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China Taihang(2017 Jan)

절벽 위의 마을 곽량촌(郭亮村)

봉들레르 2017. 1. 15. 08:48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골 16중 여젋번째인 곽량촌(郭亮村)은 절벽위에 자리한 동네이다.

산 기슭에 서서 곽량촌을 바라보면 90도 각으로 솟은 태항산(太行山)의 바위만 보일뿐 동네라고는 그림자도 없다.

아찔한 절벽에 낸 1km 길이의 곽량동굴을 따라 산위로 오르면 이번에는 절벽이 발아래로 펼쳐지고 눈앞에 아담한 동네가 나타난다.

머리 들어 바라보면 저 멀리에 또 다른 절벽이 막아서 있다.

곽량촌으로 진입하기 위해서 필히 거쳐야 하는 곽량동은 곽량촌 촌민들이 6년의 시간을 들여 낭떠러지에 낸 터널식 도로이다.

사면이 바위인 그 동굴에 서면 태항산처럼 굴하지 않는 곽량촌 사람들의 정신이 느껴진다.

이 동굴이 조성되기전에 곽량촌의 촌민들은 백여미터 높이의 하늘 사다리를 거쳐야 동네를 출입할수 있었다.

절벽에 조성된 이 하늘 사다리는 위험하기 그지없었고 출입도 불편해서 곽량촌은 교통여건이 가장 열악한 동네로 인정되었다.

1972년 촌민들은 동네의 교통여건을 개변하고 촌민들의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도로공사에 나섰다.

그들은 양과 약재를 팔아 경비를 마련해서 망치와 끌 등 간단한 수공구를 구입했다.

터널식도로


그로부터 전력과 기계가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13명의 청년들이 망치와 끌에 의거해

119m 높이의 바위에 1250m길이, 6m 너비, 4m 높이의 터널식 도로를 조성했다.

이 도로가 바로 "태항터널의 비조"로 불리우는 태항산 최초의 절벽 도로 곽량동이다.

이 터널식 도로를 만드는데 6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으며 12톤의 끌을 소모하고 4천톤에 달하는 망치를 버렸다.


곽량촌에서 동쪽으로 가면 어젯날 사람들이 오가던 하늘 사다리가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백미터 높이의 벼랑에 720개의 계단이 조성되어 있는데 최대의 폭은 1.2m, 가장 좁은 곳은 0.4m여서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정도로 잘못 하면 아찔한 낭떠러지로 떨어질듯 해서 정신이 아찔하다.

이 하늘 사다리는 천여년전의 송(宋)왕조때 조성되어 그 뒤 원(元), 명(明), 청(淸)왕조에 모두 보수와 확장을 거쳤다.

눈여겨 보면 하늘 사다리가 조성된 바위에 청나라때 보수한 기록이 새겨져 있기도 한다.

하늘 사다리는 가난하고 폐쇄된 곽량촌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래서 곽량촌의 13명 청년들은 이 하늘 사다리 앞에서 주먹을 쥐고 맹세했다:

  "곽량촌의 새로운 생활을 위하여, 곽량촌의 자손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않고 도로를 파겠노라"고.

오늘날 그들의 맹세가 실현되고 그들의 꿈이 이루어져 곽량촌은 더는 가난하고 폐쇄되며 세상과 동떨어진 동네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찾는 관광지로 부상했다.


험준한 바위산의 깊은 곳에 자리한 곽량촌에 들어서면 스스로 힐링이라도 되듯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마침 겨울에 곽량촌을 찾아 어둠의 장막이 내린 때 고요한 거리에 서면 머리속이 한 순간 맑아짐을 느낀다.

주말이 되면 동네는 온 동네가 떠나갈듯 흥성거린다.

집집마다 동네를 찾은 관광객을 접대하느라 분주하고 동네와 바위, 동굴 그 어디나 관광객들로 붐빈다.


특히 봄과 가을철이면 화가 지망생과 촬영 마이나들이 밀려와 가장 좋은 장소를 찾아 다닌다.

가끔 암석 등반가들이 맨 손으로 아찔한 바위를 톺기도 해서 식은땀을 쥐게 한다.

곽량촌에서 가장 아름다운 때는 아침과 황혼이다. 떠오르는 태양과 지는 태양이 최적의 광선을 자랑하고

집집마다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올라 아름다운데 그 때는 또한 가장 고요한 때이기도 하다.


이 동네의 거의 모든 집들이 민박을 경영한다. 가격대별로 다양한 여건의 방이 마련되고 식사도 제공한다.

일반룸과 화장실이 딸린 고급룸도 있고 겨울에는 난방도 된다.

곽량촌에서 꼭 맛을 보아야 하는 시골 먹거리들로는 깻잎과 토종닭, 야생 목이버섯,

자연산 표고버섯 등으로 만든 시골전과 토종닭곰, 깻잎 무침 등 다양한 음식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