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ravel abroad./Spain(2015 Feb)

14-10 카탈루냐(Catalunya)의 자존심

봉들레르 2015. 5. 18. 23:31

 

바르셀로나가 속한 카탈루냐 지방은 스페인어와 다른 지역 고유 언어를 쓴다.

바르셀로나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곳곳에서 카탈루냐 사람들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일단 간판이 다르다. 지하철역, 은행, 레스토랑 등의 모든 간판은 먼저 카탈루냐어로 표기돼 있고,

그 아래 스페인어가 병기돼 있다. 거리엔 스페인 국기 대신 노란 바탕에 빨간 줄이 쳐진 카탈루냐기(旗)가 휘날린다.

카탈루냐는 스페인의 17개 지자체 중 지역총생산(GRP)이 가장 높고,

평균소득도 약 3만5000달러로 스페인 전체 평균인 3만달러를 웃돈다.

그러나 유로존 경제 위기 후 긴축재정의 여파로 연금이 깎이고 실업률이 22%로 치솟았다.

반(反)긴축 정서는 중앙정부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졌다.
2010년 취임한 아르투르 마스 카탈루냐 주지사는 이런 분위기에 기름을 끼얹었다.

그는 "재정 위기에 빠진 스페인 중앙정부가 부유한 카탈루냐의 세금을 걷어서

 타 지역 주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다"며 "우리는 여전히 차별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프랑코 시절 카탈루냐어 사용을 금지당하는 등 탄압받던 기억을 끄집어낸 것이다.

마스 주지사는 중앙정부의 경고에도 올 11월 9일 분리 독립에 대한 주민들 의사를 묻는 투표를 강행하겠다고 선언했다.

마스 주지사의 분리 독립론은 불경기로 실의에 빠진 주민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스페인 일간지 엘파이스가 카탈루냐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독립을 원하는 주민은 46%로, 독립에 반대하는 주민(42%)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9월에는 카탈루냐 주민 40만명이 총 400㎞에 달하는 인간 사슬을 만들어 독립을 외치기도 했다.

바르셀로나 거리에서 장사를 하는 페데리코(57)씨는 "남부의 게으름뱅이들을 왜 우리 세금으로 먹여 살려야 하느냐"며

"카탈루냐의 독립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과연 스페인이 두 나라로 갈라질 가능성이 있을까.

전문가들은 "정서적 공감대는 형성돼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정치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중앙정부의 승인 없이 주정부가 실시하는 주민투표 자체가 위헌 성격을 갖고 있으며

유럽연합(EU)도 분명히 반대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국립 마드리드 대학의 안토니오 마르키나 교수(정치학)는 "EU가 독립 카탈루냐의 가입을 불허한 상황에서 자립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카탈루냐인들이 주장하는 고유성에 대해서도 "그런 논리대로라면 독일과 이탈리아는 수십개 나라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탈루냐 지역 야당 정치인 알리샤 산체스 카마초는 "마스 주지사가 집권 연장을 위해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전략을 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카탈루냐 현지 주민들도 독립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믿는 분위기다.

인구의 30~40%가 타지 출신이라 실제 투표에선 반대표가 더 많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출처] 조선닷컴

Ballada de sardanes amb la Cobla Sant Jordi-Ciutat de Barcelona : 18:30

산 하우메 광장. 사르다나 춤. 산타 에울라리아 축제의 필수 요소

 

에스파냐의 북동쪽 카탈루냐 지방의 민족성과 결합된 집단적 민속무용으로

19세기에 유행했던 콘트라피스(contrapas)라는 춤에서 새롭게 발전한 것이다.

여러 명의 남녀가 두 손을 번갈아 잡은 채 원을 이루어 테노레스(tenores)와 숌,

작은북으로 연주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반주음악은 코블라(cobla)라고 하는 민속음악 전문악단이 연주한다.

콘트라피스도 역시 원을 이루어 추는데, 중간에 끊어진다.

 

 

 

 

 

 

 

 

 

 

 

 

 

 

 

 

 

 

 

 

 

 

성 요셉 오리올 광장(pl. de Sant Josep Oriol)에서 시작하여 산 하우메 광장에 도착해 막을 내리게되는 산타에우랄리아 거인 인형행렬의

출발지에 먼저 가기위해

 

 

가는 중에 유명 추러스집에서 잠시 들러 요기

 

 

 

산타에우랄리아 거인 인형행렬 출발지에 미리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바르셀로나의 수호 성녀를 기리는 거인행렬

 

 성녀 에우랄리아는 3세기경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습니다.

로마제국 통치 아래에 있는 모든 지역에서 그리스도교 박해가 대대적으로 일어나던 때였습니다.

성녀가 태어난 곳에서도 박해가 극심했습니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각 지역 관리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린 아이와 여자, 노약자라도 봐줄 것 없이 잡아들여 고문하고 처형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13살이던 성녀도 박해의 칼날을 피해갈 순 없었습니다.
성녀에 대한 기록은 성녀가 어떤 고문을 당하다 순교했는지 자세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고문관들은 어린 성녀를 채찍질하고 날카로운 꼬챙이로 살갗을 긁어냈습니다.

성녀에게 끓는 기름을 붓는가 하면 불에 달군 쇠로 살을 지져댔습니다.

유리 조각과 칼날이 박힌 통에 성녀를 집어넣고 길 언덕에서 그 통을 굴리기도 했습니다.
13살 소녀에게 가해진 고문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겠다는 단 한 마디만 하면 그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텐데 성녀는 단호했습니다.

성녀는 결국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했습니다.
성녀 유해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산타마리아델마르대성당에 안치됐다가 14세기 바르셀로나주교좌대성당으로 옮겨졌습니다.

주교좌대성당 내 봉쇄구역 마당에는 13마리 거위가 살고 있는데,

이는 거위농장 근처에서 태어나 13살에 순교한 성녀를 기리기 위한 것입니다.

또 성녀가 유리 박힌 통에 들어가 굴렀던 길은 '성녀 에우랄리아 길'이라 불립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매년 성녀 축일이 있는 2월 둘째 주에 '성녀 에우랄리아 축제'를 성대하게 열고 있습니다.

이 축제는 특히 성녀 또래인 청소년을 위한 행사로,

이 때가 되면 바르셀로나 거리 곳곳에서는 크고 작은 음악회와 사진전 등이 열립니다.
 

 

 

 

 

 

 

주최측에서 무료로 나누어 준 음식

 

 

 

 

 

 

공짜는 다 맛있다

 

La passejada i el ball de les Laies : 19:00 산타마리아 델피 성당 옆

성 요셉 오리올 광장(pl. de Sant Josep Oriol)에서 시작하여 산 하우메 광장까지

거인의 행렬 퍼레이드(19:30~20:25)