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Georgia(2018 Jul)

만년설과 고원 사이를 수놓은 와인과 종교의 순례지 조지아

봉들레르 2018. 7. 3. 18:31

코카서스 雪山 아래 초록 마을엔 신성한 와인이 익어가고

 

 

⊙ ‘조지아’는 ‘농사짓기 알맞은 땅’이라는 의미… 소련 시절에는 그루지야라고 불려
⊙ 스탈린·셰바르드나제의 고향… 푸시킨·톨스토이·고리키 등이 사랑하고 작품활동 해
⊙ 땅에 묻은 항아리에 포도를 통째로 넣고 숙성시키는 크베브리 와인 제조법은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나리칼라 요새에서 본 트빌리시 전경.

 

 

  조지아는 코카서스 세 나라 중에서도 지정학적으로 핵심적인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위치한 조지아는 러시아 남하정책의 최단거리에 위치한다.

 

 서구문명과 이슬람문명이 동쪽과 북쪽으로 이동하는 데 있어서도 최적의 통로에 있다.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조지아는 자의든 타의든 외부세력과 문명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로마와 페르시아 제국, 몽골과 티무르, 오스만튀르크 제국 등이 조지아를 차지했다. 18세기 후반부터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사무엘 헌팅턴은 그의 저서에서 ‘단층선 분쟁’이라는 말을 썼는데, 조지아의 지정학적 위치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조지아는 코카서스 산맥으로 둘러싸인 산악국가다. 평균 4000m를 웃도는 봉우리들이 북쪽을 감싸고 있다.

남쪽으로는 아르메니아 고원이 펼쳐진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맥과 고원이지만 그 사이를 흐르는 강과 계곡,

초원이 빚어낸 멋진 풍광으로 인하여 ‘코카서스의 스위스’라는 별칭이 붙었다.
 
  조지아의 면적은 우리나라의 70%다. 인구는 370만명이며 수도인 트빌리시에 100만명이 산다.

우리의 광역시 인구 정도밖에 안 된다. 비옥하고 풍요로운 땅에 인구밀도까지도 낮으니 그야말로 낙원이 아닐 수 없다.
 
 
  8000년 전의 포도항아리 발견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의 야경.

 

  조지아라는 국명(國名)의 기원에 대해서는 토템신앙의 ‘늑대’를 뜻하는 고대 페르시아어에서 유래됐다는 설(說)과,

‘농부’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비옥한 땅과 풍부한 물, 알맞은 기후 등이 어우러진 땅이기에 조지아인들은 후자(後者)를 선호하는 것 같다.

현지인들은 “조지아는 그리스어로 ‘농사짓기 알맞은 땅’이라는 뜻”이라고 말한다.
 
  조지아는 구(舊) 소련 시절까지만 해도 그루지야로 불렸다.

조지아가 된 것은 1991년 독립 이후다. 러시아식 표기를 버리고 영어식 표기를 채택함으로써 친(親)서구 지향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조지아인들은 자신들을 가리켜 ‘사카르트벨로(Sakartvelo)’라고 한다. 조지아어로 ‘조지아인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곧 인류의 시원(始原)과도 연계되는 자긍심 높은 말이다.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 있는 역사박물관에는 조지아에서 발견된 원시인류의 표본이 전시되어 있다.

그중에서 ‘호모 에렉투스 게오르기쿠스’로 불리는 160만년 전의 직립보행원인(直立步行猿人)이 있다.

조지아 지역은 오래전부터 인류의 터전이었던 것이다.
 
  이는 포도주의 역사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그들이 성산(聖山)으로 여기는 아라라트 산에 노아의 방주가 섰고, 노아가 첫발을 디딘 곳이 아르메니아라고 말한다.

그리고 포도씨를 심어서 오늘날처럼 포도가 풍성한데 그 역사가 5000년이나 됐다고 했다.

조지아에서는 8000년 전에 포도를 숙성시킨 흔적과 포도씨가 있는 항아리가 발굴됐다.
 
