확 눌러 버렸다. 고장이라도 낼 심산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내 카메라는 그녀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멀쩡했다. 까칠녀는 할 수 없이 가게로 다시 들어가 버렸다. 실내 조명 하에서 적잖은 거리를 두고 끌어당겨 찍었으니 선명할 턱이 없다. 물론 그녀를 찍은 사진으로는 아무 짓도 안했다. 하지만 두고두고 신경쓰였을 그녀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웃음이 나온다.

 

출처 : 코렐리 일기장
글쓴이 : 코렐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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