 
  한 손에 와인, 한 손에 칼
 

 

스탈린이 공부했던 신학교.

 소련의 가공할 독재자 스탈린은 조지아가 낳은 가장 유명한 인물이다.

 

  수도 트빌리시는 여타 국가의 수도가 그러하듯 강을 끼고 있다. 므츠바리 강이다. 므츠바리 강은 쿠라 강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코카서스 관광의 중심도시답게 강을 따라 고대의 유적들이 현대의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강은 터키서부터 조지아를 거쳐 아제르바이잔의 카스피해로 이어진다.

고대 실크로드 대상(隊商)들은 이 강을 통해 조지아를 거쳐 카스피해와 터키를 오갔다.
 
  조지아의 옛 수도는 므츠헤타였다. 트빌리시가 수도가 된 것은 5세기 말 조지아의 왕인 바흐탕 고르가살리에 의해서다.

그가 어느 날 매를 들고 꿩 사냥을 하러 숲이 우거진 이곳에 들렀다. 그런데 꿩을 잡은 매가 뜨거운 연못에 빠져 죽은 것을 보았다.

온천이 있었던 것이다. 왕은 이곳으로 수도를 옮기고 ‘따뜻한 물이 있는 땅’이라는 의미로 트빌리시라고 했다.

그때부터 이곳은 유황온천이 유명해졌고 지금도 터키식 온천탕은 인기가 높다.
 
  쿠라 강이 흐르는 절벽 위에는 고르가살리의 동상이 우뚝하다. 그 옆에는 트빌리시 창건신화가 전해져 오는 메테히 교회가 있다.

교회는 장엄하거나 웅장하지 않다. 하지만 1500여 년간 겪었던 풍파를 이겨낸 흔적이 건물 구석구석에 배어 있다.
 
  나리칼라 요새도 트빌리시를 대표하는 유적이다.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므타츠민다 산에 위치한 이 유적은 4세기 중반에 건설된 것이다.

이 역시 수많은 외침을 겪으면서 훼손과 중건을 되풀이해 왔다.

오늘날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트빌리시를 조망하는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트빌리시의 상징인 나리칼라 요새. 오른쪽 케이블카 아래 보이는 흰 조각상이 ‘조지아의 어머니’상이다.

 

  요새 옆 가파른 능선에는 ‘조지아의 어머니상(像)’이 있다. 높이가 20m로 건국 1500년을 기념하여 만든 것이다.

아르메니아의 예레반에도 어머니상이 있는데, 이 어머니상은 52m다.

아르메니아 어머니상은 육중한 칼을 두 손으로 잡고 앞으로 내밀고 있는 모습이고,

조지아의 어머니상은 왼손에는 와인 잔을, 오른 손에는 칼을 들었다. 친구에게는 와인을 선사하지만 적(敵)에게는 칼을 쓴다는 의미다.
 
  구도심의 중심은 자유광장이다. 광장 한가운데 있는 자유탑 꼭대기에는 건국신화인 말 타고 용을 무찌르는 성(聖) 조지상이 있다.

이 광장은 소련 시절에는 레닌 광장으로 불렸다.
 
  구소련 시절, 레닌 사후(死後) 권력을 잡은 스탈린은 조지아 출신이다.

그는 무자비한 숙청과 개인숭배, 공포정치로 국민들을 떨게 했다.

연해주에 살고 있던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것도 스탈린의 지시 때문이었다.
 
  스탈린의 고향 조지아도 그의 공포정치는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조지아에서도 스탈린의 동상은 보이지 않는다.

그의 고향인 고리의 박물관에만 그의 동상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스탈린에 대한 조지아인의 생각은 나쁘지만은 않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같은 조지아인이기 때문인가.
 
 
  셰바르드나제와 사카슈빌리
 
  조지아는 독립 이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신생 독립국으로서 자립하기에는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경제는 붕괴되고 실업난은 고조됐다. 이에 따라 범죄는 늘어나고 정세(政勢) 또한 불안했다.

외국인들이 꺼리는 여행위험국가가 되기도 했다.
 
  조지아의 경찰서 건물들을 보니 유리로 된 것이 특이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경찰서뿐 아니라 공공건물은 모두 유리로 만들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투명한 행정과 정치’를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한다.
 
  1980년대 개혁·개방을 외친 고르바초프를 도와 신사고(新思考) 외교정책을 펼쳤던 외무장관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도 조지아 출신이다.

외무장관이 되기 전에 그는 내무관료로 ‘부패와의 전쟁’에서 이름을 떨쳤다.

셰바르드나제는 조지아 독립 초기에 고국으로 돌아와 대통령이 됐다.

그가 집권한 후 측근들은 부정부패를 자행했다.

공산당 시절 부정부패와 싸웠던 셰바르드나제지만 정작 수족들의 부정은 잘라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 결과 부정선거 시비까지 겹쳐 2003년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를 ‘장미혁명’이라고 한다.
 
  이때 장미혁명을 이끈 인물이 미하엘 사카슈빌리다.

37살의 나이로 대통령에 취임한 그는 미국 유학 경험을 살려 서구주의적인 개혁을 시도했다.

조지아에 주둔했던 러시아군도 완전 철수시켰다.

그의 정책은 국내외의 지지를 얻었다. 이때부터 사회는 안정을 되찾았고 범죄율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조지아인들은 그가 개혁정책의 토대를 닦아 놓았기에 지금도 여러 방면에서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한다.

사카슈빌리는 임기 말년에 권력 남용과 사기, 러시아와의 갈등으로 국민들의 신임을 잃었다.

2012년 실각한 후 조국을 떠난 그는 2015년 우크라이나 오데사주 지사로 임명됐다.
 
 
  문호들이 사랑한 땅
 
  자유광장 옆에는 푸시킨 공원이 있다. 러시아 시인 푸시킨은 조지아를 무척 사랑했다.

그는 트빌리시의 유황온천을 체험하고는 ‘최고의 온천’이라고 감탄했다.

조지아의 와인과 음식도 좋아하여 ‘음식 하나하나가 시(詩)와 같다’고 할 정도였다.

그는 조지아에서 여러 편의 시를 썼다. 그중에는 〈코카서스의 죄수〉라는 장편시도 있다.
 
  소설가 톨스토이도 코카서스 주둔군으로 자원하여 4년간 복무했다.

이를 소재로 몇 편의 소설을 남겼는데, 푸시킨의 시 제목을 그대로 사용한 소설 〈코카서스의 죄수〉도 썼다.

소련의 대문호인 막심 고리키도 트빌리시를 좋아했다. 페인트공 생활을 하며 창작에 열중한 고리키는 이곳에서 처녀작을 발표했다.

고리키는 이때 사용한 필명인데, ‘비통한 자’라는 의미다.

그는 ‘코카서스 산맥의 장엄함과 낭만적 기질을 지닌 이곳 사람들 덕분에 방황에서 벗어나 작가가 됐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조지아는 우리나라 작가들과도 인연이 깊다.

일제(日帝) 강점기 소설가인 이태준은 1945년 해방 직후 소련 영토이던 조지아를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그는 이곳을 여행하고 《소련기행》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예수 관련 전설이 얽힌 스베티츠호벨리 성당
 

조지아 정교회의 총본산인 스베티츠호벨리 성당. 예수가 입었던 옷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져 온다.

 

  아르메니아처럼 조지아도 기독교와 관계가 깊은 나라다. 예수의 12사도(使徒) 중 5명의 사도가 조지아에서 포교활동을 했다고 전해진다.
 
  조지아는 326년에 기독교를 국교(國敎)로 채택했다.

467년에는 안티오크 정교회(正敎會)로부터 독립교회로 인정받아 조지아 정교회가 탄생했다.

현재 조지아인의 87%가 믿고 있는 조지아 정교회는 조지아의 험난한 역사 속에서 민족의 단결과 저항의 중심점이 되어 왔다.

작은 마을에도 교회나 수도원이 있는 것은 이러한 조지아의 특성을 잘 알려주는 것이다.
 
  트빌리시에서 북서쪽으로 약 20km 떨어진 곳에 므츠헤타 마을이 있다.

조지아를 대표하는 두 강인 므츠바리 강과 아라그비 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에 위치한 므츠헤타는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될 정도로 아름답고 유서 깊은 곳이다.

이곳은 고대로부터 동서의 길과 강이 만나는 요충지였다. 이런 까닭에 트빌리시가 수도로 되기 전까지 조지아 왕국의 수도였다.
 
  마을 중심에는 조지아 정교회 총본산인 스베티츠호벨리 성당이 있다.

‘생명을 주는 기둥’이라는 의미의 이 성당은 예수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됐을 때,

어떤 조지아인이 로마의 집행관으로부터 예수가 입고 있던 옷을 사서 귀국했다.

그러자 그의 누이가 예수의 옷을 붙들고 비탄에 잠겼다가 죽고 말았다.

그런데 그녀가 옷을 너무나 단단히 쥐고 있어서 빼낼 수가 없었다. 결국 옷은 그녀와 함께 묻혔다.
 
  그 후 무덤에서는 삼나무가 자라났다. 왕이 그 나무로 7개의 기둥을 만들어 새 교회의 토대로 쓰게 했다.

그런데 7번째 기둥이 공중에 솟구쳐 올라 내려오지 않았다.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聖) 니노가 밤새 기도하자 내려왔는데

그때부터 이 기둥에서는 어떤 질병도 치료할 수 있는 신비한 액체가 흘렀다.

그래서인가. 오늘도 성당 안은 심신치료를 위하여 저마다 촛불을 밝히고 간절하고 엄숙하게 기도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므츠헤타가 내려다보이는 산 정상에 세워진 즈바리 교회는 4세기 초 기독교가 전파된 것을 기념하여 십자형 모습으로 세워졌다.

조지아에 최초로 기독교를 전파한 사람은 터키의 카파도키아에서 온 성녀 니노였다.

즈바리는 조지아어로 ‘포도나무’라는 뜻이다. 이는 그녀가 포도나무로 된 십자가를 가져온 것을 기념한 것이다.

니노의 포도나무 십자가로 기적이 행해지자, 이 교회는 순례자들의 필수코스가 됐다.
 
  풍광 좋은 이 교회가 모두에게 개방된 것은 소련에서 독립한 이후다. 소련 시절에는 군사기지로만 사용됐기 때문이다.
 
 
  프로메테우스가 고난을 당한 카즈베기山
 

카즈베기 산. 인류에게 불을 전해 준 죄로 프로메테우스가 바위에 묶여 고난을 당했다는 신화가 깃든 산이다.

 

  조지아인들이 정신적 고향이라고 여기는 곳은 카즈베기 산 아래 언덕에 세워진 게르게티 성삼위일체 교회이다.

조지아를 여행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곳에 들른다. 코카서스 최고의 비경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소련 시절에 완성된 구불구불한 군사도로를 지나 게르게티 마을에 도착했다.

저 멀리 5000m가 넘는 카즈베기 산이 만년설(萬年雪)과 함께 장엄함을 뽐내고 섰다.

교회를 보기 위해 사륜구동 지프차로 갈아타고 산을 오른다. 2000여m의 산 구릉에는 푸른 초원과 봄꽃이 피어 있다.

그 너머로 웅장한 비경을 배경으로 그림처럼 자리 잡은 교회가 보인다. 순간 탄성이 절로 나온다.

교회를 보는 것만으로도 신심(信心)이 절로 돈독해짐을 느낀다.

믿음은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절절한 체득에 의한 것임을 카즈베기는 알려주고 있다. 실로 조지아인들의 정신적 고향이 아닐 수 없다.
 
  카즈베기 산은 프로메테우스 신화(神話)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인간을 사랑한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 몰래 인간에게 불을 전해 준 죄로

이 산의 바위에 묶여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형벌을 당하며 살아야 했다.

헤라클레스가 독수리를 없애고 그를 구해 줄 때까지 3000년을 고통 속에서 지내야 했다.
 
  청명한 날임에도 산 정상의 날씨는 수시로 변한다. 천변만화(千變萬化) 그 자체다.

장엄한 대자연의 풍광 속에 신화와 종교가 공존하는 곳. 조지아가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1000년 된 와인 저장소
 

 

땅에 묻은 항아리에 포도를 통째로 넣고 숙성시키는 조지아 특유의 크베브리 와인 제조법은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조지아는 포도재배의 역사가 알려주듯 와인으로 유명하다. 조지아의 와인 역사는 조지아 정교회보다도 오래됐다.

와인 제조법도 독특하다. 땅에 묻은 항아리에 포도를 통째로 넣고 숙성시키는 크베브리 와인 제조법은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대부분의 기독교 국가가 와인을 신성(神聖)함과 결부시키지만 조지아는 특히 더하다.

조상의 피와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이는 조상의 시신을 포도나무 밑에 묻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조지아에서도 와인으로 유명한 곳은 텔라비이다. 텔라비는 트빌리시에서 북동쪽으로 50여km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은 알라자니 강이 흐르는 계곡에 위치하는데 동서를 잇는 고대 실크로드의 길목이었다.

이런 까닭에 8세기부터 도시로 발전했고,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는 이 지역을 지배한 카헤티 왕국의 수도로 번성했다.
 

 

조지아의 전통 포도주잔인 깐지를 들고

건배를 제의하는 타마나를 표현한 청동상.

 

  텔라비에 있는 알라베르디 대성당에는 1000년의 역사를 이어 온 와인 저장소가 있다.

50m 높이의 육중한 대성당은 조지아 동부지역의 영적(靈的) 중심지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대성당을 에워싼 성벽은 마치 요새와도 같다. 성문을 열고 들어가니 성당 주변으로 포도나무가 빼곡하다.

각기 다른 품종의 포도나무를 심어 놓았는데 언뜻 보아도 100여 종에 이른다.
 
  대성당 주변에는 무너진 유적들이 널려 있다. 16세기에 왕이 사용한 여름궁전과 목욕탕은 아직도 복원을 기다리고 있다.

대성당 내부는 여기저기 회벽 칠에 벗겨진 프레스코화가 햇살을 받아 선명하고 웅장하다.

그중에는 조지아를 건국한 성 조지가 용을 격퇴하는 모습을 표현한 벽화도 있다.
 


 

 

조지아인들은 포도 수확철인 가을이 되면 너나없이 전통적인 제조법으로 와인을 만든다.

 그들은 와인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신(神)이 부여한 신성한 의무라고 믿는다. 그들의 와인 사랑도 대단하다.

성찬식은 물론 축제나 결혼식 등 실생활에서도 와인을 빼놓지 않는다.

이때 잔치를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하여 ‘타마나’라는 주관자를 뽑는다. 타마나로 선출되면 축하공연이나 참석자들의 인사말 순서 등을 정한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임무는 ‘건배 제의’다. 와인을 담은 잔을 들어 일치된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축제를 한껏 고조시키는 것이다.

조지아에서는 청동기시대에 만든 ‘깐지’라고 부르는 각배(角盃)를 들고 건배를 제의하는 타마나상이 발견됐다.

조지아가 와인의 발원지임을 알려주는 유물인 셈이다.
 
  조지아는 세계적인 장수(長壽) 국가다. 장수하는 사람들 모두가 그 지방에서 나는 포도로 만든 와인을 즐겨 마신다고 한다.

조지아인들이 와인을 신성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터, 조지아인의 삶은 와인 그 자체인 것이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